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유현호

‘북한에서 주민 다섯 가구마다 5호 담당 선전원을 배치해 가족생활 전반을 당적 지도라는 명목으로 간섭·통제·감시하는 제도’. ‘5호담당제’에 대한 설명이다.

어린 시절 배웠던 북한의 야만적인 감시 체제가 세간의 화제가 된 이유는 현 정부가 만든 ‘헌법존중 정부혁신 TF(태스크포스)’ 때문이었다. 이 TF에선 49개 중앙행정기관에 근무하는 공무원 75만명의 계엄 가담 여부를 조사한다는데, 이 과정에서 업무용 PC와 서면 자료를 열람하는 것은 물론, 개인 휴대전화도 자발적으로 제출하란다. 말이 자발적이지, ‘의혹이 있는데도 협조하지 않으면 대기발령, 직위해제 후 수사의뢰하는 것도 고려’하겠다니, 5호담당제가 연상될 수밖에.

더 어이없는 점은 이 TF의 이름에 ‘헌법존중’이란 말이 들어간다는 것. 게다가 취임사에서 헌법 1조, 즉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주권은 국민에게 있습니다”를 읊었던 이재명 대통령이 이 TF에 대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동의했는데, 이 정권이 말하는 헌법은 대체 어느 나라 헌법일까? 게다가 이 대통령은 9년 전 한 강연에서 “전화기에는 여러분의 인생 기록이 다 들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전화기를 산 이후로 어디서 무슨 짓을 몇 시에 뭘 했는지 다 알 수 있어요. 그래서 이걸 절대 빼앗기면 안 돼요”라고 한 적이 있다. 아무리 내로남불이 좌파의 기본 자질이라지만 해도 너무한 거 아닌가 싶다. 놀라운 점은 이런 반헌법적 조치에도 불구하고 이 대통령 지지율은 60%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 이를 해석하는 방법은 딱 하나, 지금 우리 국민 대다수는 계엄과 관련되기만 하면 어떤 인권 유린도 허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현 정부 들어 가동된 3대 특검에서 인권 유린이 발생하는 것도 그런 공감대가 있기 때문인 듯하다. 지난 8월 7일,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 때 있었던 일을 보자. 민중기 특검팀은 구치소에 수감 중인 윤 전 대통령에게 소환 조사를 요구했지만, 윤 전 대통령 측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이는 과거 이 대통령도 자주 사용한 피의자의 권리이고, 이런 상황에서 억지로 소환해 봤자 진술 거부를 할 게 뻔해 실익도 없었다.

하지만 특검은 굳이 체포영장을 집행하는 무리수를 둔다. 의자에 앉아 버티는 윤 전 대통령을 특검 측 10여 명이 달라붙어 양쪽에서 팔을 끼고 들어서 옮기려고 했고, 그게 잘 안 되자 의자째 차에 실으려고 시도했는데, 이 과정에서 윤 전 대통령은 “팔이 빠질 것 같다”며 고통을 호소했고, 결국 땅바닥에 떨어져 다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윤 전 대통령 측 변호인에 따르면 “구속된 피의자에 대한 체포영장을 받아서 팔다리를 잡고 다리를 끌어내려는 시도는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이라는데, 이런 인권 유린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조용했다. 오히려 더불어민주당은 이와 관련된 CCTV 영상을 국민에게 공개하겠다고 조롱하기까지 하는데, 이럴 수 있는 비결은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일으켰고, 계엄을 일으킨 이의 인권은 지켜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아서였다. 국민의힘 국회의원 중에도 이런 생각을 가진 분이 있는데, 그중 한 분인 김예지 의원은 지난 2월 10일 ‘윤 전 대통령 방어권 보장 안건’에 찬성한 인권위원회 위원 6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통령에게도 인권이 있어요. 근데 대통령이 심판을 받는 상황이었잖아요. 왜 심판을 받았나.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비상계엄이라는 초유의 일 때문에 심판을 받는 상황이었어요. 국민이 생각할 때 인권위가 지켜야 하는 게 대통령이었느냐는 거죠. 이분이 시설에 수용된 중증 장애인도 아니고, 멀리 팔려 가서 무임으로 일하는 염전 노예도 아니었잖아요.”

기각되기는 했지만 황교안 전 국무총리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비상계엄이 선포됐던 작년 12월 3일, SNS에 “나라를 망가뜨린 종북 주사파 세력과 부정선거 세력을 이번에 반드시 척결해야 한다”며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계엄이 부적절하긴 했지만 이를 지지하는 것은 엄연한 개인의 자유. 게다가 황 전 총리가 그 당시 정부 요직에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특검은 이를 내란 선동으로 보고 황 전 총리의 자택에 들어가 체포영장과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했고, 구속영장까지 청구한다. 특검은 황 전 총리가 “계엄의 위법성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던 상황에서 내란 선동의 고의를 갖고 글을 썼다”고 주장하지만, 국힘 의원들조차 계엄 선포의 절차적 문제점을 몰랐던 판에 황 전 총리가 그게 위법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국힘 추경호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에는 ‘고려대 재학 중이던 1980년 계엄을 경험했기에 이번 계엄의 위법성과 그것이 내란에 해당할 가능성을 알 수 있었다’고 적어 놨으니, 이쯤 되면 막가자는 게 아닌가 싶다.

‘인권에는 좌우가 없다.’ 인권을 다루는 이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하지만 100개 이상으로 추정되는 국내 인권단체가 현 정부하에서 벌어지는 인권 유린에 침묵하는 건 그들 대부분이 좌파에 몸담고 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들이 알아야 할 게 있다. 둑이 무너지는 것은 언제나 조그마한 틈에서 시작된다는 사실. 그건 인권도 마찬가지다. ‘이건 계엄과 관련된 것이니 인권 따위는 무시해도 돼’, ‘우리 편이 한 것은 정당한 인권 유린이야’ 같은 식으로 예외를 두기 시작하면,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점점 무뎌지고, 결국 인권 유린이 일상이 된다는 것이다. 지난해 미국 인권 단체 프리덤하우스는 중국·우간다·캄보디아·러시아·이란 등을 인권 탄압국으로 분류하면서 그중 최악은 중국이라고 했다. 우리가 당장 중국을 따라잡는 것까지는 어려울 수 있지만, 이대로 몇 년만 지나면 대한민국도 인권 탄압국 명단에 끼게 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