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방 중, 실신 X, 숙면 중 O. 본디 흘러내리듯이 거꾸로 자는 개입니다. 금방 돌아옵니다. 걱정과 관심 감사합니다.”
지난여름 한 8년 차 견주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려 큰 화제를 일으킨 차량 안내 문구다. 풍성한 털과 온화한 성격이 특징인 ‘잉글리시 쉽독’을 키우는 그는 올여름 4차례 경찰에 강아지 학대 의심으로 신고당했다. 한여름 무더위 속, 차 안에서 혼자 배 뒤집고 자는 강아지 모습에 시민들이 위급 상황으로 오인해 신고한 것이다. A씨가 잠시 자는 강아지를 차 안에 두고 음료를 사 오거나 동물병원에 약 타러 간 사이에 생긴 일.
A씨는 안내 문구와 함께 “한번은 동물병원 결제 영수증을 보여주고 오해를 풀었고, 한번은 잠시 (음료를) 픽업하러 왔으며 차 안이 냉방 중임을 사람들에게 확인시켜주고 웃으면서 마무리했다”며 “당황하고 놀란 경험이었지만 차 안에 홀로 있는 개를 걱정해 주었다는 것, 그것이 신고로 이어졌다는 것 자체가 의식이 바뀌고 있음을 말해준다”고 썼다.
“요즘은 그러면 신고당한다”는 말이 더 이상 관용어가 아닌 세상이 됐다. 교통법규 위반은 물론이고, 휴가 나온 군인의 복장 위반 신고, 동물 학대 의심 신고, 목욕탕 물 넘침 신고, 앞집 세발자전거 적치물로 신고…. 그야말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신고가 일상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도로 및 시설물 파손 같은 안전 문제부터 생활 쓰레기 투기·방치 같은 생활 불편, 자동차·교통 위반까지 접수하는 안전신문고 신고 건수는 1243만5000건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2020년(188만9000건)의 6.6배에 달하는 수치다.
◇“오늘도 102대 신고 완료”
‘대구 동성로 인도 주차 평일이라 50대밖에 없네요’, ‘대구 동성로 인도 주차 102대 신고 완료’.
교통법규 위반은 가장 대표적인 신고 분야다. 최근 한 자동차 동호인 커뮤니티에는 지난 11월 17~26일 열흘간 대구 동성로 일대 불법 주차 차량 250대를 신고했단 B씨의 글과 인증 사진이 올라왔다. 대구 지역 최대 번화가이기도 한 동성로는 만성적인 불법 주차로 골머리를 앓는 곳. 사진 속엔 버젓이 인도를 침범해 주차된 차량을 비롯해 비좁은 인도를 불편하게 지나가는 시민들 모습이 담겼다. B씨는 2023년부터 이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며 지금까지 총 1만5466건을 신고해 인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참고로 지자체별로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 포상금은 없다. 그럼에도 이 커뮤니티에는 B씨 외에도 “오늘도 공익 신고 완료” “난 이제 (신고) 1300대에 불과” 등 많은 이가 자발적으로 신고를 인증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신고할까. B씨는 자신이 쓴 글에서 “유모차 끌고 인도 지나가려는데 차량이 막고 있어서 비켜달라고 하니, 유모차를 차도로 내려서 지나가라더라”며 “이후 인도에 차만 보이면 전부 신고하고 있다”고 했다. 일종의 정의 구현인 셈.
공공 신고 애플리케이션(앱) 보편화와 고화질의 블랙박스도 이를 거들었다. 블랙박스 영상이나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사진을 찍어 간편하게 신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에 “옳은 일 한다”는 정의감과 “혼내줬다”는 쾌감은 덤. 특히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나 소셜미디어에 이를 인증하는 문화가 퍼지면서, 아예 자신의 신고 내역만을 올리는 계정을 운영하는 사람도 있다.
◇일단 뭐든 신고부터 한다
교통 법규 위반뿐 아니다. 최근 신고는 일상 곳곳을 파고든다. 특히 온라인으로 홍보하는 자영업자들이 주요 타깃이 된다. 대부분 민원 신고는 사진과 영상 등 눈으로 식별할 수 있는 정보를 제출하도록 하는데, 온라인에선 이런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
문제는 동종 업체의 견제 등 무고인 경우도 많다는 것. 지난 7월 부산 강서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한 자영업자는 음료 만드는 짧은 영상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렸다가 구청 위생과의 조사를 받았다. “음료 만들 때 사용하는 막대가 사용하면 안 되는 재질처럼 보인다”는 신고였다. 해당 업체는 “영상 올릴 때부터 플라스틱 아니냐는 질문에 (인체에 무해한) PP(폴리프로필렌) 소재란 답을 했는데도 결국 신고했더라”며 “구청에서 구매 내역, 소재 다 확인하고 별 이상 없어 돌아갔다”고 했다. 당한 사람은 불법이 아님을 입증해야 하는 반면, 신고자는 설사 신고가 사실이 아니더라도 별다른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억울하지만 이로 인한 영업 피해 등을 보상 받을 길도 드물다.
