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인간 야쿠르트가 된 것 같았다. 챙 넓은 야쿠르트색 모자에 야쿠르트색 헬멧, 야쿠르트색 점퍼 차림으로 야쿠르트를 실은 야쿠르트색 냉장 전동 카트를 운전하자니 말이다.
“빵빵빵~ 신선함을 담은 ‘코코’가 지나갑니다.”
경적을 울려 본다. ‘코코’는 내가 타고 있는 카트의 이름. 직사각형 아이스박스 모양을 빼다 박았다. 이 안에 야쿠르트가 타고 있다. 7㎝ 높이의 65mL짜리 용량 기준 올해 상반기까지 약 497억8000만개가 팔렸다는, 병을 쌓으면 에베레스트산(8848m)이 약 40만개요, 지구에서 달까지 약 4.5번 왕복할 수 있다는 전설의 그 음료. 50여 년 전 25원에서 시작해 현재는 250원. 가격도 착하다.
1971년, 국내 발효유 업체 hy(옛 한국야쿠르트) 설립과 함께 ‘야쿠르트 아줌마’가 활동을 시작했다. 초기 47명이던 인원은 4년 만인 1975년 1000여 명을 넘어서더니 1998년 1만여 명, 지금은 전국 529개 영업점에서 약 1만1000명이 활동 중이다. 정식 명칭은 ‘프레시 매니저’. 반세기 넘는 시간을 거치며 트레이드마크였던 살구색 아이스박스와 손수레는 어느새 탑승할 수 있는 냉장 전동 카트로 바뀌었다. 업무용 스마트폰에는 GPS 기능까지. “우리 동네 아줌마는 어디 계시냐”는 고객 아우성을 반영한 결과랄까.
최근에는 “명동에서 노란 옷 입은 분이 건강 음료를 판다.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문화”라며 중국 소셜미디어 샤오훙수(小红书)에서 특히 소문이 났다는데. 이달 최저기온이 처음 영하로 떨어진 지난 3일 인간 야쿠르트가 돼 프레시 매니저의 하루를 체험했다. 어릴 적 부르던 ‘야쿠르트 송’을 흥얼거리며. “야! 쿠르트 아줌마, 야~쿠르트 주세요~.”
◇야쿠르트 총각이 없는 이유
오전 6시 55분, 서울 용산구 hy 용산점. 40~60대 프레시 매니저 4명이 제품을 냉장 창고에서 꺼내 정리하고 있었다. 야쿠르트는 물론 우유와 야채 음료, 김치까지…? 설립 당시 발효유에 국한됐던 hy 제품은 밀키트 등이 더해지며 현재 800여 종을 넘는다. 매니저 언니들은 주요 제품의 성분과 효능을 달달 외우고 있단다.
이 영업점 프레시 매니저는 11명, 모두 여성이다. 창립 이래 남성 프레시 매니저는 단 한 명도 없었다고. 주부 일자리 창출을 주목적으로 삼았던 이념을 이어가기 위해서란다. 먼저 대문을 두드리고 안부를 주고받는 방문 판매(방판) 특성도 남성을 프레시 매니저로 모집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
코코 앞에 섰다. 대(臺)당 1300만원짜리 카트. ‘장롱 면허’ 소유자인지라 30여 분 일찍 나와 운전 연습을 했으나 떨린다. 함께할 프레시 매니저 최현숙(58)씨가 “처음이니 천천히 와도 돼요”라고 했다. 최씨는 배달이 가장 많은 월요일 기준 평균 100~120가구에 제품을 배달한다. 수수료는 판매 금액의 25%. 전국 프레시 매니저의 평균 벌이는 월 210만원, 많게는 600만원 이상 번다고.
고속 모드는 시속 8㎞, 저속은 시속 4㎞. 저속 모드로 설정하고 출발이다. 손잡이 열선이 있어 몸은 따뜻한데 왜 이리 떨리는지. 첫 목적지는 언덕배기에 있는 A아파트 단지였다. 2000년에 세워졌다는데, 최씨 경력과 아파트 나이가 25년(세)으로 같았다. “언니, 이따 들러!” 시장 골목을 지나자 여기저기 최씨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좁은 동네에서 오래 활동하다 보니 유명 인사란다.
카트 운전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골목이나 주차장 등에서 사람이 튀어나올 수 있어 당연하게도 늘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최씨가 “나도 처음엔 무섭다고 못 탄다고 했지. 근데 타 보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고 했다. 탑승 불가한 카트를 쓰던 당시엔 아파트 단지까지 오르는 데 애를 먹었다고 한다. 그땐 단지 내 카트 출입도 불가해 아이스박스만 메고 낑낑거리며 돌았다. “아기 키워야 하니까 힘든 줄도 모르고 했죠. 3년만 하려고 했는데 이제 아들이 서른여덟, 딸은 서른다섯이 됐네요. 깔깔.”
