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두상(170~180년).
로마 카피톨리니 미술관에 전시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기마상./위키피디아

황제가 물려받은 제국은 흔들리고 있었다. 나라 곳간은 바닥났고, 국경에서는 외적이 심심찮게 쳐들어왔다. 황제는 선하고 성실했다. 버거운 업무들을 끝없이 해나갔지만, 운명도 그의 편은 아닌 듯했다. 마르코만니족의 침입으로 벌어진 위기는 너무나 심각했다. 카르눈툼 전투에서는 2만명이 넘는 군단병이 목숨을 잃었다. 이제는 황제가 직접 나서야 했다. 군대 경험이 없던 오십 줄의 황제는 지친 몸을 이끌고 최전방으로 향했다. 등 뒤로 ‘노파 철학자’가 군대를 지휘한다는 비아냥거림이 들려왔다. 하지만 전쟁터에서 7년을 보내며 그는 백전노장으로 거듭났다. 14만명에 달하는 군단병들은 마침내 황제를 진심으로 존경하게 됐다. 로마제국의 황제이자 철학자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이야기다.

황제는 어떻게 그토록 담대하게 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을까? 그는 적과 싸우기에 앞서 내면의 성채부터 단단하게 쌓았다. “하늘에서 무서운 소리가 날 때, 건물이 무너지거나 하는 일이 벌어질 때, 현명한 자도 긴장하며 무서움을 느낀다. 그러나 현자는 감정을 곧 옆으로 치워버린다.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는 탓이다. 반면, 어리석은 자는 처음의 감정 그대로 겁에 질려 벌벌 떤다. 이것이 현자와 우매한 자의 차이다.” 황제가 존경했던 철학자 에픽테토스의 충고다.

황제는 자신의 감정을 다스릴 줄 알았다. 그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되뇌곤 했다. “해야 할 일을 하고, 벌어질 일은 벌어지게 두라.” 나의 노력으로 어쩌지 못할 일이 세상에 어디 한둘이던가. 그렇다고 주눅 들고 손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체념하는 순간, 내 마음은 불안과 공포, 우울로 가득 차게 될 터다. 그러니 할 수 없는 것은 내버려두고 할 수 있는 것을 하라. 황제는 계속해서 자기 영혼을 다잡는다. “너에게 닥친 일을 불행이라고 말하지 말고, 이를 슬기롭게 이겨내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하라.”

하늘에 울리는 천둥·번개를 내가 어찌할 도리는 없다. 무너지기 직전인 건물을 견실하게 만들 방도도 당장은 없다. 하지만 내 정신이 두려움에 휩싸이게 내버려둘지, 이를 이겨내고 의연하게 상황에 맞설지는 내 손에 달려 있다. 나에게 닥친 온갖 고난은 내 영혼이 더 담대하고 강해지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운동선수도 버거운 상황을 견뎌내며 근력과 기량을 키워가지 않던가. 지금 닥친 시련을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우주가 던져준 기회라고 생각하고 의연하게 이겨내라.

황제의 이런 마음가짐은 한결같았다. 단단한 근육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강인한 정신과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이 갑자기 생길 리도 없다. 황제는 매일매일 철학으로 자신을 다독이며 마음의 성채를 쌓아갔다. “알게 된 사실 이상을 자신에게 말하지 마라. ‘누군가가 당신에 대해 나쁘게 말했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해보자. 이것은 그대가 알게 된 사실이다. 여기에는 ‘누군가가 너에게 해를 입혔다’라는 말은 들어 있지 않다.”

황제가 스스로에게 들려주던 조언이다. 당신은 남들이 뭐라 한 말 때문에 상처받지 않는다. 그 말을 공격이라 생각하기에 스스로 상처를 받을 뿐이다. 아주 어린 아이가 당신에게 칭얼댔다고 해서 마음이 무너질 리 없다. 오히려 그대는 이를 귀엽게 여기며 빙긋 웃을 뿐이다. 비슷한 논리로, 저열한 누군가가 당신에게 안 좋은 말을 했다고 해서 그대 영혼이 흔들려야 할 까닭은 없다. 그대가 고결하고 위대한 정신을 갖고 있다면, 안 좋은 소리쯤은 가볍게 내쳐 버릴 테다. 사실과 이에 대한 생각은 다르다. 그러니 세상의 온갖 소음과 사건들에 휘둘리지 않는 좋은 영혼을 갖추기 위해 언제나 최선을 다하라.

“자주 철학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했다.” 격전을 치른 후에도, 황제는 때때로 막사로 돌아가 조용히 명상하며 마음을 추슬렀다는 뜻이다. 그리고 자신이 들어야 할 충고와 교훈을 글로 적었다. 느끼는 대로 충동에 따라 처신하지 않도록, 마땅히 해야 할 바를 정확히 가슴에 담고 필요한 행동을 하기 위해서다. 이런 자기 다독임의 글이 쌓여 만들어진 책이 유명한 ‘명상록’이다. 책 머리에는 “카르눈툼과 쿠아디 부족 지역에 흐르는 그라누아강 근처에서 글을 쓰고 있다”라고 적혀 있다. 죽음이 눈앞에 있는 최전방 기지,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도 황제의 마음 다스림은 꾸준했던 셈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떠한가? 자신의 영혼이 걱정과 불안에 휩싸이도록 방치하는가, 언제나 냉철하고 담대한 상태에 머무르도록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가? 아우렐리우스 황제같이 훌륭한 철학자가 아닌 나에게는 무리한 요구라며 고개를 젓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우렐리우스는 이렇게도 말했다. “그대는 사람들을 감탄하게 하는 날카로운 지성을 타고나지 못했다. 그러나 당신 손아귀에는 여전히 보여줄 만한 많은 재능이 있다. 정직, 위엄, 끈기, 자비, 검소함, 고매함 등등. 이것들을 갈고닦고 보여주는 데는 재능을 타고나지 못했다는 핑계가 소용없다.” 아우렐리우스는 역사상 인정하는 현명한 황제였다. 이는 언제나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했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격변하는 세상, 위기가 끊이지 않는 시대다. 내면의 성체를 튼실하게 가꾼다면 아우렐리우스같이 지혜롭게 현실을 헤쳐나갈 터다. 그대도 할 수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