구토와 설사를 거듭하다 오한과 발열의 식중독 증상을 보였다. 침낭 안에서도 추위에 덜덜 떨었다. 낮에 동상 예방을 위해 얼굴에 붙인 스포츠 테이프가 붙어 있다. /김영미 제공

1년 전인 2024년 12월 27일은 단독으로 남극점에 두 번째 도착한 날이다. 당시 목표점을 향해 걷던 하루하루의 기억은 아직 선명하다. 식량과 체력이 동시에 흔들리기 시작했던 그날의 감각은 지금도 몸에 남아 있다.

(2024.11.20.화 / 운행 13일 차 / 누적 거리 238.21㎞ / 해발고도 838m)

어제 아침부터 구토를 두 번이나 하고 거의 빈속으로 21.78㎞를 걸었다. 덜 먹어서 그런가 추위를 더 많이 느끼는 것 같다. 어제 오후에 바람이 강해 고어텍스 바지 위로 다운 패딩 치마까지 입고 걸었다. 못 먹은 데다 벌써 2주 가까이 휴식 없이 운행했더니 체력이 달린다.

오늘도 종일 구역감이 있었다. 오한과 발열이 시작돼 텐트 안에 있는데도 추웠다. 무슨 약을 먹고 있는지, 몸 상태가 어떤지 한국에 상황을 알려야겠다고 판단했다. 인리치(위성 위치 추적 장치)로 매일 나의 위치를 모니터링하는 비상 연락망인 송희에게 위성 전화로 연락했다. 모든 비상 연락은 송희로 단일화했다. 비상 연락망 하나가 있는 것만으로도 정신적 위안이 된다. 운행 시작 후 처음으로 한국말로 대화했다. 음식이 상해 남극점에서 보급을 받을 때 돼지고기 대신 다른 식량을 공급받을 방법을 의논했다. 그리고 2006년 에베레스트를 함께 등반했던 텐트 메이트 해민이에게 건강상태를 업데이트해 달라고 전했다. 해민은 외과 의사고 매번의 원정에 팀 닥터로 나를 지원해 주고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약품의 리스트를 알고 있어 무얼 먹고 조심해야 할지 확인해 줬다. 아침 일찍 송희로부터 인리치(통화는 안되고 문자 메시지만 가능)로 메시지가 도착했다.

“상한 음식으로 인한 설사 시에는 지사제 금지, 감염성 설사는 다 내보내야 함.”

오한에 옷을 있는 대로 껴입고 침낭 속에 있는데도 추웠다. 덜덜 떨다가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났더니 땀으로 침낭이 축축했다. 다행히 더 이상 머리가 아프지는 않았다.

남극에 오기 전 식량을 준비할 때 원재료인 생고기의 무게에서 동결 건조된 무게를 계산해 보니 돼지고기는 수분이 약 40% 증발했고 소고기는 약 60% 정도 증발했다. 지방이 필요하다 여겨 저녁으로 돼지고기 메뉴를 선택해 고추장을 넣어 준비했다. 2017년 바이칼 호수 724㎞ 남북 단독 종단 때 돼지고기의 기름에서 단맛을 느꼈다. 몸에 지방이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돼지고기는 저녁 식사로 130g(850kcal)을 소분했고, 간장 소불고기는 120g(730kcal)을 담았다. 여기에 100g의 알파미(약 366kcal·동결 건조돼 뜨거운 물만 부으면 밥이 된다)를 함께 먹었는데 건조됐어도 200g의 밥 한 공기의 양과 같다. 운행 중 먹는 간식을 제외한 조식과 석식에서 약 2500kcal의 식사를 한다. 그런데 식중독 수준의 구토를 일으키는 돼지고기 850kcal를 빼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100㎏의 썰매를 끌고 10시간 이상을 걸으면서 쓰는 활동 에너지, 영하의 추위에서 체온을 유지하는 에너지, 나의 기초대사량을 감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양이다. 1일 총 섭취량을 4500kcal로, 1일 치 식량 무게 1㎏으로 계획했었다. 하지만 1일 치 식량 무게를 약 840g으로 줄이면서 1일 섭취 칼로리도 3800kcal로 줄었다. 여기에서 돼지고기 850kcal를 더 줄이니 1일 섭취량이 약 3000kcal밖에 되지 않았다. 남극점에서 보급을 받기는 하지만 그때까지 이것만 먹고 남극점까지 900㎞에 가까운 거리를 갈 수 있을지 염려가 됐다. 2023년엔 하루에 약 4000kcal를 먹었는데도 매일 배가 고팠다. 그래도 부딪혀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일! 이미 남극점까지 한 번의 경험이 있기에 부딪혀 보기로 했다. 몸에 쌓인 경험의 힘을 믿기로 했다.

※한국인 최초로 남극 대륙을 단독 횡단한 산악인 김영미의 ‘남극, 끝까지 한 걸음’을 격주로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