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소에 앉은 두 마리의 말’/황주리 화가 제공

며칠 후면 2026년 병오년(丙午年) 새해가 된다. 주요 일간지 ‘오늘의 운세’처럼 벌써 병오년 1년 운세를 ‘예측’하는 역술인들의 글들이 인터넷을 도배한다. 어떻게 역술인들은 한 해의 운세를 예측할까?

몇 가지 방법이 있다. 60년마다 반복되는 병오년의 과거가 어떠했는지를 살펴보는 방법이다. 왕조실록에 1666년 병오년(현종 7년) ‘가뭄 지속’, 1846년 병오년(헌종 12년) ‘혹심한 가뭄’ 등이 언급된다. 그래서 2026년 병오년도 온난화와 더불어 가뭄과 대형 산불을 예상한다는 ‘순진’한 예측이다. 가뭄이 없던 병오년들은 무시된다.

다른 방법들로는 丙午라는 글자에 대한 ‘해석학’이다. ‘2026’이란 숫자를 보고 우리는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없다. 그러나 ‘丙午’라는 글자를 두고는 ‘논문’ 한 편을 써도 부족할 정도로 해석에 해석을 거듭할 수 있다. 그 두 글자에는 십간·십이지·음양·오행이 다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점술의 도구가 아니라 동아시아에서는 세계를 해명하고 표현하려는 ‘언어’였다. 전통적으로 서양이 ‘원인→결과’, ‘물질→법칙’으로 세계를 설명했다. 반면 동아시아는 위로는 왕조의 출현에서 아래로는 한 개인의 흥망성쇠 등을 ‘기(氣)의 흐름과 변화’로 설명하려 했다. 십간·십이지·음양·오행은 그 설명을 위한 기본 문법이었다. 병오(丙午)를 도표로 표기하면 다음과 같다.

60년마다 반복되는 병오년은 오행상 ‘불의 해’다. 두 글자 모두 양(陽)이어서 뜨겁고 큰 불이다. 그래서 화기충천하는 해가 될 것이라는 게 역술인들의 해석이다. 게다가 올해 2025년은 을사년으로, 을(乙)은 오행상 나무, 사(巳)는 불이다. 두 글자 모두 음(陰)이기에 장작[乙]에 불[巳]이 붙은 형국으로 해석한다. 장작불이 연말로 갈수록 드세져 내년 병오년에는 그 불기운이 하늘을 찌를 것이라는 해석이다. 박나래·조진웅 등의 연예인들 사건들뿐만 아니라 정계·재계·종교계에서 은폐된 사건들이 터져 나올 것이라는 해석의 근거를 제공한다.

또 병오년은 붉은 말[馬]의 해다. 말은 12동물 중 가장 힘이 세다. 반복되는 60년 가운데 불기운이 가장 세기에 화재·사고·권력 충돌·사회 혼란을 예고하는 말들이 오간다. 또 2026년은 지자체장 선거와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있다. 치열한 권력 다툼과 경쟁으로 갈등이 증폭되며, 승자와 패자가 가려지는 해다. 이를 역술인들이 모를 리 없다.

그러나 음양·오행·십간·십이지는 개인과 사회의 운과 미래를 예측하고 맞추는 도구가 아니다. 세계를 조율하기 위해 만들어진 동아시아의 사유 체계다. 물질적 언어가 아닌 상징과 은유다. 병오년을 화기가 강해 사건·사고가 많을 해로 보는 관점은 물질 인과론으로 잘못 해석한 결과다. 병오년이 의미하는 것을 예측하는 게 아니라, 그해에 무엇이 드러나고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한 상징적·윤리적 질문이 필요하다.

병오년의 핵심 화두는 ‘붉은 말, 즉 적토마(赤兎馬)를 어떻게 드러내고 활용할까’의 문제다. 적토마란 단어에는 두 동물이 겹친다. 토끼[兎]와 말[馬]이다. 왜 토끼가 등장할까? 날랜 산토끼처럼 빠르고 말처럼 힘차게 질주하는 붉은[赤] 말을 적토마라고 한다. 적토마는 ‘삼국지’에 등장하는 관우의 상징이다. 적토마는 원래 한 사람 소유가 아니었다. 동탁→여포→조조→관우로 주인이 바뀌었다. 그러나 적토마에 대한 태도와 활용은 전혀 달랐다. 동탁에게 적토마는 사람(여포)을 매수하기 위한 미끼였고, 여포에게는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도구였다. 조조에게 적토마는 인재(관우)를 붙잡기 위한 자산이었다. 이들에게 적토마는 이용해야 할 사물이지 인격이 아니었다.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Ich und Du)’가 말하듯, 사물을 사물로 만날 수도 있고 인격(‘너’)으로 만날 수도 있다. 관우는 조조의 후대를 받으면서도 말은 빌렸을 뿐, 의(義)를 버리지 않았다. 적토마를 타고 갔던 곳은 그가 마땅히 가야 할 곳(유비)이었다. 그래서 적토마는 관우에게서 비로소 탈것(사물)이 아니라 의를 실현하는 ‘너’가 되었다.

2026년 병오년 적토마의 해에 적토마의 고삐를 어떻게 쥐느냐에 따라 분명 개인과 사회의 삶은 달라진다. 분명한 것은 적토마(사물과 타인)를 진정한 ‘너(인격체)’로 대할 때, 과열된 갈등들(좌우·노사·빈부·지역)이 완화될 것이란 점이다. 어느 해나 승자와 패자가 있었다(황주리 화가의 ‘시소에 앉은 두 마리의 말’은 이 점에서 상징적이다). 승자가 되는 것도, 패자가 되는 것도 자신의 선택에 달렸다.

‘불의 해는 화기가 강하여 개인과 사회가 더 혼란스러울 것’이라는 ‘불난 집에 부채질’하려는 괴담이 사라지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새해 재물운·애정운·승진운·사업운 등이 궁금하신 독자들께서는 필자가 출연하는 조선일보 경제부 유튜브 채널 ‘조선일보 머니(youtube.com/@chosunmoney)’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