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진석 더불어민주당 원내운영수석부대표가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김남국 대통령비서실 국민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를 보내고 있다. 문자에는 홍성범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상무를 회장으로 추천해 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문 수석은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거니까 아우가 추천좀 해줘봐’ 라고 전달했다. /뉴스핌 제공

마트 점원이 나이 지긋한 손님을 ‘아버님’ ‘어머님’으로 부른다. 직장에서 친해졌다 싶으면 ‘형’이고, 수영장에선 ‘언니’에게 레인을 양보한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내 아이의 ‘삼촌’과 ‘이모’가 돼줄 것을 청한다.

한국 사람들은 타인에게 가족 호칭을 즐겨 쓴다. 사회생활 하려면 “내 아들 같아서” “가족처럼 지내는” “동생으로 봐달라” “남 일 같지 않아서” 같은 숙어도 적절히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핏줄끼리 통하는 엉겨붙기와 봐주기라는 끈끈한 정서, 모른 척하기 힘들다. 개인의 독립성과 이성과 원칙이 지배하는 공적 질서만 내세웠다간 ‘정이 없다’ ‘위아래도 모른다’는 말 듣기 십상이다.

대통령 비서관이 여당 국회의원에게서 대학 동문에 대한 인사 청탁을 받으면서 “훈식이 형과 현지 누나”를 언급해 파문을 일으켰다. 한국인이라면 이 말의 맥락이 단박에 이해되지만, 알기 때문에 더 역겹다는 이들이 많다.

정작 진짜 가족끼리는 끌어주지도 밀어주지도 못하는 불황과 분열의 시대, 21세기 공조직에 판치는 ‘유사(類似) 가족’이 점화한 분노를 들여다봤다.

남인데, 물건인데... 가족으로 부르는

한국에선 생판 남인 연장자를 내 직계 존속처럼 ‘할아버지·할머니’ ‘아버님·어머님’이라고 부른다. 거래·계약 관계인데도 ‘형’ ‘언니’ ‘삼촌’ 등으로 허물없이 지칭한다.

같은 유교 문화권인 일부 동남아 국가에 비슷한 언어 현상이 있지만 그 범위가 한국처럼 넓지 않다고 한다. 영어권에서 친한 남성끼리 ‘브로(bro·형제의 준말)’라고 부르는 관습이 흑인 문화에서 유래했지만, 그 외의 가족 호칭은 쓰지 않는다.

용례가 너무 넓어져 산으로 가기도 한다. 여성이 남자친구나 남편, 좋아하는 남자 연예인을 가리키는 ‘오빠’가 대표적이다.

‘이모’는 어머니의 여자 형제라는 본뜻에서 벗어나 엄마와 가까운 여성, 뭔가 인심 쓰고 챙겨주는 여성, 주방·청소일 하는 여성 근로자, 베이비시터 등으로 확장됐다. 심지어 식기세척기·빨래건조기·로봇청소기 같은 가전이 ‘3대 이모님’으로 통칭된다.

‘우리 집 막내’는 애교 덩어리 반려견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리 잡았다. 견주는 ‘엄마·아빠’를 자처한다. 서울 강서구에 사는 70대 S씨는 “아는 동네 여자가 개를 안고 가다 날 보곤 ‘이모할머니한테 인사해야지’라고 말해 깜짝 놀랐다”고 했다.

김남국 전 대통령실 비서관의 '훈식이형과 현지누나' 호칭 문제를 계기로 진보 진영의 뿌리깊은 가족주의가 주목받고 있다. 박지원 의원은 "형 누나로 살갑게 부르는 것은 민주당의 오랜 언어 풍토"라고 했다. /일러스트=유현호

이처럼 타인에게 가족 호칭을 쓰는 현상을 학술적으로 ‘가족 확장주의’ 또는 ‘확대 가족주의’라고 한다. 인지심리학자인 김경일 아주대 교수는 “한국은 지리·역사적으로 개인의 역량만으론 생존이 힘들어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서 안전을 추구해왔다. 특히 좁은 땅에 모여 살며 (벼농사) 공동 노동을 하다 보니 나이와 서열에 맞춰 사는 문화, 즉 ‘가족 내 나의 위치’로 자신을 규정하려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설명한다.

씨족 중심 농경 사회는 1970년대 붕괴했지만 타인을 친족으로 부르는 습성은 살아남았다. 문화심리학자 한민은 “한국인 인간관계의 원형은 여전히 가족이다. 가족의 따뜻한 감정과 시너지를 제삼자에게 느낀다는 건 한국인의 대단한 심리적 자산”이라면서도 “가족에게나 할 기대를 공적·계약 관계에 투사하는 건 현대 사회 구성원의 자세는 아니다”라고 했다.

정치적 파장 일으킨 오빠·누나·딸

범람하는 가족 호칭을 부적절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아졌다. 각종 자격과 권리·의무로 이뤄진 공식적 관계에서 생긴 정체성을 무시하고 나이와 성별로 줄 세워 엉기며 공사(公私)를 무너뜨리는 것이 더는 ‘한국 특유의 정’으로만 통하지 않고 있다.

한 약사는 손님이 “언니”라고 부르자 “내가 왜 당신 언니냐, 의사에게도 오빠라고 하느냐”며 격하게 반응, 몸싸움이 일어나 경찰이 출동한 사건이 있었다. ‘언니’는 유흥업소 종사자에게 쓰이면서 젊은 여성을 낮춰 부르는 뉘앙스가 강해졌다.

