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유현호

기침을 하자, 연주가 시작됐습니다. 얼마 전 어느 도서관에서 열린 클래식 공연. 바이올린 둘, 비올라 하나, 첼로 하나의 현악 사중주 구성이었고 채를 쥔 건 근처 초등학교 아이들이었습니다. 아이들은 공연 시작 1시간 전부터 무대에 올라 연주곡을 연습했습니다. 도서관에서 일을 마친 저는 그 장면을 자연스레 구경할 수 있었고요. 아이들의 표정은 더없이 진지했습니다.

인상적인 장면은 또 있었습니다. 무대 위에서의 소통 방식은 말이 아니었다는 것. 리더 역할을 맡은 연주자가 기침을 하면 곡이 시작되고, 한쪽 발을 길게 뻗으면 악보의 특정 부분이 길게 연주되었으며, 두 발을 곧게 모으면 이내 함께 곡을 마치는 것이었습니다. 오래 갈고닦은 덕분인지 모두 약속된 신호를 잘 알아차렸습니다.

오래 전 군복무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근무한 포병 부대에서는 숫자 셈법이 달랐습니다. 1은 하나, 2는 둘. 그런데 3은 셋이 아닌 삼으로 셌습니다. 넷, 오, 여섯, 칠, 팔, 아홉, 마지막 10은 ‘하나 공’. 숫자를 혼동하지 않기 위해 고안된 것입니다. 조준 장치에 기입하는 숫자가 하나만 잘못돼도 포탄은 전혀 다른 곳에 떨어질 테니까요. 또 목소리에만 의존하지 않고 온몸으로 숫자를 빠르게 표현하는 훈련도 해야 했습니다.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는 그리 유효한 이야기가 아닐 것입니다.

입대를 얼마 앞두고 돌아가신 제 할아버지는 말수가 적은 분이었습니다. 젓가락을 딱딱 두 번 내려놓으면 밥상을 내가라는 뜻이었고, 기분 좋은 일이 있을 때는 라디오를 크게 들었으며, 심기가 불편한 날에는 종일 벽 쪽으로 반쯤 돌아앉아 계셨습니다. 물론 제가 미처 읽어내지 못한 할아버지의 신호는 더 많았을 것입니다.

2008년 개봉한 프랑스 영화 ‘잠수종과 나비’는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한 존재가 보내는 신호를 섬세하고도 거대하게 다루는 영화죠. 주인공은 유명 패션잡지 편집장으로 성공 가도를 달립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뇌졸중을 앓고 왼쪽 눈을 제외한 신체의 감각을 상실합니다. 재활 치료를 통해 주인공은 눈꺼풀로 의사를 표현하는 훈련을 하게 됩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활자가 호명될 때 눈을 깜빡이는 방식으로 주인공은 낱말 하나를 만들고 한 문장을, 한 문단을 그리고 종내 한 권의 책을 완성합니다.

‘신호’는 기호나 표지, 소리나 몸짓만으로 무엇을 전달하거나 지시하는 일을 뜻합니다. 언뜻 생각하면 언어보다 부정확한 것처럼 여겨집니다.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자극하는 영상에 비하면 무척 미약하게 느껴질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어떤 신호에는 정확하고 풍부한 정보는 물론 사람의 진실한 생각까지 담겨 있습니다. 믿을 신(信)에 부르짖을 호(號)가 결합된 낱말. 관건은 마음을 열고 세상의 작은 기척에 귀 기울이는 나의 태도일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한 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