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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며칠 앞둔 연말, 서울시내 광화문과 명동의 인파를 압도하며 요란하게 번득이는 대형 전광판들. 그 휘황찬란함에 다들 탄성을 질러대지만 내게 남은 여운은 진한 쓸쓸함이다. “말없이 그냥 흘러가는 시간은 왜 분절해 세밑이니 새해 벽두니 하며 요란을 떠는 거냐.” 중얼거린다. 남들이 애써 만든 그 디지털 마술 세계를 그냥 화려한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이면 되지 이건 무슨 반발인가. 그러면서 연말이면 친척들이 총동원되는 모임에서 어른들이 한 말이 떠올랐다. “너는 어쩜 돌아가신 네 아버지를 그리 닮아가니?” 생김부터 생각, 행동까지 그렇다며 “유전자가 그리 무서운 거야” 감탄한다. 그래도 한 가지는 예외였으면 좋겠다. 깊은 산골에서 홀로 ‘탈출’해 자수성가한 탓인지 늘 ‘미래 불안증’으로 종종걸음치셨던 그분의 모습은 비켜가고 싶다. 나 역시 그 강박증이 이제 판박이로 등장하는 모양이다. ‘뭐든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이론’을 주장하는 몇몇이 “현재 환경이나 유전자의 지배를 받지 않을 수 있다”면서 열독했다는 책들을 찾아냈다.

그중 하나가 ‘믿음의 생물학’(The Biology of Belief). 저자는 미국의 저명 세포의학자, 브루스 립턴. 핵심 메시지는 “우리는 유전자의 노예가 아니고 우리의 생각과 믿음이 유전자를 조절한다”는 것. 즉, 세포의 핵 안에서 유전 정보를 저장하는 물질인 DNA가 우리 운명을 결정하지 않고, 세포 외부의 신호와 우리 자체 의식이 유전자 역할을 조절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는 “세포의 두뇌는 핵이 아니라 세포막”이라며 핵심은 긍정적인 믿음이 치유를, 부정적인 믿음은 우울과 불안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부디, 어떤 상황에서도 타고난 유전자와 현재 환경 탓 말고 소망과 긍정적인 생각을 가졌으면 한다.

확인차 다른 자료들도 찾아본다. 돈도 큰 노력도 드는 게 아니고 시도한들 별 손해 볼 것 없지 않은가. 한동안 베스트셀러로 유행했던 ‘시크릿’(론다 번)도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을 분석, 긍정적 사고가 현실로 이어지는 ‘끌어당김의 법칙’을 주장한다. ‘긍정적 마인드셋’의 중요성을 강조, 많은 독자들에게 동기부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흔히 알려진 ‘줄리의 법칙’이란 용어도 “열심히 바라는 마음이 예기치 않은 과정을 거쳐 필시 원하는 것을 이루게 한다”는 현상을 담고 있다. 전 세계 88개 언어로 번역돼 기네스북에 오른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서도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돕는다”는 문장이 나온다. 믿으려는 굳은 의지와 소망이 핵심이다.

며칠 후면 어김없이 우리 앞에 새해가 펼쳐진다. 나이가 들면 어느 시점부터 앞에 놓이는 날들이 마치 등에 지고 가야 할 짐이나 힘들게 때워 나가야 할 시간들이 된다. 미래에 대한 보장이 없는 나이라는 것. “편히 놀지 외국어 공부는 뭐 하러?” “책은 귀찮게 왜 펴내고 그래?” “돈 많이 들고 팔리지도 않는 그림 전시회는 왜 자꾸 해?” 나이 앞자리에 7자가 붙은 이웃들이 ‘일 저지르는 친구’들을 놓고 하는 ‘충언’이다. 몸 건강에 좋은 운동이나 음식 챙기고 그냥 놀란다. 그럼, 밥 먹고 배설하는 일만 해야 할 일인가. 그건 왜 하나? 여타 동물과 다른 인간의 속성을 무시한 말이다. 지난 세월, 어느 나이에 당신의 미래를 누가 보장해 주었다는 것인가. 젊음과 건강이 그랬던가? 보장 안 해준다며 체념하면 속이 다 시원하고 평안한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다면 현재까지 의미를 잃는다. 당신의 미래가 현재를 이끈다.”

‘FUTURE SELF’(퓨처 셀프/벤저민 하디의 책)의 한 구절이다. 지금 이 시절이 가장 좋은 때임을 알지 못하고(好時不知) 나름의 창의적 도전을 하지 않는 한, 사람이란 동물은 먹어도 먹어도 늘 허기지게 마련이다. 행복도 불행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란다! 다시 희망을 ‘업그레이드’하자며 내게 하는 다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