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서울 명동의 D 안경점에서 외국인들이 안경을 고르고 있다. 이 매장은 외국인 고객 비율이 70% 수준이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24일 오후 서울 명동의 D안경점. 1층부터 3층까지 안경·콘택트렌즈·선글라스 등을 파는 이곳은 외국인들로 북적였다. 매장 곳곳에 영어·중국어·일어로 된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분홍색 히잡을 쓴 자라(27·말레이시아)씨와 우즈마(27)씨는 렌즈를 잔뜩 구입한 뒤 직원에게 면세 혜택 받는 법을 묻고 있었다. 자라씨는 “이 안경점이 틱톡에서 굉장히 유명하다”며 “말레이시아와 가격은 비슷한데 선택 폭이 굉장히 넓다”고 말했다. 우즈마씨는 “시력 검사를 아주 체계적으로 해줘 믿음이 간다”고 했다. 친구들끼리 일주일 일정으로 한국 여행을 왔다는 이들은 화장품 가게와 아이돌 굿즈숍 말고도 이 안경점 방문이 주요 계획 중 하나였다고 했다.

3층 시력 검사실에서 만난 미국인 조(59)씨도 “챗GPT의 한국 여행 일정 추천으로 안경을 사러 왔다”며 “아주 빠르고 쉽고, 가격은 미국의 절반도 안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6~7개쯤 되는 검사실·상담실마다 영어가 들렸다. “Which one is better, left or right?(왼쪽 오른쪽, 어느 쪽이 잘 보이나요?)” 검안테를 쓴 외국인들이 눈을 끔뻑이며 답변을 이어갔다.

외국인 관광객 사이에서 한국 안경원이 ‘K안경 투어’라는 이름의 새로운 쇼핑 코스로 주목받고 있다. 대부분 해외에서는 안경 제작에 수주가 걸리는데, 한국은 검안부터 안경 수령까지 반나절 정도면 충분하다. 게다가 가격은 절반 정도라 새로운 ‘코리안 쇼핑 리스트’에 오르게 된 것. 한화이글스 외국인 투수 라이언 와이스의 장인·장모가 한국을 찾아 안경을 맞추는 장면이 공중파 TV 프로그램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외국인을 위한 한국 관광 플랫폼 크리에이트립은 올해 6~10월 안경원 상품 거래액이 전년 동기 대비 16배 급증했다고 23일 밝혔다. 이 플랫폼에서 안경원 상품을 도입한 지는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안경점과 가까운 음식점·기념품점을 묶어서 예약하는 관광 코스다. 안경점을 찾아 시력 검사를 하고 안경을 맞춘 뒤 제작이 완료될 때까지 식사나 다른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국적별로는 미국(49%)이 거의 절반을 차지했고, 대만(26%), 독일(9%) 등이 뒤를 이었다.

D안경 명동점 측은 “2019년쯤부터 구글 리뷰에 외국인들 후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는데, 코로나 이후 매년 폭발적으로 늘어난다”며 “작년 대비 올해 매출이 45% 늘었고 외국인 고객 비율이 70% 정도 된다”고 말했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특별한 마케팅이 없었는데도 알음알음 소문이 나면서 유명해졌다고. 실제로 구글 리뷰는 2000개가 넘고 평점은 4.9(5점 만점)였다. 영어로 작성된 리뷰에는 “새 안경을 맞추러 한국에 간다고 했던 소문이 모두 사실이었다” “무료 검사 후 한 시간 만에 안경을 받았다” “직원들이 전문성 있고 친절했다” 등 호평 일색이었다. 이 매장을 찾는 외국인 손님은 미국·호주·캐나다·싱가포르·대만 등 국적이 많다. 18명 직원 대부분이 영어는 능숙하게 구사하고 일본어·중국어가 가능한 직원도 있다.

미국 등과 달리 우리나라는 안경사가 시력 검사·처방까지 한꺼번에 할 수 있기 때문에 속도와 비용 모두 경제적일 수밖에 없다. 시드니에 사는 메건(35)씨는 “호주에서는 시력 검사에만 100불 정도 들고, 안경을 받는 데 3주 이상 걸린다”며 “한국 여행에서 가족마다 모두 안경을 샀다”고 말했다.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 효율성이 관광 상품으로 특화된 셈.

한국 안경의 다양한 디자인과 폭넓은 시장 선택지도 큰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안경이 단순한 시력 교정 도구를 넘어 TPO(시간·장소·경우)에 맞춰 바꿔 착용하는 패션 아이템으로 인식되는 가운데,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이 한국 안경을 직접 보고 구매하는 경험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안경 업계 관계자는 “안경테와 렌즈 컬러도 한국처럼 다양한 경우가 없다고 한다”며 “한 번에 여러 컬러, 여러 스타일의 안경을 사 가는 외국인도 많다”고 했다.

블랙핑크 제니와 ‘설국열차’의 배우 틸다 스윈턴 등을 광고 모델로 쓴 ‘젠틀몬스터(아이아이컴바인드)’는 연 매출 1조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는데, 전체 매출 중 해외 비율이 40%를 차지한다. ‘블루엘리펀트’ 등 후발 주자들도 상승세다. 타임지 아시아판 커버에 등장한 이재명 대통령이 착용한 안경은 국내 브랜드 ‘바이코즈’의 제품이었다. K안경까지 왔다. 다음 ‘K○○’은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