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오후 2시, 천안시 서북구 쌍용동 한 아파트에서 40대 A씨가 흉기를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는 바로 윗집에 살던 70대 B씨에게 흉기를 휘둘렀고, 흉기에 찔린 채 아파트 관리사무소로 피신한 B씨는 결국 숨졌다. 당시 B씨 집에선 베란다 등에 대한 인테리어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고 한다. 경찰은 A씨가 인테리어 공사에 따른 소음에 불만을 품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A씨를 살인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
인테리어 공사 소음을 참지 못하고 흉기를 든 건 A씨뿐만이 아니다. 지난 8월엔 서울 중랑구 한 아파트에서 40대 C씨가 공사 소음이 시끄럽다며 흉기를 들고 이웃 세대를 찾아갔다가 특수 협박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지난 5일 부산지법 형사11단독 정순열 판사는 위층에서 진행된 인테리어 공사 소음을 참지 못하고 흉기를 들고 현장 작업자를 찾아가 협박한 30대 D씨에게 특수협박 등 혐의로 징역 6월을 선고했다. 그야말로 인테리어 공사가 사람 잡은 것이다.
◇‘집스타그램’에 너도나도 고친다
가정집 인테리어 수요는 재택근무 등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던 코로나 기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00년 9조원에 불과했던 국내 인테리어 시장 규모는 코로나 사태가 끝나가던 2022년 60조 규모로 성장했고(한국건설산업연구원), 온라인상에선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자신의 집을 자랑하는 ‘온라인 집들이’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이른바 ‘집스타그램’. 소셜 미디어인 인스타그램에 이 문구를 단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589만개의 게시물이 뜬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59㎡(약 18평) 아파트에 혼자 사는 회사원 박모(38)씨도 3년 전 집을 고쳤다. 박씨는 “이전엔 늘 ‘결혼하면 예쁘게 꾸미고 살아야지’라는 생각에 집엔 큰 투자를 하지 않고 지냈다”며 “코로나 시기를 지나고 보니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 곳이 집이더라. 큰맘 먹고 한 달여에 걸쳐 집수리를 했다”고 말했다.
‘오늘의집’ ‘아파트멘터리’ 등 인테리어를 기반으로 한 스타트업이 성장한 것도 이 시기다. ‘오늘의집’은 “24평 구축 아파트 이렇게 고쳤습니다” 같은 이른바 ‘온라인 집들이’를 기반으로 인테리어 업체 중개와 가전·가구 소품 판매 등을 한다. 지난해 매출 2879억원, 당기순이익이 52억6000만원으로 각각 전년 대비 22.3%, 127.4% 증가했다. ‘평당 300만원 인테리어 시대’를 연 ‘아파트멘터리’도 고속 성장 중이다. 특히 강남 3구에서 잘나가는 이 업체는 2016년 창업 후 매출이 9억원에서 지난해 645억원으로 70배 늘었고, 최근엔 홍콩으로도 진출했다.
서울 강남의 한 부동산 공인중개업자는 “최근엔 입주 전 인테리어 기간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는지가 매도인과 매수자 간 중요 이슈”라며 “이 경우 잔금은 언제 치르며, 관리비는 어떻게 할지, 혹시라도 하자가 있을 시엔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지 등을 잘 조율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했다.
◇동의서만 받으면 누구나 공사
문제는 소음이다. 최근 인테리어 공사는 도배나 싱크대 설치 등 단순 작업에 그치지 않고, 가벽 철거부터 화장실 타일 및 목공 작업, 전기 설비까지 웬만한 신축 건설 현장을 방불케 한다. 특히 최근 바닥재로 많이 쓰는 강마루 등은 바닥과 마루가 본드로 단단히 접착돼 있어, 전용 기계로 제거해야 한다. 마루 철거와 시공은 아래층 천장과 맞닿아 있는 특성상, 단순히 소리가 큰 정도가 아니라 아랫집에서 “지진 난 것 같은 진동과 떨림”을 호소하는 주범이다.
법적으로 허용되는 소음은 평일 오전 9시~오후 6시 기준 65dB(데시벨) 이하다. 전화벨 소리(60dB)보다 시끄럽고 번잡한 길거리 소음(70dB)보다는 조용한 수준이다. 하지만 이를 초과하더라도 개인이 증빙 자료를 갖춰 신고까지 하는 일이 쉽진 않다. 서울 종로구의 20년 된 아파트에 거주하는 전모(61)씨는 “최근 3개월 사이 같은 동에서만 세 가구가 인테리어 공사를 했다”며 “휴대전화 앱으로 소음 측정을 해보니 순간 70dB까지 치솟을 때도 있었지만, 신고 절차도 복잡하고 어차피 몇 주 하고 말 공사인데 싶어 주변 카페에 몇 시간씩 나가 있는 방식으로 견뎠다”고 했다.
