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는 단순한 행정 중심지가 아니라, 나라의 운명을 담은 특별한 힘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나라의 심장이다. 심장의 상태에 따라 한 사람의 건강이 좌우되듯, 수도는 그 나라 국운 흥망성쇠에 직결된다. 역사적으로 수도를 정하는 방법과 과정에는 다양한 요소가 고려된다. 나라를 세운 창업자 혹은 그를 보좌하는 최고 집단 지성들이 정한 자리다.
아널드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에서 수도 이전을 직접 논한 것은 아니지만, 문명의 흥망을 ‘도전과 응전’이라는 틀로 설명했다. 그가 제시한 전쟁, 교역로의 변화, 지리적 압력, 정복 세력의 선택 같은 요인들은 문명의 중심이 이동하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관점이다. 수도 이동 현상을 해석하는 데도 유효한 분석 틀이다.
전통적으로 동아시아에서 수도를 정할 때 풍수가 심층 요인(deep factor) 가운데 하나였다. 풍수를 구성하는 2가지가 바로 산과 물이다. 산이 있어야 방어에 유리하며, 넉넉한 물이 있어야 생활용수뿐만 아니라 물류를 이롭게 하기 때문이다. 특히 수도를 접하는 강과 바다와의 관계·수량·강폭·수심은 국운의 흥망성쇠에 직접적 영향을 준다. 천도와 국운의 상관관계는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주요 국가에서 여럿 확인할 수 있다.
2022년 8월 서울 르네상스를 위한 학술대회가 있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인사말이 있은 후 ‘첨단 과학과 자연, 문화가 어우러진 서울 르네상스’라는 주제를 가지고 전문가들의 발표가 있었다. 필자도 ‘자연과 첨단과학이 어우러진 도시’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발표 때 다음과 같이 시작했다.
“미래는 ‘ESG’가 화두이다. 그 가운데 E(Environment)가 으뜸이다. ESG가 구현될 ‘미래 세계도시 서울’을 만드는 데 풍수 활용 가능성은 충분하다. 부연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발표문 서론)
이어서 발표문 핵심 내용을 풀어서 소개하면 다음과 같은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한강의 역할이다. 과거 조선의 수도 한양은 주산은 북악산, 안산은 남산 그리고 명당수는 청계천이었다. 반면, 현재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주산은 삼각산, 안산은 관악산, 명당수는 한강이 됐다. 풍수상 한양과 서울은 전혀 다른 성격의 땅이다. 한양은 산간분지로서 폐쇄적이었다면, 서울은 강의 도시로서 개방적이고 역동적인 도시가 됐다. 개방과 역동을 견인하는 주체는 한강이다. 강남과 강북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이 둘을 음양의 두 축으로 움직이는 추동축(推動軸)이 됐다.
따라서 한강이 도시 기능과 도시 흐름의 중추가 돼야 한다. 이를 위해 서울시가 추진하는 ‘한강르네상스’도 필요하다. 다만, 지금의 서울시 ‘한강르네상스’는 ‘환경 미화’ 수준이기에 대한민국 수도의 국운을 추동하기에 역부족이다.
둘째, 용산강(만초천) 복원과 소(小)운하화(化)이다. 1967년, 만초천이 복개돼 지금은 물줄기를 찾을 수 없으나 복개된 아래로 건천(乾川)이 여전히 존재한다. ‘용산강 운하화’는 600년 전인 1413년 당시 좌의정 하륜이 주장한 바 있었다. “용산강에서 숭례문까지 운하를 파서 배를 운항할 것을 청합니다. 공사 기간은 한 달이며 동원 인원은 1만1000명이면 충분합니다.”(‘태종실록’)
셋째, 한강→용산강(만초천)→청계천→중랑천→한강의 물길을 잇는다. 한강 물이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 서해로 빠져나간다. 용산강(만초천)과 한강이 만나는 지점에 작은 보를 만들어 한강물을 용산강(만초천)→청계천→중랑천→한강으로 흐르게 해 수변 도시를 만든다. 기존의 청계천 수위 높임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발표의 핵심주제였다. “밤섬[율도·栗島]에 초고층 타워를 세우자!”
밤섬은 본래 여의도보다 큰 섬으로 조선시대부터 사람이 살던 집성촌이었다. 밤섬은 마포나루와 연계된 한강수운의 요충지였다. 한강을 오르내리는 배들의 건조와 수선 장인들이 주로 거주했다. 조선업의 핵심지였다. 1968년 여의도 성토 목적으로 62세대를 강제 추방하고 폭파했다. 폭파 이후 섬이 사라졌으나 이후 자연스러운 퇴적으로 더 큰 섬으로 ‘부활’했다. 땅의 성격이다. 죽지 않는 땅이다.
이곳에 가칭 ‘한강문명타워’ 초고층 건물을 세운다. 사유지가 아닌 국유지이기에 공사 비용이 절감된다. 지질은 암반이다. ‘굳건한 토대’이자 공사비 절약에 도움이 된다. 상업 시설이 아닌 대한민국 문명을 세계사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용도로 활용한다.
최근 ‘한강버스와 종묘 주변 개발’을 둘러싸고 여야가 다툰다. 심지어 ‘주민투표로 종묘 개발 여부를 정하자’는 국회의원도 있다. 수도를 볼모로 여야가 정쟁하지 말고, 세계적 수도로 비상할 수 있는 ‘수도 개발과 보존’을 고민해야 한다.
(참고로, 필자는 유네스코 자문 기구인 ICOMOS 회원이다. 말이 자문 기구이지 실질적 평가 기구이다. 종묘 주변 개발 문제를 두고 몇몇 이에 정통한 ICOMOS 전문가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애매한 부분이 많다. 꼭 보존론이 유리하지 않다. 서울시는 유네스코가 요구하는 ‘세계유산환경평가’를 받아보기를 권한다. 여당 주장과 다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