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스타트업 기획자인 30대 서승환씨는 누구나 그렇듯 연말에 새해 결심을 세운다. 독서나 운동 같은 평범한 것들이다. 다른 점은 시작일이 1월 1일이 아니라 한두 달 전인 11~12월이라는 것.
그는 “연말에 1시간쯤 내 한 해를 돌아보며 신년에 할 일 목록을 만든다”며 “그중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는 ‘쉬운 결심’을 한두 개 골라 바로 실행해 본다”고 했다. ‘새해엔 아침 7시부터 일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으면 12월부터 오전 8시에 시작해보는 식이다.
서씨는 “새해 목표를 미리 맛보면 계속할지 말지 정하거나 목표를 수정할 여유가 생기고, ‘작은 성공’에 대한 자신감이 붙는다”며 “효과가 좋아 이젠 새해 결심을 11월 중순으로 앞당긴다”고 했다.
다이어트와 운동, 저축, 금연·금주, 유튜브 끊기와 책 읽기. 단골 새해 결심이지만 지속하기 쉽지 않다. 새해 결심의 80%가 1분기 내 중단되고, 목적을 최종 달성하는 비율은 8%에 그친다고 한다.
왜일까. 새해엔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겠다는 기대가 크다. 하지만 막상 연초가 닥치면 가장 바쁘고 어수선하고 피곤한 시기이기도 하다. 초반 적응 과정은 난관에 부딪히기 쉽고, 마음이 조급해져 포기도 빨라진다.
매년 반복되는 새해 결심 실패 증후군 때문에 미국심리학회(APA)는 “1월 1일은 ‘마법의 날’이 아니다. 새해 결심에 대한 집착부터 버리라”고 권고한다. 12월 31일까지 과식·과음과 과소비를 하다가 1월 1일부터 확 달라지겠다는 계획이 무산되면 장기적으로 건강과 재정에 더 큰 해악을 끼친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리, 가볍게 시작하면 성공률이 높아진다. 행동과학자들은 새해 결심 성공률을 높이려면 ‘실현 가능한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라’ ‘새로운 습관이 자리 잡을 때까지 적응 기간(탐색하고 실패할 기회)을 두라’고 한다.
그 전환기를 연말로 앞당긴다면? 주변을 정리하고 차분하게 루틴을 만들면 새해에 쏠릴 부담이 분산된다. 또 새해 결심은 남들이 하니까 따라 하는 ‘외재적 동기’에 해당하는 반면, 연말에 스스로 시작한 변화는 ‘내재적 동기 부여’에 가까워 지속력이 더 강하다고 한다.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 황희진 가정의학과 교수는 “1월 1일부터 금연하기로 했다면, 크리스마스에 가족에게 ‘금연 선언’을 선물하고 담배와 멀어지는 연습을 당장 시작하라”고 했다. 12월에는 기상 직후 피우는 모닝 담배 대신 다른 일부터 해보고, 담배에 손 뻗는 시간을 지연시키거나 흡연 장소를 좀 더 먼 곳으로 바꾸고, 치아 스케일링과 집 청소를 하라는 것이다.
다이어트도 “새해엔 3㎏ 빼야지”가 아니라, 연말부터 저녁 식후 15분 걷기, TV 볼 때 간식 끊기, 송년회 후 식단 관리, 냉장고 정리 등을 통해 뇌에 ‘달라진 환경’을 학습시키면 새해에 본격적인 감량 단계로 진입하기 쉬워진다고.
부산의 헬스 트레이너 신모씨는 “딱 새해부터 운동하겠다는 선택 자체가 실패의 지름길”이라고 했다. 운동 시설엔 1월에 신규 회원이 몰리는데 대기 시간이 길고 초보자라 눈치 보여 운동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것. 그는 “한산한 12월부터 등록해 천천히 적응할 것을 권하는데, 그런 분들이 끝까지 운동을 해내는 비율이 높더라”고 전했다.
이미 해외에선 새해 결심을 앞당겨 시작하는 자기 계발 열풍이 불고 있다. 최근 영미권 Z세대 젊은 층의 틱톡 등에 ‘위대한 잠금(The Great Lock-In·대대적인 집중과 몰입)’이나 ‘윈터 아크(Winter Arc·겨울 분기에 걸쳐 이어지는 스토리)’란 키워드가 자주 눈에 띈다. 이는 쉽게 말해 ‘새해 결심의 대안’이자 ‘시즌 확대판’이라고 할 수 있다.
춥고 어둡고 속도가 느려지는 겨울은 자기 정비와 내적 성장을 꾀하기에 적기라고 한다. 이때 과도한 사교 활동이나 SNS 중독, 각종 신체적·금전적 낭비를 끊고 건강식과 운동, 명상을 통해 내 삶에 대한 집중력과 통제권을 되찾을 수 있다고 한다. 새해를 맞기 전 습관을 바꾸는 데 최소 3개월이 걸린다는 점에 착안, ‘위대한 잠금족’들은 빠르면 9~10월부터 이 챌린지에 돌입한다.
불확실한 시대, 새해 결심을 작심삼일로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고수들은 이렇게 분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