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가 되면 많은 이들이 평소 미뤄뒀던 질문을 꺼낸다. 그동안 잘 살아왔는지, 다른 선택지는 없었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인생이 계획한 대로 쭉쭉 나아가면 좋겠지만, 현실은 대개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저마다 ‘내 인생은 왜 이렇게 풀리지 않을까’ 되묻고, 다음 선택 앞에서 머뭇거린다.

일본의 경영 전략 컨설턴트인 야마구치 슈는 “인생에서 중요한 KPI(핵심성과지표)는 타율이 아니라 ‘타석에 얼마나 자주 섰는가’”라며 “ 타석에 서는 횟수는 전적으로 자신의 의지와 행동에 달려 있다”고 했다. /위즈덤하우스

이런 이들에게 야마구치 슈(55)는 하나의 관점을 제시한다. 인생에도 경영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 일본을 대표하는 경영 전략 컨설턴트인 그는 “삶에는 늘 예상 밖의 상황이 벌어지고 다양한 장애물이 나타난다”며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어떻게든 해결해 나가는 매니징이 필요하다”고 했다. 일본 최대 광고 회사 덴쓰에서 출발해 보스턴컨설팅그룹, AT커니, 콘페리헤이그룹 등을 거친 그는 현재 컨설팅 회사인 라이프니츠 랩 대표이자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2019년)가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많이 알려졌다.

수많은 기업을 자문해 온 그는 인생을 이렇게 표현했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지만 어떻게든 노력해 볼 수밖에 없는, 가장 고통스러우면서도 재미있는 프로젝트.”

◇인생은 초장기 프로젝트

―개인의 인생에도 경영 전략이 필요하다고요?

“회사 경영과 인생을 꾸려 나가는 것은 상당히 닮아 있습니다. 둘 다 불확실하고 예측이 어려우며, 가능한 한 성공하고 싶어하죠. 회사를 성공시키기 위해 경영 전략이 필요하다면, 인생에도 (경영 전략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가 인생에 가장 먼저 대입한 경영 전략은 ‘목적 설정’이다. “올바른 전략은 올바른 목표에서 시작된다”는 원칙 아래, 인생 프로젝트의 목표를 이렇게 정했다. “시간 자본을 적절히 배분해서 지속 가능하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고, 언제 죽음이 찾아오더라도 ‘좋은 인생이었다’고 말할 수 있도록 사는 것.”

―왜 이렇게 정했나요.

“많은 이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타인이나 조직, 사회를 바꾸려고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하지만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변수는 오직 시간 자본뿐이고, 우리는 여기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돈, 지위, 명예 같은 요소는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좋은 삶과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다는 연구가 여럿 있습니다. 이런 요소는 행복한 삶의 조건일 수 있지만, 최종 목표로는 삼지 않습니다. 더구나 언제 죽음이 찾아올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지속 가능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한때 ‘높은 연봉을 받는 것’ ‘회사에서 높은 자리로 올라가는 것’과 같은 목표를 갖고 있었지만, 그것들을 달성해도 ‘행복하다’는 느낌을 얻지 못했습니다. ‘애초에 나는 내 인생을 어떻게 하고 싶은가’란 생각을 하다 이러한 목표에 이르게 됐습니다.”

그는 요즘 유행하는 인생론을 경제·사회적 성공을 추구하는 ‘마키아벨리 인생론’과 나다움을 중시하는 ‘루소 인생론’으로 나눈 뒤, “둘 다 정답은 아니다”라고 했다. “돈이 있어 사치를 부려도 그다지 행복함을 느낄 수 없다는 것, 제 속도로 여유 있게 살아도 충실감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달았습니다.” 그는 행복해지려면 개성을 살리는 삶을 살면서도 경제·사회적으로 안정된 인생을 추구해야 한다고 했다.

―마케팅 이론에서 시작한 ‘생애 주기 곡선’을 인생에 적용했네요.

“기업이나 제품이 도입-성장-성숙-쇠퇴의 단계를 거치듯, 인생도 여러 국면을 지나며 시기마다 요구되는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이 달라집니다. 씨앗을 뿌려야 할 시기인 봄에 수확하려고 하면, 가을에 수확할 수 있는 성과를 얻지 못하게 됩니다.” 그는 인생을 사계절에 비유했다. 봄(30세 전후까지)에는 다양한 일에 도전하고, 여름(~50세 전후)엔 일에 집중해 인적·사회자본을 축적하며, 가을(~70세 전후)에는 활동 반경을 넓히고, 겨울(70세 이후)에는 후배에게 지혜를 전하길 권했다.

그는 “인생은 긴 게임이지만, 바쁘다는 말을 달고 살다 보면 놀라울 정도로 순식간에 흘러가 버린다”며 “되는 대로 흘러가지 않으려면 장기 계획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인생에서 단기적 합리성보다 장기적 합리성이 훨씬 중요하다고 본다. 그는 “일본에서는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대기업 취업을 확정하고 졸업하자마자 일을 하는 사람을 성공한 인생으로 여기고, 시간을 다른 경험이나 탐색에 쓰는 일을 비합리적으로 보는데 정말 그런지 의문”이라며 “오히려 변변한 경험도 없고, 기업이나 업계를 평가할 안목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회사를 선택하는 일이 훨씬 비합리적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인생을 ‘적응 전략 게임’에 비유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유연함입니다. 상황에 맞게 계획하고, 실행하고, 수정해 나가야 합니다.”

야마구치 슈의 책은 국내 출간된 것만 10여권에 달한다.