기성세대도 선 넘는 호칭을 불편해한다. 전국의 노인 복지관에서 호칭 선호도 조사를 해보면, 요즘은 70~80대도 ‘아버님·어머님’ ‘어르신’ 대신 ‘회원님’이나 ‘고객님’으로 불리기를 원한다고 한다.

60대 남성 김모씨는 “‘국민 MC’라는 코미디언이 TV에서 툭하면 다른 출연자를 ‘형’ ‘누나’라고 부르던데, 연예인끼리의 사적 친분을 과시하는 건 시청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방송인 유재석이 2022년 공중파 TV 예능 프로에서 같은 코미디언인 박미선 이경실 조혜련 등에게 "내가 누나들에게 받은 게 얼마나 많은데"라며 '막내동생'으로서 백화점에서 옷을 사주는 장면. 유씨는 다른 인터뷰 프로에서도 사적 친분아 있는 출연자들을 '형' '누나'로 호칭한다. /MBC

윤석열 전 대통령 부인 김건희씨의 수많은 ‘오빠’도 구설을 낳았다. 그는 인터넷 매체 기자에게 나이를 묻고 “그럼 오빠네요, 여동생처럼 대해주세요”라고 하고, 자신을 스토킹하는 좌파 유튜버에겐 “동생이니 누나로 생각해달라”고 했다. “철없이 떠드는 우리 오빠 용서해주세요. 무식하면 원래 그래요”라는 명태균씨와의 문자에선 ‘오빠’가 남편이냐 친오빠냐를 두고 설왕설래가 일었다. 공적 영역의 문제를 사적 인연으로 해결하려는 처신은 엄청난 정치적 나비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이런 상황에서 김남국 전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이 문진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서 ‘아우’로서 인사 청탁을 받고 강훈식 비서실장과 김현지 제1부속실장을 ‘형·누나’로 지칭하며 권력을 과시해 논란이 됐다.

이에 대해 5선의 박지원 의원은 “형·누나로 살갑게 부르는 건 민주당의 오래된 언어 풍토”라고 했다. 실제 386 운동권은 군부 독재에 맞서 활동할 때 의식주를 함께하며 가족 의식으로 묶였고, 이념 공동체를 넘어선 생계형 이권 공동체로 진화했다는 분석이 있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는 “만성적 전쟁 위협과 불투명한 미래 속에 가족 네트워크에 집착했던 시대가 있었다. 1980년대 운동권 안에서도 이념보단 학연·지연 같은 연고에 따라 노선이 달라졌다”며 “그러나 가족 관계가 정치판과 노동·시민 운동에까지 확대돼 아직도 같은 패거리끼리 중요 사항을 논의하고 결정한다는 건 한국 사회의 큰 병폐”라고 지적했다.

“가족같이…” 저신뢰 사회의 그늘

이재명 대통령이 2022년 대선 당시 '재명아빠'로 불리는 온라인 팬클럽을 통해 '개딸'과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진 문자. /인터넷 커뮤니티

가족 이데올로기의 뿌리는 진보 진영에서 깊다. 친노 세력은 2007년 대선에서 패배하자 스스로 ‘폐족(廢族·조상이 큰 죄를 지어 자손의 벼슬길이 막힌 집안)’을 선언했다. 구태 정치 타파를 내세웠던 정파의 ‘유교 가족 인증’은 놀라움을 안겼다.

이재명 대통령의 팬클럽 역시 ‘개딸(개혁의 딸)’과 ‘냥아들(양심의 아들)’이 ‘재명아빠’에게 효도하는 서사로 똘똘 뭉쳐 있다. 이 대통령은 이를 “세계사적 의미가 있는 새로운 정치 행태”라고 했지만, 배타적 봉건 질서를 지향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에서 가족을 내세우는 조직은 가장 조심해야 할 집단이 됐다. “가족처럼 지내실 분”이란 구인 광고는 대개 최저 시급도 안 주고 마음대로 부려 먹는 막노동 일자리를 뜻한다. 형님과 삼촌, 이모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 조폭과 마약·성매매 업계도 그렇다. “딸 같아서 그랬다” “손녀처럼 예뻐서 만졌다”며 성추행을 정당화하는 범죄자도 있다.

방송인 박나래가 최근 전직 매니저들의 폭로로 궁지에 몰리자 "가족같이 지냈던 분들"이라며 올린 사과문. /인스타그램

최근 방송인 박나래의 전직 매니저들이 “폭언과 갑질, 사적 심부름을 당하고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폭로했는데, 박씨의 해명 첫 줄부터 예의 ‘가족’이 등장했다.

“가족처럼 지냈던 매니저들이 갑자기 퇴사한 후 얘기할 기회가 없었다.” 그가 ‘주사 이모’에게서 무면허 불법 의료 시술을 받은 점도 논란이 됐다.

정치 철학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퍼드대 교수는 “명확한 시스템이 무력화되고 혈연 네트워크가 중요하게 통하는 사회는 결국 공적 신뢰 자본이 약한 ‘저(低)신뢰 사회’”라고 했다. 실력과 원칙이 아닌, 유사 가족의 울타리 속에 숨은 연줄과 끼리끼리 나눠 먹기가 성공의 공식이 된다면 선진국이 아니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