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후 3시쯤 서울 남대문시장. 옷 가게 두 집 걸러 한 집씩 비슷한 디자인의 옷이 걸려 있었다. 허리선 없는 통짜 실루엣, 원단과의 조화는 고려하지 않은 듯한 색의 단추, 보송한 안감에 누빔 패턴의 꽃무늬 외피. ‘김장 조끼’다. 할머니가 김장할 때 걸칠 것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걸그룹 ‘에스파’의 카리나가 김장 조끼를 입고 있는 모습. /인스타그램

촌스러운데 누가 입느냐고? 김장 조끼는 MZ부터 중장년층까지 세대를 가리지 않고 폭넓게 주목받는 패션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걸그룹 ‘블랙핑크’의 제니, ‘에스파’의 카리나가 김장 조끼를 입고 있는 모습이 소셜미디어를 점령하는가 하면, 이 조끼 차림의 어르신을 모델로 내세운 쇼핑몰에 후기가 수천 개씩 달린다. 네이버 데이터랩에 따르면 지난달 ‘김장 조끼’ ‘할머니 조끼’ 검색량은 작년 같은 기간의 2.3배로 늘었다(지난 1년 검색량 기준). 치솟는 인기에 반려견용까지 나왔다.

5000원에서 1만원 안팎의 부담 없는 가격, 입은 듯 안 입은 듯한 편안함, 기모 안감을 사용한 보온성과 Y2K(2000년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복고풍 디자인이 매력이다. ‘촌캉스(시골에서 즐기는 바캉스)’ ‘그랜마 코어(Grandma Core·할머니 세대 스타일에서 영감을 받은 패션)’ 열풍과 맞물리며 몸빼 바지와 함께 ‘할매니얼(할머니와 밀레니얼의 합성어) 룩’의 대명사가 됐다. 유명 브랜드도 뛰어들었다. 최근 아디다스는 김장 조끼를 연상시키는 진홍색 바탕, 하늘색 꽃무늬 디자인의 재킷을 출시했다. 가격이 15만원대이지만 품절 대란을 빚었다.

남대문시장 상인 50대 장모씨는 “제일 촌스러운 게 인기가 많다”며 분홍색과 고추장색을 들어 보였다. 대학생 황모(24)씨는 “요일별로 입을 것”이라면서 조끼 다섯 장을 골랐다.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도 입소문이 났다. 남대문중앙상가 1층 한 상인은 “가족끼리 여행 온 외국인들이 ‘김치 조끼’라며 맞춰 입더라”며 “주말에는 하루 50~60장씩 나간다”고 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어릴 적 한 번쯤 봤던 익숙한 옷감이라는 복고 감성에 실용성과 계절성이 더해져 문화적 코드처럼 소비되는 현상”이라며 “옛것을 재해석하는 젊은 세대의 태도와도 맞닿아 있다”고 했다. 이런 열풍이 세대 간 격차도 줄여줄까. 한 구매 후기에는 “할머니랑 할아버지, 부모님 조끼까지 다섯 장 사 입고 진짜 김장했어요. 포근하고 좋아요”라는 글이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