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1968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雪國)’의 첫 문장이다. 설국의 무대는 일본 니가타현의 유자와 온천으로 겨울이면 기차가 다니지 못할 정도의 큰 눈이 내리고, 눈에 갇힌 채 긴 겨울을 보내야 하는 곳이다. 작가는 이곳에 직접 머물며 집필을 했다.
“내 소설의 대부분은 여행지에서 씌었다. 풍경은 내게 창작을 위한 힌트를 줄 뿐 아니라, 통일된 기분을 선사해 준다. 여관방에 앉아 있으면 모든 걸 잊을 수 있어 공상에도 신선한 힘이 솟는다. 혼자만의 여행은 모든 점에서 내 창작의 집이다”라고 작가는 말한다. 설국은 주인공 시마무라가 온천 마을에 도착해서 만나게 되는 고마코와 요코라는 두 여인과의 사이에서 느끼는 설렘과 그리움, 사랑이라고도 할 수 없는 묘한 감정에 관한 서정적인 이야기다. 작가가 들려주는 세 사람의 심리와 이들을 감싸고 있는 눈 내린 온천 마을의 풍경에 대한 탁월한 묘사 덕분에 가보지 않아도 선명하게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하다.
내가 오늘 하고 싶은 얘기는 ‘설국’의 주인공 시마무라는 일단 여행지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일단 주인공이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것을 기억하자.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는 나를 무릎에 앉혀놓고 곰스크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곰스크, 그 멀고도 멋진 도시… 언젠가 곰스크로 떠나리라는 것은, 내 성장기에 더 말할 것도 없이 자명한 사실이었다. 곰스크는 내 유일한 목표이자 운명이었다. 그곳에 가서야 비로소 내 삶은 새로 시작될 터였다.”
독일의 소설가이자 고등학교 교사인 프리츠 오르트만의 ‘곰스크로 가는 기차’의 한 장면이다. 주인공 ‘나’는 곰스크에만 가면 모든 것이 잘될 거라고, 자신의 인생은 무조건 곰스크에 가야 행복해질 거라고 믿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주인공 ‘나’는 곰스크에 가지 못한다. 그래서 이 소설을 끝까지 읽어도 곰스크가 어떤 곳인지 모른다. 어쩌면 ‘설국’의 시마무라가 도착한 마을이 곰스크일 수도 있다.
오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과정과 결과에 대한 것이다. 결과에 집착하지 말고 과정을 살아야 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지금 당장 내일을 볼 수 없다. 어제도 볼 수 없다. 우리는 늘 오늘만 보면서 산다. 내일은 우리가 자고 나서 오늘이 되어야 볼 수 있다. 결국 우리는 계속되는 ‘오늘’을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다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오늘, 행복해질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오늘 소개하는 두 소설에 기차가 등장한다. 나는 지난 11월 4일 용산역에서 춘천역으로 가는 ITX-청춘 열차를 타고 ‘제1회 고명환의 독서열차’를 다녀왔다. 220명이나 되는 사람이 춘천역까지 가는 1시간 10분 동안 기차에서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내려서 20분 정도 걸어 닭갈비 골목에서 닭갈비를 먹고 공지천 산책로를 걷다가 야외 공연장에서 강연하고 토론도 한 후에 저녁 기차를 타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기차에서도 당연히 책을 읽었다. 그날, 온종일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은 ‘살아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메멘토모리-죽음을 기억하라’였다. 220명의 맨 앞에서 깃발을 들고 춘천 시내를 걸어가며 ‘오늘 뭘 하면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계속 솟구쳐 올랐다. 처음 독서열차를 기획할 때는 ‘사람들에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여행 코스를 개발해 보자’,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좀 더 책을 잘 읽게 할 수 있을까?’ 이런 목적을 가지고 좋은 결과가 나오길 기대했었다.
근데 막상 당일에 사람들과 함께하는 순간 결과에 대한 생각은 사라지고 지금 이 순간이 눈부시게 아름답고 행복하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날아가 별 다섯 개 호텔에서 엄청 비싸고 맛있는 요리를 먹고 좋은 경치를 본다고 이보다 행복할까? 아니다. 절대 아니다. 난 지금 춘천에서 1인분에 1만5000원 하는 닭갈비를 먹고 책과 함께 만난 사람들과 낙엽을 밟으며 걷는 이 순간이 미치도록 행복하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지금을 즐길 수 있으면 좋은 결과는 저절로 따라온다는 것도 참가자들의 후기를 통해 알게 됐다.
다시 소설로 돌아가 보자. 이미 목적지에 도착해서 소설이 시작하는 ‘설국’의 주인공 시마무라는 소설 후반부에서 이런 생각을 한다.
