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부부인 장모(36)씨는 두 달 전부터 2주에 한 번씩 배추김치 반 포기(약 1㎏)와 4주에 한 번 파김치 500g을 ‘구독’하고 있다. 정해진 날짜에 맞춰 마치 우유처럼 현관문 앞으로 김치를 배송해 주는 서비스다. 장씨 부부가 김치에 쓰는 돈은 한 달에 3만원 안팎. 그는 “그간 부모님 댁에서 김치를 받아먹었지만 올해부터 본가에서도 김장을 하지 않기로 했다”며 “갓 담근 김치를 좋아하는데 매번 사는 게 번거로워 배달시켜 먹기로 했다”고 말했다.

최근 소포장 ‘김치 구독’ 서비스가 확산하고 있다. 김치를 담그지 않는 집이 늘고 있는데, 김치는 없으면 허전한 반찬이다. 떨어질 때마다 사러 가는 일이 스트레스다. 그렇다고 몇 포기씩 대량으로 사서 보관하자니 부담스럽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의 ‘2025년 소비자 김장 의향 및 주요 채소류 공급 전망’에 따르면 올겨울 김치를 담그는 대신 “상품 김치를 구입하겠다”고 답한 가구는 3명 중 1명(32.5%)꼴로 전년(29.5%)보다 늘었다.

◇1~2인 가구 겨냥해 소포장

원하는 중량, 배송 기간, 총 회차를 입력하면 끝. 신청도 간편하다. 월간농협맛선은 지난 3월 소용량 김치 구독 서비스를 출시했다. 최대 4주 주기로 배추김치와 총각김치·깍두기·백김치 등을 2~4㎏ 단위로 판매한다. 구독자는 출시 후 8개월 만에 10배 이상 늘었다. 구독자의 35%가 1인 혹은 2인 가구다. 농협경제지주 관계자는 “소용량 중에서는 포기김치 2㎏이 판매량 34%, 포기김치 1㎏와 총각김치 1㎏ 세트로 구성된 상품이 33%로 구독 비율이 높은 편”이라고 했다.

젊은 층은 물론 중장년층도 찾는다. hy(옛 한국야쿠르트)가 종가와 협업해 아침마다 배달하는 김치 정기 구독 서비스는 구독자의 70%가 50~60대다. 조선호텔앤리조트도 3월부터 ‘프리미엄 김치’ 구독 서비스를 시작했고 워커힐 호텔앤리조트 역시 500g부터 9㎏까지 다양한 중량의 김치 정기 구독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워커힐 호텔앤리조트 관계자는 “올해 구독을 포함한 김치 매출이 작년보다 1.6배 이상 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한 김치 업체에서 판매하는 250g짜리 '초미니 캔 김치'. 배추김치 5분의 1포기 수준이다. /업체 제공

◇김치 5분의 1포기 구독

표준 맛, 전라도 맛, 경상도 맛 김치까지 골라 사 먹는 김치 왕국. 한국인이 김치 맛에 까다롭다는 방증이다. 맛 변화를 우려하는 이들을 위한 ‘초미니 캔 김치’ 구독도 등장했다. 통조림 형태로 뚜껑을 닫아 보관할 수 있어 다른 용기에 김치를 옮겨 담을 필요도 없다.

주로 집에서 밥 먹을 일이 적은 이들이 택한다. 캔에 담긴 배추김치나 백김치·동치미 등을 1~4주에 한 번씩 500g 단위로 구독 판매 중인 업체는 ‘옮겨 담을 반찬 통도 없고 냉장고에 자리도 없는 1인 가구나 자취생’을 대상으로 홍보한다. 2주에 한 번씩, 350g부터 구독 배송이 가능하다는 업체도 있다. 배추김치 기준 대략 5분의 1포기 수준이다.

다양한 형태의 김치 구독이 늘어나는 이유는 맛이 유지된 채로 먹을 수 있는 데다 ‘먹을 만큼만 알아서’ 배달해주는 편리성 때문이다. 직장인 유모(33)씨는 “집에서 밥을 자주 먹지 않다 보니 한 포기만 사다 놔도 김치 맛이 쉽게 변하더라”며 “어쩌다 라면이라도 끓여 먹을 때 가장 생각나는 반찬인데 마트도 자주 가지 않다 보니 신청한 것”이라고 했다.

일회성으로 사는 것보다 저렴하다는 이유도 있다. 다수의 업체가 첫 구독 프로모션이나 다회차 할인 혜택을 앞세워 구독을 독려하기 때문. 열무물김치를 1㎏ 단위로 판다는 한 업체는 4회차부터 5% 할인을, 당일 생산 배추김치를 배송한다는 또 다른 업체는 12회차 구독 시 10% 할인을 해 준다. 업계 관계자는 “경쟁사로 이탈할 가능성을 낮추려는 전략”이라며 “시중에 유통되는 제품이 다양하다 보니 한 제품을 고정적으로 사기보다 김치가 떨어진 그 시점에 할인 중인 김치를 사는 고객이 많은 편”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신선도와 편의성, 원하는 김치를 골라 주문할 수 있다는 취향과 가성비 요소가 맞아떨어진 현상”이라고 말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김치냉장고 이용조차 번거롭게 여기는 소비자들도 있다”며 “생수나 밑반찬처럼 김치도 정기적으로 소비하는 흐름 속에 편입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