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벼락 너머 세상에 유통되는 책이 있다. ‘안쪽이’(교도소 수용자들을 부르는 별칭이라고 한다)들에게 알음알음 입소문이 나면서 품절대란이라는 ‘옥중비급’ 얘기다. 교도소에서 가장 소중하게 보관되는 책, 혹은 옥살이의 무공을 터득하게 해주는 책 정도로 해석될 수 있겠다.

옥중비급은 올해 3월 1호를 시작으로 지난 10월 나온 4호까지 총 4편 제작됐다. 지은이 강철문, 발행처 테드스튜디오, 출판사 나혼자만출판. 간행물윤리위원회 심의를 통과했고, 다음 호는 이달 중 출간할 것으로 예고하고 있다. 각 호당 500부 남짓 제작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현재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3·4호를 구해봤다. 한권 당 3만3000원에 판다. 잡지치고는 꽤 비싸다.

옥중비급 3·4호의 표지. 겉만 봐서는 어떤 내용의 잡지인지 알 수 없다. /인터넷 캡처

숏츠·인스타 흉내내는 잡지

분명 남성향 잡지다. AI로 만든 헐벗은 여성 사진을 시작으로 곳곳에 아슬아슬한 수영복 차림의 여성이 등장했다. 내용은 주로 ‘바깥’에서 유행하고 있는 콘텐츠, 화제가 된 사건·사고, 최신 유행·유머 등이 담겼다. 이 역시 남성 취향이 많다. ▲미녀 아나운서 방송 시간 ▲여자들이 성형을 멈출 수 없는 이유 ▲2025 상반기 일본 신인 여배우 등이다.

인터넷도 휴대폰도 없는 교도소 안에서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틱톡을 인쇄물로 볼 수 있도록 정리한 것으로 이해하면 쉽다. 특히 ‘댓글’, ‘대댓글’을 살펴보는 재미를 놓치지 않도록 이 역시 함께 편집해 인쇄했다. 스마트폰 세대인 요즘 재소자들은 숏츠나 넷플릭스, SNS와 단절되는 게 가장 힘든 지점일 것. 그 니즈를 파고들어 인터넷 흉내를 내는 간행물을 만든 셈이다.

그런가 하면 ▲케데헌이 지구를 접수한 이유 ▲AI 대혁명 나노바나나 같은 꽤 시사적인 이슈도 실려 있다. “와이파이도 넷플릭스도 없는 철창 안에 있는 당신을 위해 전한다. 지금 바깥세상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라는 애니메이션 하나로 완전히 뒤집어졌다”라는 리드글을 시작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오픈런 현상, 역대급으로 늘어난 외국인 관광객, 한국어 열풍 같은 뉴스와 사회 현상 등을 정리했다. 챗GPT와 나노바나나, 제미나이 등 AI의 일상적 활용 사례 등을 소개하기도.

재소자 연인·가족을 둔 사람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는 ‘안쪽이가 보내달라는데 어느 편이 가장 재밌나요?’ ‘옥중비급2 구매 원합니다’ ‘청주교도소 옥중비급 넣어줬더니 싫어하네요’ 같은 글이 올라온다. 화투·문신 그림이 포함된 호는 해당 페이지만 찢어냈더니 반입이 됐다는 후기도 있다.

쇠털같이 많은 날을 보내는 법

‘보라미 편지’는 편집자레터 격이다. 지은이 강철문씨는 7월 출간된 3호에서 보라미 편지에 “나는 안다. 그곳의 여름은 진짜 지옥이라는 걸. 선풍기는 50분 돌고 10분 멈춘다… 안에 틀어박혀 있으면 안 된다. 직훈(직업 훈련)이든 출역(작업장에서 일하는 것)이든 나가라”고 했고, 4호에서는 “모포 방석 깔아서 생활하는 등 건강관리 유의는 필수”라고 썼다. 강씨 역시 복역 경험이 있고, 당시 경험에 비춰 이런 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옥중비급을 만들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코너에서 재소자들이 보낸 질문에 답을 하기도 하는데, “옥중비급 가격이 비싸다”는 지적에 “1페이지당 150원꼴이면 아득히 남은 시간을 보내기엔 꽤 가성비 있다. 한 사동에 한 권만 사서 돌려보시라”고 하는 식이다. 장기수가 징역에서 따기 좋은 학위, 자격증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독학사 법학·심리학·경제학 추천한다. 자격증은 공인중개사·행정사·기사 자격이 취업에 도움되고 평생 써먹을 수 있다”고 답했다.

이렇듯 ‘감옥 맞춤형’인 만큼 화제가 된 사건이나 판례에 대한 분석도 포함돼 있다. 억울한 성범죄 누명 피하는 10원칙, 화성 동탄 경찰서 성범죄 누명 사건, 성폭력 무죄 판례, 민사상 채무 불이행과 형법상 사기죄 등의 기사(?)도 실려 있다. ‘죄수 운동법’이나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도 한 편씩 포함돼 있다.

이 출판사는 옥중비급 외에도 ▲2025 가석방 트렌드 리포트 ▲2025 사기죄/강간죄/마약범죄 죄목별 무죄 판례집 ▲판사의 마음을 울리는 반성문·탄원서 작성법 같은 문건도 A4 프린트 제본으로 판매하고 있다. 수요 없는 공급은 없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