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와 바람은 거칠었다. 꽃과 나비는 아름다웠다. 나는 걸었다. 좋게도 나쁘게도, 모든 것은 좋았다….’ -후지와라 신야의 ‘인도방랑’
후지와라 신야를 만난 건 동일본 대지진 100여 일 후였다. 대재앙 현장에서 구호 활동을 하고 돌아온 그는 “어쩌면 대지진이 일본에 축복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극한의 경쟁이 낳은 자살, 왕따, 가족 해체, 고독사로 피폐해져 가던 일본 국민이 “타인을 위해 울기 시작했다”고 했다. “거대한 슬픔이 사람들 사이 끊어졌던 끈들을 다시 이어주고 있다.”
그로부터 14년, 쓰나미 발원지이자 최대 피해 지역이었던 미야기현을 걸었다. 노장 신야가 구호품과 카메라를 메고 걸었을 길들을 한국과 일본의 ‘올레꾼’들이 함께 걸었다. 미야기현은 ‘재건’의 일환으로 2018년 사단법인 제주 올레와 손잡고 치유와 상생의 첫 길을 열었다. 올해 공개한 ‘자오·도갓타 코스’와 ‘다가조 코스’는 그 여섯째, 일곱째 길이다.
야생 곰의 출몰로 자오·도갓타 길의 정식 개장은 내년 봄으로 미뤄졌지만, 우리는 ‘베어 벨(bear bell·곰 쫓는 종)’을 흔들며 한 걸음씩 나아갔다. 곰 대신, 곰 닮은 남자를 만났다. 올레 마니아 류승룡. 맞다, 그 ‘김부장’이다.
◇ 자오산, ‘베어 벨’을 울리며 걷다
에도 시대에 번성했다는 자오마치는 미야기현에서도 오지 중 오지다. 일본 동북 지역 영봉(靈峰) 중 하나라는 자오연봉 동쪽 기슭에 있는 마을로, 한 집 건너 온천탕이 있고, 농업과 공예를 생업으로 삼은 시골 마을이다.
류승룡은 첫걸음을 떼기도 전에 한류의 위력을 보여주었다. 그를 알아본 일본 올레꾼들 요청으로 기념사진부터 찍어야 했다. “이놈의 인기란…(웃음).”
거대한 고케시 인형이 장승처럼 서 있는 다리를 건너면서 올레길이 시작된다. 난이도 ‘하’에 속하는 코스로, 약간의 오르막길을 제외하면 평이한 길들이 고원까지 가파르지 않게 이어진다.
류승룡은 7년 전 개장한 ‘게센누마 코스’를 시작으로 미야기 올레 다섯 코스를 모두 걸었다. 오래 전 제주 올레의 매력에 빠진 뒤 규슈 올레, 몽골 올레까지 완주했다. 그는 “보이지 않는 창살에 갇혀 있던 나를 올레길이 해방시켰다”고 했다.
“가난했지만 자유롭게 살다가 갑자기 뜨고 나니 미디어와 대중의 관심이 한꺼번에 밀려들었죠. 인기만큼 오해와 억측도 있었고요. 슬럼프까지 겹쳐서 위축되고 자꾸만 숨게 됐는데, 그 ‘보이지 않는 창살’ 밖으로 나오게 해준 것이 올레입니다.”
◇ 나무 향 진동하는 고케시 장인 마을
봄에는 벚꽃과 눈 덮인 자오 연봉을 함께 본다는 마쓰카와 강을 따라 걸으니 ‘미야기 자오 고케시 전시관’이 나왔다. 도호쿠 지역 전통 고케시 인형과 목제 완구 5500여 점이 전시된 곳으로, 목각 인형에 고케시 그림을 그려 보는 체험을 할 수 있다. 길은 고케시 장인들이 살고 있는 마을로 이어졌다. 우람한 덩치의 삼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풍경이 장관이다. 달콤쌉싸름한 나무 향 진동하는 오르막길에 작은 절이 나타났다. 목공예 조상을 신으로 모신다는 고레타카 신사(神寺)라고 했다.