◇홀로 쓰러진 노인 구하기도
위기다. 봉투를 건네받아 안 떨어지도록 문고리에 두 번(중요) 돌려 걸기만 하다가 처음 “직접 담아 보라”는 지령이 떨어졌다. 장까지 생각한 음료(?) 7개와 우유 12개, 야채 음료 3개. 주문량이 엄청난 VIP 고객이시군. 아, 어디에 무슨 제품이 있는지 헷갈린다. 같은 야채 음료여도 오리지널 제품과 당근 함량이 더 높은 제품 등이 나뉜다. 배달할 호수와 제품명이 적힌 업무용 스마트폰을 보며 한국어 모르는 사람처럼 더듬더듬 제품을 담았다.
가가호호(家家戶戶). “이 집엔 어르신 혼자 사셔요.” 최씨가 어느 집 앞에 걸린 보랭 주머니 내부를 확인하며 말했다. “왔어? 고마워.” 한 80대 할아버지가 문밖으로 나와 최씨 손을 붙들었다. 이 아파트에 사는 독거 노인은 4명. 최씨는 월·수·금 배달을 하며 제품이 쌓여 있는지 확인한다. 1994년부터 hy가 주민센터 등과 협업해 실시하고 있는 홀몸 노인 돌봄 활동의 일환. 2022년 9월에는 성북구 종암동의 프레시 매니저 이영애씨가 집 안에 쓰러진 82세 최모 할아버지를 119에 신고해 살렸다. 늘 반기던 할아버지가 나오지 않는 것을 의아하게 여긴 덕.
마늘망 걸린 집, 고사리 말리는 집…. 어느새 오전 11시. 여러 배달 체험을 했으나 이토록 인사를 많이 받은 건 처음. 인사만 230번 정도 했을 것이다. “나 다리 아파서 병원 다녀왔어.” “6개 부탁해, 늦어도 괜찮아.” “내가 전에 돈 안 줬지? 여기.” 주민들은 카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속상한 일 있었다” “어디 다쳤다”며 최씨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이 시대 유일하게 살아남은 방판의 위엄이 느껴진다. 내게는 “뭐야, 누구야. 최씨 그만두는 거야?”라는 말과 함께 미덥지 못한 눈초리가. 아무도 안 물어봤지만 손사래를 치며 “전 오늘만 왔어요”라는 변명 시작.
◇“면역력… 주세요”
통상 프레시 매니저는 오전 시간 배달을 마치고 오후부터 자율적인 거리 판매를 시작한다. 낮 12시쯤, 명동 거리로 넘어왔다. 대만·중국인이 많이 찾기 때문인지 카트에 ‘인기 넘버 원(人气 No.1)’ ‘폭발적 인기 상품(热销爆款)’ 등의 문구가 붙어 있었다. 소문나기 시작한 지난 8월부터 붙이기 시작했다고.
어라, 그런데 1시간 가까이 지나도 외국인 손님이 없다. 23년 차 프레시 매니저 유향심(67)씨가 “식사 시간이 끝나야 후식으로 찾는 이가 많아진다”며 “날이 따뜻해야 거리 판매량이 느는데 쌀쌀해서 잘 팔릴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영업왕’에 선정돼 포상 휴가로 베트남에 다녀왔다는 베테랑. 이날 오전 5시 55분 출근해 인근 아파트 단지 배달을 하고 오전 11시쯤 명동으로 왔다.
드디어. 밤색 코트 차림의 대만인 위항(33)씨가 어색한 한국어로 날 보며 “면역력”이라고 했다. 면역 음료 달라는 의미를 찰떡같이 알아듣고 “2200원”이라고 답했다. 어떻게 알고 왔느냐 물으니 “인터넷에서 봤어요”라고 한다. 제품명을 모르는 외국인들은 소셜미디어에서 캡처한 사진을 들고 와 달라고 하는 경우도 많다고. 뒤이어 캐리어를 끈 일본인 가족이 “스테미나, 다이죠부?(스테미나에 좋죠?)”라며 원기 회복 음료 5병 구매. 감격에 젖어 다 마신 음료 병을 수거해 카트 옆에 마련된 쓰레기통에 쏙.
오후 2시쯤, 퇴근길. 이들에게 일을 계속하는 이유를 묻자 돌아온 답은 이랬다. “몸 아플 땐 그만두고 싶지. 근데 주민들이 워낙 반가워하니 밖에 나와야 몸이 낫는 것 같아요. 그만둘 수가 없어.”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인사를 건네는 이유로는 “아침이기 때문”이란다. “누가 반갑게 인사하면 하루가 기분 좋지 않아요?” 롱런의 비결이렷다. 한 주민이 직접 구매해 “드시라”며 건넨, 주머니 속 야쿠르트 한 병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동네에서 프레시 매니저를 만나면 모르는 사이여도 인사하리라 다짐. 기분 좋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