◇오래가는 경쟁력은 인문교양에서 나온다

야마구치 슈는 ‘일’ 전문가다. 직업 선택과 일하는 방식, 철학적 사고를 일에 접목하는 방법 등에 대해 여러 책을 써왔다. 그는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며, 그중에서도 직업 선택은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핵심적인 결정”이라며 “우리가 사회와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자신의 가치를 어떻게 실현할지를 좌우한다”고 했다. 그는 기업의 장기적 경쟁력이 포지셔닝에 달렸다는 이론을 개인의 인생에도 적용했다.

-어떻게 적용되나요.

“개인도 어디에 자리 잡느냐에 따라 수익성이 달라집니다. 수요보다 공급이 많은 기술이나 능력은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죠. 유행하는 자격증이나 학위를 따는 데 시간을 쓰는 건 가장 비효율적인 선택입니다.”

그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포지셔닝은 없다”면서, 이부세 마스지의 ‘산도롱뇽’이란 소설을 인용했다. 작은 바위틈에 만족하며 살던 도롱뇽이 성장하면서 틈새가 점점 좁아져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아무리 매력적이고 안락한 위치라도 안주하면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위험해집니다.”

-이직이나 전직은 언제가 적기일까요.

“성장이 정체될 때. ‘질린다’ ‘심심하다’란 생각이 들 때가 자리를 옮길 때입니다.”

-AI 시대,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AI가 잘하는 영역에서 열심히 하려고 하지 않는 것. AI는 주어진 문제의 정답을 찾는 데는 강하지만, 문제를 만들고 정답을 실행하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영역입니다. 앞으로는 누구도 생각해 내지 못한 중요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사람들을 통솔하는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그 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라 봅니다. AI가 만들어 내는 수많은 정답을 진정한 가치로 바꾸기 위해, 질 좋은 질문을 던지는 능력이 중요해질 것입니다.”

-문제 제기 능력은 어떻게 높이죠?

“오랫동안 변함없이 중요한 가치는 앞으로도 그 중요성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장 오래가는 경쟁력은 인문 교양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인문 교양은 답이 불분명한 상황에서 바른 판단을 내리는 데 필요한 사고의 기술이니까요.”

그는 “자기 삶을 평가하는 기준은 결코 타인이 정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삶은 무엇인가?’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우선순위를 세워야 합니다. 자기만의 스타일이 필요합니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가능한 한 많이, 자주 타석에 서서 힘껏 방망이를 휘둘러야 합니다. 몇 번이고 실패하면 두려움은 사라지고 익숙해집니다. 계속 실패하기란 의외로 어렵거든요.”

-성공하는 사람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자기 인지 능력과 행복 감수성이 높은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이 ‘남이 좋다고 하는 인생’을 살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A에게 좋은 삶이 B에게 좋으리란 보장은 없지요. ‘나는 지금 행복한가’ ‘나는 언제 행복을 느끼는가’에 대한 답이 중요한 겁니다.”

◇창피하지 않은, 나다운 인생

야마구치 슈의 이력은 독특하다. 게이오대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같은 대학원 미학미술사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대학을 나와 광고회사를 거쳐 컨설팅 업계에 뛰어들었다. 흔한 경영학 석사(MBA) 학위 하나 없이 승승장구했다.

-경영학은 전공하지도 않았지요.

“MBA 지식은 컨설팅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핸디캡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어중간하게 경영에 대한 지식이 있는 것보다 ‘0부터 내 머리로 생각하자’ 하는 각오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 유리했던 것 같습니다.”

-책도 많이 쓰고 강연도 많습니다. 워커홀릭인가요.

“번아웃이 올 때까지 열심히 일한 적은 없어요. 적당히 힘을 빼고, 때론 땡땡이를 치곤 했습니다. 부지런하기보다는 호기심이 많은 편이라, 항상 뭔가를 찾거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재미있는 것을 좋아해서, 알게 된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그는 인생에 큰 영향을 주는 선택을 ‘어디에 있는가’ ‘누구와 있는가’ ‘무엇을 할까’로 정리했다. “사람마다 자기다움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장소가 있다고 믿는다”는 그는 마흔다섯에 도쿄에서 하야마(도쿄 근교 휴양지)로 이사했다. 성공의 상징이라 여기는 것들을 게임에서 아이템 모으듯 쌓아가던 날들에, 불현듯 바다 근처에 살아보고 싶다는 절박함이 밀려들었기 때문이었다고. 그는 이사를 계기로 주말에도 일하던 습관을 끊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늘렸다. 그는 “독립 연구자, 작가, 강연자로 전향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그는 유명한 독서광이다. 초등학생 시절 SF소설을 읽으며 책에 눈을 떴다. “요즘은 얼마나 책을 읽느냐”는 질문에 “훑어보는 것은 1년에 수백 권,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읽는 것은 1년에 50권 정도 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인생의 책’으로 성경을 꼽았다.

-신간 제목이 ‘나는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가’죠. 당신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가요.

“저는 인생을 결코 만만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돌아봤을 때 창피하거나 후회되지 않는, 나다운 인생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는 경영 전략을 삶에 적용하는 것은 유용한 일이지만, 기업과 달리 인생에는 명확한 승패나 성과 지표가 없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인생의 끝이 아니라 과정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 얼마나 자주 ‘태어나길 잘했다’고 느낄 수 있었는지, 그 총량이 삶을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고 봅니다.”

그는 인생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후회한다고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과거의 의미는 충분히 바꿀 수 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