온라인에서 농어촌민박을 홍보하는 사장님들도 잊을 만하면 신고로 홍역을 치른다. 제주도에서 농어촌민박을 운영하는 C씨는 지난 1년간 이미 두 차례 실거주 위반 의심으로 신고를 당했다. 농어촌민박이란 농어민이 수익 없는 농한기나 휴어기에 본인 집 일부를 빌려줘, 생계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한 제도. 이런 취지 때문에 농어촌정비법상 주인이 실거주해야 민박을 운영할 수 있다. 농어촌에 살지 않는 사람들이 위탁해서 운영하거나 사람 없이 방만 내주는 식은 모두 불법이다. 워낙 불법이 만연해 온라인 신문고에 주요 예시로 나와 있을 정도. C씨는 “그러다 보니 온라인상에서 사진만 보고 ‘실거주 위반 아니냐’며 꼬투리 잡거나 신고까지 하는 사람이 있다”며 “조금 유명한 숙소들은 아마 비슷한 일을 한두 번씩은 겪었을 것”이라고 했다.
만연한 불법에 신고는 종종 협박의 대상으로도 사용된다. 예약자 잘못으로 취소 수수료를 내야 하는 상황에서 “실거주 의무 위반으로 신고하겠다”며 협박(?)하거나, 방패 삼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실제 중재가 잘 안 되면 신고로 간다.
◇“과연 자신은 떳떳한가”
과거 같으면 그저 이웃 간 아량으로 이해하고 넘어갔을 문제도 신고 대상이 되곤 한다. 휴가 나온 군인 사진을 소셜미디어에서 보고 복장 규정을 어겼다고 해당 부대에 신고하는가 하면, 앞집 아이의 세발자전거를 불법 적치물이라고 신고하고, 자신이 다니는 병원 정보를 공개했다가 의료법 위반으로 신고당하기도 한다. 물이 콸콸 넘치는 공중목욕탕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올리고선 “어디에 신고해야 하느냐”고 온라인상에 묻는 글은 최근 ‘신고 거리다, 아니다’로 댓글 500개가 달리며 설왕설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신고가 만연한 사회, 밥줄이 달린 대리운전·택시·배달 기사 등이 모인 커뮤니티에선 이에 대한 속상함을 토로하는 글도 자주 올라온다. “법인 합쳐 거의 8년 다 돼 가는데, 남에게 피해 안 주는 경미한 위반에도 블랙박스 신고만 7~8번 당했다”, “배달할 음식 가지러 식당 앞에 잠깐 정차했는데 그새 신고했더라” 같은 글이다. 한 배달기사는 “남을 신고하고 벌줄 땐 자기 자신은 떳떳한지 한번쯤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라며 “서로 감시하고 신고하고, 신고당하는 세상이 점점 메마르고 살벌해지는 것 같다”고도 썼다.
물론 여전히 세상을 구하는 신고도 있다. 2022년 8월 부산 한 초등학교 앞 도로 배수로 덮개가 깨진 일이 있었다. 이를 본 학부모가 안전신문고에 사진과 함께 신고했고, 무사히 덮개 교체와 주변 보수 공사가 완료되며 인명 피해를 막았다. 2023년 5월 경기도 한 아파트 단지 옆 옹벽에서도 주민의 균열 신고 덕분에 담당부처가 안전 점검을 진행해 보강 공사까지 마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늘어난 신고는 과연 시민 의식의 성장인가, 감시 사회의 도래인가. 경제사회연구원 노정태 전문위원은 “오히려 사람들이 점점 직접 대면하지 않으려는 사회의 한 단면일 수 있다”고 했다. 노 위원은 “사람들이 사회 문제를 사람 간 중재로 해결하려기보다 시스템과 절차에 더 의존하려는 것”이라며 “문제가 있는 상황에서 이를 해결하고는 싶은데, 직접 개입은 하고 싶지 않고, 거기서 나오는 상대방의 피드백도 감당하고 싶지 않을 때 결국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편한 수단이 ‘신고’인 셈”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