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서울 종로구 교보생명 빌딩 외벽 광화문글판에 박소란 시인의 시 '심야 식당'에서 발췌한 겨울편이 게시돼있다. /뉴시스

“외로움은 하루에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만큼이나 건강에 해롭다.”

미국 연방정부 공중보건서비스단이 2023년 공개한 ‘외로움과 고립감이라는 유행병’ 보고서에 담긴 내용입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외로움은 조기 사망 가능성을 26~29% 높였습니다. 심장병과 뇌졸중 위험은 각각 29%, 32% 키웠습니다. 또 고립됐다는 느낌이 불안감·우울증·치매와 연관되고, 바이러스 감염이나 호흡기 질환에 더 취약한 상태를 만든다고 합니다. 외로움이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위협한다는 연구 결과는 많이 나와 있습니다. 인간은 집단 속에서 살아야 생존 확률이 높기 때문에, 혼자라는 신호를 ‘위험’으로 인식해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가 증가하고 염증 반응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면역 시스템 기능도 약해지고요.

세계보건기구(WHO)는 2023년 외로움을 긴급한 세계 보건 위협으로 규정하고 이 문제를 전담할 위원회를 출범시켰습니다. 외로움으로 인한 건강 위험이 비만이나 신체 활동 부족 같은 요인보다 더 크다고 했습니다.

이 같은 외로움 문제는 남 얘기가 아닙니다. 국가데이터처가 9일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1인 가구가 처음으로 800만 가구를 넘어서며 전체의 36%를 차지했는데 이 가운데 절반 가까이(48.9%)가 “외롭다”고 답했습니다. 전체 가구로 보면 세 집 가운데 한 집 이상이 외로움을 호소했습니다. 결코 낮지 않은 수준이죠.

외로움은 이제 개인의 마음속 문제를 넘어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가 됐습니다. 정부는 ‘외로움 전담 차관’을 지정하겠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실행 계획은 아직 들려오지 않고 있습니다. 제도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도가 다룰 수 있는 영역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외로움이 만들어지는 자리도, 풀리는 자리도 결국 사람 사이이니까요.

“당신은 무얼 먹고 지내는지 궁금합니다/ 이 싱거운 궁금증이/ 오래 가슴 가장자리를 맴돌았어요.”

서울 광화문 교보생명빌딩 글판에 얼마 전 걸린 문구입니다. 박소란 시인의 시 ‘심야 식당’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누군가의 안부를 조심스레 떠올리는 작은 마음 하나가 그 사람 주위에 엉켜 있던 외로움의 고리를 끊는 첫걸음이 될지도 모릅니다. 오늘 한 사람에게 건네는 짧은 한마디가, 그에게는 큰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