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유현호

퇴직 후는 ‘혼자 놀기’의 진수를 체험하는 시간이다. 세월이 흐르면 사회적 관계들이 자연스레 정리된다. 이때 혼자 놀 수 있어야 노년의 적(敵)인 고독과 무료함을 퇴치할 수 있다. 홀로 충만할 수 있는 습관은 우정과 부부애를 비롯한 모든 인간관계를 장기 지속시키는 윤활유다. 역설적이지만 혼자 놀 수 있어야 타인과도 동행할 수 있다.

책의 향기와 함께 세상 시름을 잊는다. 산책하기와 글쓰기도 그렇거니와 책 읽기야말로 혼자 놀기의 정수가 아닐 수 없다. 괴테는 파우스트의 입을 빌려 ‘모든 이론은 회색’이라고 외쳤다. 하지만 책 읽기는 회색이 아닌 총천연색의 경험이다. 홀로 집에 앉아서도 천변만화하는 세상을 그윽하게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크푸르트엔 2차 대전 때 폭격으로 파괴된 4층짜리 괴테 생가가 완벽히 복원돼 있다. 괴테가 바이마르로 떠나던 26세까지 머물렀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쓴 집이다. 청년 괴테가 사용하던 책상, 어린 시절 꿈을 키운 작은 인형의 집, 장서 수천 권인 괴테 부친의 서재를 둘러볼 수 있다.

괴테는 하늘 아래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했고 평생의 지적 여정을 100여 권 책으로 남긴 ‘르네상스적 인간’이었다. ‘색채론’과 ‘식물형태변화론’ 등 자연과학 저작까지 있다. 프랑크푸르트 생가에서 직접 본, 잉크 자국 선명한 괴테 책상이 기억에 생생하다. 지금 내가 사용하는 책상보다 훨씬 작다. 고위 공직자가 된 후에도 매일 새벽 읽고 쓴 후 공무를 봤고 길게는 하루 8시간을 집필한 사람이 괴테다!

예술과 학문, 공직 모두에서 ‘성공’했고 화려한 사교 생활을 누린 천재 괴테와, 칩거하는 내 생활 방식은 전혀 다르지만 한 가지만은 닮았다. 읽기에 대한 욕망이다. 선친이 여러 신문을 구독한 덕분에 난 어릴 때부터 신문에 익숙했다. 아침에 종이 신문을 펼치지 않으면 몸살 나는 평생 습관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대학생이던 형님들이 가져온 인기 소설과 에세이를 초등학생 시절 따라 읽는 게 좋았다. 가장 매료된 책은 삼국지와 임꺽정이었다. 웅혼한 삼국지의 세계에 매혹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누이동생과 인형극 놀이에 빠졌던 어린 괴테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동네 ‘두꺼비 만화점’ 최우수 고객으로 거의 매일 만화방에 드나들던 시절이다.

중학생 땐 무협 소설에 빠졌다. 고교 시절엔 헤르만 헤세에서 시작해 괴테를 거쳐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와 한국 문학을 읽었다. 대학생이 돼 중앙도서관 개가식 도서실을 만나자 날아갈 듯 기뻤다. 책의 바다에 빠져 사르트르의 ‘구토’ 주인공처럼 여러 분야 책을 무차별적으로 섭렵했다. 요즘도 대여섯 종류 책을 집안 곳곳에 늘어놓고 이것저것 동시에 읽는다.

귀한 읽을거리에 목말라 애타게 찾아 헤매던 시대는 옛일이 됐다. 지금은 문턱 없는 공공 도서관이 곳곳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무거운 종이책이 번거로우면 디지털 도서관을 이용, 언제 어디서나 스마트폰으로 책을 읽을 수 있다. 매달 커피 한두 잔 값이면 전자책 수십만 권을 자유롭게 만날 수 있다. 자투리 시간에 시와 수필을 읽는 것도 훌륭한 독서법이다.

혼자 놀 수 있어야 자유인으로 격상된다. 한 시인이 노래한 바, 혼자 놀지 못하는 이는 영혼이 텅 빈 ‘허수아비 인간’(The Hollow Men)이다. 세상엔 다양한 취미가 있지만 책 읽기는 자기 자신과 만나는 지름길이다. 홀로 읽기에 집중할 때 ‘마음의 중심’이 영글어 간다. 마음자리가 차분해지면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다. 책 읽기야말로 혼자 있어도 충만해지는 마법의 묘약이다. 읽기가 어려워 보여도 시작이 반이다. 지금 당장, 소박한 에세이 읽기로 상쾌한 아침을 시작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