‘눈 내리는 계절을 재촉하는 화로에 기대어 있자니, 시마무라는 이번에 돌아가면 이제 결코 이 온천에 다시 올 수 없으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여관 주인이 특별히 꺼내준 교토산(産) 옛 쇠주전자에서 부드러운 솔바람 소리가 났다… 시마무라는 쇠주전자에 귀를 가까이 대고 방울 소리를 들었다. 방울이 울려대는 언저리 저 멀리, 방울 소리만큼 종종걸음치며 다가오는 고마코의 자그마한 발을 시마무라는 언뜻 보았다. 시마무라는 깜짝 놀라, 마침내 이곳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설국’의 주인공 시마무라는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결국 그곳을 떠나려 마음먹는다. 그렇다. 완벽한 목적지, 완벽한 결과는 없다. 모든 결과는 결국 과정이다. 인간은 또 다른 어떤 곳을 향해 떠나는 존재다. 결국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한 ‘곰스크로 가는 기차’의 주인공 ‘나’는 소설 후반부에서 이런 얘기를 듣는다.
“사람이 원한 것이 곧 그의 운명이고, 운명은 곧 그 사람이 원한 것이랍니다. 당신은 곰스크로 가는 걸 포기했고 여기 이 작은 마을에 눌러앉아 부인과 아이와 정원이 딸린 조그만 집을 얻었어요. 그것이 당신이 원한 것이지요. 당신이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면, 기차가 이곳에서 정차했던 바로 그때 당신은 내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기차를 놓치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 모든 순간마다 당신은 당신의 운명을 선택한 것이지요… 그건 나쁜 삶이 아닙니다. 의미 없는 삶이 아니에요. 당신은 아직 그걸 몰라요. 당신은 이것이 당신의 운명이라는 생각에 맞서 들고 일어나죠. 나도 오랫동안 그렇게 반항했어요. 하지만 이제 알지요. 내가 원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깨달은 이후에는 만족하게 되었어요.”
지금 생활에 만족하며 아등바등 노력하려고 하지 말자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최선을 다해서 오늘을 빛나게 살자는 말이다. 내일을, 결과를 두려워하지 말고 지금 오늘을 행복하게 살면 결과는 당연히 좋아진다는 말이다. 나 역시 ‘100억원을 벌면, 건물주가 되면 자유롭게 여행도 하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행복하게 살아야지’라고 생각하며 살던 시절이 있었다. 오늘에 집중하지 않고 언젠가 있을 미래의 행복한 날에 집중했던 것이다. 그 결과 100억원도, 건물도 내게는 생기지 않았다. 그러다 독서를 통해 오늘을 즐길 수 있으면 결과는 당연히 좋아진다는 것을 깨달았고 지금 그렇게 되고 있다.
우리의 곰스크는, 우리의 최종 도착지는 ‘죽음’이다. 그곳에 도착할 때까지 아름답고 빛나게 살아야 한다. 결과를 걱정하지 말자. 나중 결과는 지금 선택으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지금 휴대폰을 1시간 동안 보는 ‘나’보다 책을 1시간 읽는 ‘나’의 미래는 당연히 결과가 좋을 것이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다”라고 했다. ‘Birth’와 ‘Death’ 사이의 ‘Choice’라는 뜻이다. 결국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특히 오늘의 선택이 미래의 결과를 결정한다. 아직 단풍의 붉은 기운이 남아 있다. 주말에 춘천 가는 기차에 몸을 싣고 떠나 보자. 가방 속에 오늘 소개한 책들을 가지고 가 보자. 아니다. 읽을 책을 독자 여러분이 직접 선택하라. 당신이 직접 당신의 미래를 선택할 수 있다.
지금 당장 선택하라.
[설국]
1968년 일본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대표작.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 문학상 선정 이유로 “일본인 마음의 정수를 뛰어난 감수성으로 표현하는 그 서술의 탁월함”을 꼽았다. 눈 덮인 니가타현 유자와 지역이 소설 배경인데, 가와바타는 이곳에 머물면서 이 작품을 집필했다. 이 소설은 인간 내면의 깊은 감정과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감각적인문체로 섬세하게 그려냈다. 자연의 영원함과 인간의 유한함을 대비하며 존재의 덧없음을 성찰하게 하는 소설이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
독일 소설가인 프리츠 오르트만의 작품. ‘곰스크(Gomsk)’는 작품 속 가상 공간이다. 이제 막 결혼한 신혼부부가 기차를 타고 곰스크를 향한 여행길에 오른다. 이 도시는 남자가 어릴 적부터 아버지에게 들어온 꿈의 장소다. 평생에 꼭 한 번 가야 할 운명적 도시다. 하지만 여행 중 우연히 내린 작은 마을에 정착하려는 아내와 갈등한 끝에 결국 남자는 곰스크로 가는 꿈을 포기한다. 이 작품은 꿈과 현실, 개인의 열망과 삶의 선택 사이에서 인간이 맞닥뜨리는 갈등과 허무를 섬세하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