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채 군(軍) 병원에 누워 있을 때부터 하늘을 나는 꿈을 꿨다. 난 자유로웠다.”
2009년 개봉한 영화 ‘아바타’는 행성 판도라의 정글 위를 나는 걸 꿈꾸는 제이크 설리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그 꿈은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꿈이기도 했을 게다. 하늘을 날 수는 없지만 나는 것 같은 실감을 영화를 통해서나마 체험하는 것. 그 영화 속에서 무한한 자유를 느끼는 것. 가상이지만 현실 같은 경험을 해보는 것.
그건 뤼미에르 형제가 1895년 파리의 한 카페에서 ‘기차의 도착’을 상영했을 때부터 꿨던 꿈이기도 했다. 단 50초 남짓한 그 최초의 영화를 본 카페의 관객들은 기차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줄 알고 비명을 지르고 자리를 피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로부터 130년이 지난 현재, 관객들은 그 정도의 영상에는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한다. 영화는 그만큼 익숙해졌고, 관객들은 점점 더 강렬한 실감을 요구하게 됐다. 특수 효과는 물론이고, 3D 같은 입체영상의 세계 속에서 진짜 하늘을 나는 느낌을 원한다. ‘돌비 애트모스’ 같은 소리에도 입체를 입히는 음향 기술과 함께.
그 정점의 기술들을 응집한 결과물인 ‘아바타’는 가상을 현실로 만들고픈 인간의 오래된 꿈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반신 마비지만 ‘아바타 프로그램’에 참가해 자신과 연결된 아바타(분신)로 판도라라는 미지의 세계를 모험하는 이야기가 아닌가. 3D 영상을 위해 안경을 끼고 영화관에 앉는 관객들은 마치 아바타로 판도라를 모험하는 제이크와 똑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제이크가 관객들의 아바타가 되어주는 것이다.
제이크는 임무 수행 중 만나게 된 나비족의 여전사 네이티리와 사랑에 빠지고 그들에게 점점 동화되며, 오히려 그들의 편에 서서 자원 채굴로 숲을 파괴하는 지구인들과 맞서 싸운다. 이 영웅담은 여러모로 원주민을 몰아내던 서부 개척 시대와 식민지 자원 수탈의 서사를 재연했지만, 여기서 흥미로운 건 제이크가 판도라에 적응하고 동화되다가 완전히 나비족이 되는 과정이다. 제이크는 그곳의 생명체들과 교감하는 법을 배우고, 익룡처럼 생긴 이크란을 타고 날아오르며 끝내 종족의 구원자가 되어 판도라를 파괴하는 지구인들을 물리친다. 그리고 그는 나비족의 생명체들을 이어주는 신적인 나무 에이와를 통해 아바타에 자신의 영혼을 옮긴다. 제이크는 이로써 아바타로 연결된 인간이 아닌 완전한 나비족이 된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도 제이크에 몰입해 보면서 그와 함께 아바타를 통해 판도라를 모험하다가 그 행성의 일원인 나비족이 되는 경험을 한다. 이 믿기 힘든 이야기는 그렇게 서서히 진짜 같은 이야기가 되고, 이제 관객들은 ‘아바타’가 후속작을 낼 때마다 그 세계에 빠져드는 경험을 반복한다. 우리의 현실은 저 하반신 마비의 제이크 같지만, ‘아바타’라는 세계로 접속되면 이크란을 타고 날아오르는 게 가능해진다. 영화의 오래된 꿈이 실현되는 순간이다.
그래서 이 새로운 영화 체험의 관점으로 ‘아바타’를 보면 그 시리즈 한 편 한 편이 새로운 경험들을 위한 세계로 보인다. ‘아바타’ 1편이 판도라라는 행성의 신비한 숲 체험을 하며 특히 하늘을 나는 경험을 만끽하게 해줬다면, ‘아바타: 물의 길’과 ‘아바타: 불과 재’에서는 바다부족과 함께 바닷속을 신비한 생명체들과 교감하며 마음껏 유영하게 해준다. 1편이 일종의 적응기였다면, 2편과 3편은 이제 적응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판도라의 모험기들이다.
‘아바타’ 시리즈는 판도라라는 낯선 행성에서 나비족 같은 낯선 부족들과 이크란·톨쿤 같은 낯선 생명체들의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그것들은 우리가 지구에서 경험한 많은 것들을 닮아 있다는 점에서 ‘상징적’이고 ‘신화적’이다. 이크란은 용을, 톨쿤은 고래를 닮았고, 숲과 바다 그리고 화산을 상징하는 부족들도 지구의 원주민들을 닮았다. 숲과 바다는 생명을 탄생시키고 살게 하는 상징이지만, 불을 뿜는 화산은 이를 파괴하는 상징이다. 그래서 이들 상징들을 숭배하는 부족들의 싸움은 마치 나무[木]와 물[水]이 힘을 합쳐 불[火]과 맞서는 신화적 상징 체계의 대결처럼 보인다. 가상의 세계 위에 다시 쓰는 인류 문명사의 재창조라고나 할까. 이것이 제임스 카메론이 세운 ‘아바타’의 야심 찬 세계다.
여기서 다시 ‘아바타’의 첫 장면인 제이크의 꿈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하늘을 나는 꿈을 꾸며 자유로웠다던 제이크는 “하지만 영원히 꿈꿀 순 없는 법”이라며 눈을 뜨는데 그곳은 판도라 행성으로 가는 우주선의 수면 캡슐 안이다. 꿈속에서는 자유롭게 날았지만 현실은 관 같은 캡슐에 갇혀 있다 깨어난 것이다. 그는 시간의 흐름도 둔감해지고 ‘술에 취해 얻어맞은 기분’을 느낀다. 그건 아마도 관객들이 3D 영화를 볼 때 갖게 되는 어지럼증과 비슷하지 않을까. 아직은 완벽하지 않은 영상 기술과 적응하지 못한 입체 영상에 대한 감각이 겹쳐 생기는 이 어지럼증은, 최첨단 기술이 결합해 테마파크화되어 가는 극장과 롤러코스터 같은 영화 속에서 오히려 클래식한 옛 영화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아바타’는 확실히 영화의 미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옛 영화에 대한 그리움 또한 커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제아무리 대단한 화력의 최첨단 무기들이 눈을 현혹해도, 저 나비족의 오래됐지만 신비로운 삶이 더 매혹적으로 느껴지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