현재 인테리어 공사 대부분은 아파트 관리 규약에 따라 공사 신고를 하고, 입주민 동의서만 받으면 할 수 있다. 아파트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입주민 60% 이상이 동의하면 공사가 가능하다. 인테리어 업체에 따르면 공사 소음 등이 달갑지 않긴 해도, 주민 동의율 60%를 넘기는 게 어렵진 않다고 한다. 대체로 “우리도 필요하면 언제든 공사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있는 데다, 새로 이사 오는 이웃과 굳이 얼굴을 붉히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
물론 공사 소음 때문에 잘 동의해 주지 않는 주민도 있다. 업체 관계자는 “요즘은 대부분 맞벌이로 낮 시간엔 집을 비우거나, 모르는 사람이 벨 누르면 문을 잘 열어주지 않기에 동의서를 문 앞에 놓고 서명해서 다시 놔두라고만 이야기한다”면서 “그럼에도 이를 구겨서 버리거나 다 찢어서 대문 앞에 놔두는 집도 더러 있다”고 했다.
◇“수능 전엔 자제해달라” 요청도
일부 지역 아파트에선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는 인테리어 공사를 하지 않는 게 불문율처럼 여겨진다. 몇 년 전부터 대치·역삼·도곡동 등 이른바 학군지 주요 아파트 일부에 “수능 때까지는 인테리어 공사를 자제해달라”는 안내문이 엘리베이터 등에 게재됐다. 고3 수험생의 경우 수능 약 1~2주일 전부터 컨디션 조절 등을 위해 일찍 하교해 집에서 공부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배려해 달라는 것이다. 요즘은 따로 안내문 없이도 시험 기간 등에는 알아서 최대한 공사를 자제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공사 소음은 혼자 남은 반려동물에도 종종 문제가 된다. 사람은 출근하거나 등교하지만, 반려동물은 그러지 못하기 때문. 실제 몇 년 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엔 “인테리어 한다고 했더니 ‘애견 호텔비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는 글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아랫집에서 강아지가 예민해 그런다며 하루 15만원씩 20일치 애견 호텔비 총 300만원을 달라고 요구했다”는 내용이었다. 과한 요구란 반응이 대부분이긴 했지만, 실제 빈집에서 공사 소음이나 진동을 겪어야 하는 반려동물을 걱정하는 주인도 많다. 서울 은평구에 사는 이모(35)씨는 “윗집 인테리어 공사 기간 홈캠으로 보니 강아지가 순간 깜짝 놀라더라”며 “이후 본가에 맡겨 소음을 피하게 했다”고 말했다.
◇자세하고 친절한 공사, 갈등 줄인다
공동주택문화연구소 표승범 소장은 “자세하고 친절한 공사일수록 이웃 간 갈등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월○일 오후 1시부터 3시는 마루 제거하는 날이기 때문에 큰 소리가 날 수 있다’처럼 공사 일정을 최대한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적어, 미리 고지하라는 것이다. 공사 중 진행 사항에 따라 신고된 일정을 임의로 변경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는 이웃 간 합의이기 때문에 반드시 지키도록 해야 한다.
표 소장은 “이웃 간 층간 소음으로 가장 화날 때는 예고 없이 불시에 들이닥치는, 무방비 상태의 소음”이라며 “미리 고지하면 해당 시간에 외출을 한다든지 대응이 가능해 모르고 들을 때에 비해 극한 갈등을 피할 수 있다”고 했다. 또 수능이나 시험 기간처럼 사람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고 예민할 때는 최대한 공사를 피하는 게 좋다. 표 소장은 “소음을 느끼는 건 결국 감각 기관이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더 예민하고, 주관적일 수 있다”고 했다.
공사 현장에서도 최대한 소음을 줄이기 위해 신경 써야 한다. 인부들이 편의상 대문을 열어 놓고 공사하거나,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작업하는 일 등은 삼가는 게 좋다. 바로 옆집, 윗집 등 인접한 이웃에겐 간단한 선물 등을 준비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