잠시 쉬었다 가자는 누군가의 제안에 삐걱대는 벤치에 삼삼오오 앉았다. 규슈에서 왔다는 중년 부부가 배낭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함께 먹으려고 가져온” 롤케이크와 감귤, 우롱차였다. 보랭 용기에 얼음을 잔뜩 얼려 와 모두를 기함케 했다. 빵을 한입 베어문 류승룡이 “올레는 그냥 길이 아니고 이렇게 이타적인 사람들과 만나 따뜻한 정을 나누는 길”이라며 웃었다. “멋진 덱을 깔고 팻말만 꽂아 놨다고 해서 길이 아니거든요. 용한 의사를 알게 되면 ‘거기 꼭 가 봐’ 권유하듯이 올레는 자연 절경만큼이나 다정하고 아름다운 사람들로부터 위로받고 치유받은 이들이 또다시 모이는 길입니다.”
◇ 초록의 대지 ‘자오 하트랜드’
고도가 조금씩 높아진다 싶더니 우리는 어느새 ‘나노카하라 고원’에 와 있었다. 땅이 배수가 잘되는 화산재 흙으로 덮여 있어 고원 채소 재배가 잘된다고 했다. 수확을 앞둔 무밭을 따라 걷는 길이 청량했다. 이곳에서 재배되는 무는 곧고 길쭉한 데다 단맛이 뛰어나 온갖 요리에 활용된다고 했다. 굴비 말리듯 담벼락에 뽀얀 무가 주렁주렁 매달려 햇볕 쬐는 풍경이 정겨웠다.
마침내 자오·도갓타 길의 정점인 ‘자오 하트랜드’에 닿았다. “와~” 하는 탄성이 절로 날 만큼 하늘 아래 초록의 대지가 광활했다. 도쿄돔 20개 규모라는 목장에서 염소들이 뛰어놀았다.
작은 매점에선 자오의 명물이라는 치즈와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판매하는데, ‘몰크’는 꼭 맛봐야 한다. 치즈 드링크라는데 우유와 요구르트를 합해 놓은 듯한 맛이 나는 게 정말 맛있다.
제주에서 온 올레꾼이 배낭에서 사케를 꺼냈다. “올레는 역시 음주 올레!”라고 해서 웃음이 터졌다. 류승룡만 목석처럼 앉아 있었다. “저는 숙소에서 끓여 온 생강차를 마시겠습니다”라는 그의 말이 드라마 대사처럼 들렸다. “에이, 딱 한 잔만!”이라고 유혹했으나 그는 끝내 물리쳤다.
“오래 전 끊었어요. 모든 사건의 게이트가 술이었거든요. 무명 시절엔 하루 소주 다섯 병을 안주도 없이 매일 마셨는데, 이러다 죽겠더라고요. 담배야 자기 혼자 해롭지만, 술은 사고를 낼 수도 있으니까.” 걸으면서 건강을 되찾은 거냐고 묻자 이 남자, 팔뚝을 내밀었다. “만져 보세요. 얼마나 딴딴한지! 다정함도, 친절함도 결국 체력에서 나옵니다, 하하하!”
◇ 다가城, 천년의 자연과 역사
미야기 올레 다가조(多賀城) 코스는 JR 다가조역에서 시작됐다. 1300년 된 다가성터 남문에 이르는 8㎞ 길로, 3시간이면 넉넉히 오르내릴 수 있는 길이다. 류승룡은 “스키와 스킨스쿠버도 해보고 골프와 낚시도 즐겨 봤지만 올레 걷기만큼 좋지는 않았다”고 했다. “레시피가 다양하잖아요. 혼자 걷는 길, 둘이 걸으면 좋은 길, 아이들·부모님과 걸으면 좋은 길, 그리고 오늘처럼 1200명이 함께 걷는 길!” 마침 ‘2025 아시아 트레일즈 콘퍼런스’가 미야기현에서 열리고 있어 다가조 코스엔 올레꾼이 넘쳐났다.
