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정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소식을 전한 조선일보 1936년 8월 10일자 새벽 호외. 손기정의 사진은 일장기 박힌 베를린 사진 대신 양정고보 유니폼을 입은 자료사진을 썼다. /조선일보 DB

생전의 손기정 선수는 조선일보와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

1936년 손기정의 베를린 올림픽 출전을 하루 앞둔 8월 8일, 한국 언론사상 첫 국제전화 인터뷰가 이뤄졌다. 조선일보 도쿄지국에서 베를린으로 전화를 연결해 9분간 통화한 것. 이 ‘첨단 과학 취재’에 당시 기자 10명분 월급이 날아갔다고 한다. 그만큼 그의 우승을 예측한 것이다.

우승 직후 다시 걸려온 조선일보의 전화. “손군, 얼마나 기쁘오? 소감을 말해주시오.” 금메달을 목에 걸고 처음 동포의 모국어를 들은 손기정은 한참 목놓아 울었다. “기쁘기도 하지만 알 수 없는 설움이 북받쳐 올라 울음만 나옵니다.”

조선인의 이 쾌거를 가장 빨리 알린 것도 조선일보였다. 한국 시각 8월 10일 새벽 1시 30분 경기가 끝나자 1시간 만에 호외를 찍어 전국행 열차에 실어 보냈다.

한국언론사상 첫 국제전화 인터뷰는 1936년 조선일보의 베를린 현지 손기정 인터뷰였다. 그는 "우승은 했으나 왠일인지 울고만 싶더군요"라고 했다. /조선일보DB

손기정이 ‘형’이라 불렀던 조선일보의 빙상 선수 출신 고봉오 기자는 훗날 신여성 육상 스타였던 강복신(손정인씨 어머니)과 손기정을 중매하기도 했다. 1939년 두 사람의 결혼도 단독 보도했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 조선일보는 손기정의 올림픽 우승 10주년을 기념해 첫 마라톤 대회를 열었다. 국내 최고 권위 춘천마라톤의 효시다. 지금도 춘마의 정식 명칭은 ‘춘천마라톤 및 손기정세계제패기념 전국마라톤선수권대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