다가조는 미야기 현청 소재지인 센다이시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인구 6만의 베드타운이지만, 고대 동북의 거점이었던 다가성터가 남아 천년의 자연과 역사를 느낄 수 있는 소도시다.
길은 시냇물 졸졸 흐르는 마을의 수로(水路)를 지나 봄이면 왕벚꽃 만개한다는 신사 ‘천만궁의 벚꽃’을 거쳐 동북역사박물관으로 이어졌다. 다가성 내로 본격 진입하기까지 마을과 숲길을 몇 차례 오갔다. 옛사람들이 일본 정형시 와카에 담아 읊었을 만큼 명소였다는 ‘우키시마 신사’에서 젊은 시절 경기도 평택에서 근무했다는 일본 노인을 만났다. “한국은 정말 다이내믹하고 아름다운 곳이었죠. 음식도 맛있고.” 진짜 맛있는 건 올레꾼을 환대하며 마을 주민들이 건넨 감주(아마자케)였다. 희고, 시원하고, 달콤했다.
◇ 올레 걷기로 ‘IT 디톡스’를!
다가성 내로 진입하자 ‘스즈메의 문’을 열고 들어선 듯 고대의 시공간이 펼쳐졌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울창한 숲이었다가, 메밀꽃 흐드러진 평야와 천년의 고목이 나오고, 다시 짓푸른 호수로 이어지는 천년의 길. 규슈 올레에 이어 미야기 올레 어드바이저로 참여한 이유미 제주올레 일본 지사장은 “다가조 주민들조차 비밀처럼 숨겨진 이 성터를 드나들지 않아 천년의 자연과 유적이 그대로 보존됐다”며 “덕분에 자연의 길을 많이 찾아낼 수 있었다”고 했다.
724년 세워진 다가성의 하이라이트는 정청터다. 나라의 헤조궁(平城宮), 후쿠오카의 다자이후 유적과 함께 일본 3대 사적으로 꼽히는 장소. 정무와 행정의 중심이었던 정청터에서 성의 정문인 남문에 이르는 길은 웅대하기 이를 데 없다. 자원봉사자로 보이는 다가성 해설사는 “아이노족이라는 오랑캐의 침략을 물리친 이 성은 만리장성을 쌓은 방식으로 지어졌다”며, “다가성은 고대 동북 지역의 정치 중심지이자 북방 세계로 가는 창구 역할을 했다”고 소개했다.
성의 역사를 기록한 다가조비(碑)는 남문 앞에 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3대 고비(古碑) 중 하나로 지난해 국보로 지정됐다. 이유미씨는 “다가성(多賀城)의 한자가 많을 다(多), 축하할 하(賀)인데, 창건 1300년인 지난해 올레로 선정되고 국보로도 지정돼 이름 그대로 축하할 일이 많았다”고 했다. 지난해 화려하게 복원한 남문엔 백제 유민 이야기도 얽혀 있다. 당시 일본에는 기와 만드는 기술이 없었는데 한반도에서 건너온 백제 기술자들의 도움으로 완성할 수 있었다고 했다.
류승룡은 일행보다 먼저 종점에 도착해 있었다. 살짝 지친 표정으로 구부정히 앉아 있어, 하마터면 ‘김부장!’이라고 부를 뻔했다. 드라마 속에서 김부장은 명퇴당한 뒤 분양 사기를 당하고 대리기사로 뛰며 생계를 잇지만, 류승룡은 “저는 20대에 밑바닥 고생을 다 해봐서”라며 헤벌쭉 웃었다. “미래는 누구에게나 불안하죠. 특히 요즘 같은 시절엔. 그래서 저는 시간 날 때마다 걸어요. 몸과 마음이 다 건강해지니까, 불안감이 자신감으로 바뀌니까.”
내년 1월에 대학생들과, 5월엔 어린이들과 올레길 걷는 행사에 합류하는 이유다. “아이들이 학원과 스마트폰에서 벗어나 올레길을 걸었으면 좋겠어요.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이란 시구를 좋아하는데, 우리 아이들도 그 기쁨을 누리게 해주고 싶어요. IT 디톡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