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관에서 사고가 너무 많으니… 어디 무서워서 아이 보내겠어요?”
지난 12일 청주상당경찰서가 9세 여아를 다치게 한 혐의로 충북 괴산의 합기도 관장 A씨를 검찰에 송치한 소식이 알려지자, 지역 맘카페와 온라인 커뮤니티는 술렁였다. 사건이 발생한 것은 지난 5월 20일. A씨의 지도로 공중회전 동작(배들어올리기)을 연습하던 아이는 수업이 끝난 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호소했지만, A씨는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귀가시켰다. 뒤늦게 부모와 병원을 찾은 아이는 하반신마비 진단을 받았고, 현재 재활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태권도·합기도 등 어린이 운동 학원을 ‘체력 키우는 곳’이라 믿어온 부모들에게는 충격적인 뉴스였다.
지난해에는 경기도 양주의 태권도 관장 B씨가 4세 남아를 매트에 거꾸로 넣고 방치해 숨지게 한 일도 있었다. “아이를 지도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행동이냐”는 공분이 이어졌고, 수사 과정에서 B씨가 피해 아동뿐 아니라 수십 명의 아이를 상습적으로 학대한 사실까지 드러났다.
최근 몇 년 사이 어린이 체육시설에서 발생한 사건·사고는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뉴스에 나오는 것만 이 정도면, 드러나지 않은 사건은 얼마나 더 많겠느냐”는 말까지 나온다.
◇때리고, 넘어뜨리고… 성범죄까지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국에 등록된 스포츠 교육기관은 3만5491곳. 이 가운데 국기원에 등록된 태권도장은 9750곳으로, 90% 이상이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운영되고 있다. 태권도장뿐 아니라 합기도·유도장, 축구·농구·야구 클럽, 줄넘기 학원 등 종목도 다양해졌다. 이 시설들은 맞벌이 가정에서 사실상 ‘돌봄 기관’ 역할을 해왔다. 숙제를 봐주거나 간단한 공부를 도와주고, 예절·인성 교육을 병행하거나 간식·저녁 식사까지 챙기는 곳도 있다. 학예회 준비를 거들어주거나 형제·자매까지 함께 돌보는 곳도 있을 만큼 기능은 넓어지고 있다.
하지만 학대 사건과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작년과 올해에 알려진 아동 대상 체육시설 사건·사고만 수십 건. 40대 축구 코치 C씨는 훈련을 잘 따라오지 못한다며 초등학생들을 막대기로 때리고 정강이를 발로 차는 등 폭행했고, 30대 복싱 체육관 관장 D씨는 자신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는 것을 문제 삼아 중학생 제자를 러닝머신 위에서 억지로 뛰게 한 뒤, 다리를 걷어차 넘어뜨렸다. 50대 태권도 관장 E씨는 도복을 개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섯 살 아이를 피멍 들도록 때려 검찰에 넘겨졌고, 20대 태권도 사범 F씨는 초등학생을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됐다. 지난 18일 자신이 운영하는 도장 여성 탈의실에 불법 카메라를 설치한 혐의로 체포된 30대 태권도 관장 G씨 사건도 큰 충격을 줬다.
부모들의 불안과 우려는 커지고 있다. 합기도 학원 사고 소식이 전해진 날 맘카페에는 “무서워서 태권도·합기도 같은 운동 못 시키겠다” “믿고 보낸 곳에서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느냐” “왜 이렇게 안타까운 사고가 많은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서울 강동구에 사는 워킹맘 최모(40)씨는 “끔찍한 뉴스가 계속 나오다 보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이에게 ‘태권도장에서 맞은 적 있느냐’고 물었더니, 관장이 발로 뒤통수를 찼다고 말하더라”며 “찾아가 따졌더니 (관장이) ‘훈육 차원에서 한 것’이라고 말하는데 피가 거꾸로 솟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유치원생 자녀를 둔 이모(44)씨도 “맞벌이는 태권도장에 보내는 게 당연하다는 분위기인데, 사고가 너무 많아 등록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격 체계 허술, 관리 시스템도 취약
사건·사고는 왜 반복되는 걸까. 전문가들은 체육 지도자 자격 체계의 허점과 인성·도덕성 교육의 부재를 지적한다. 종목별로 세부 자격 조건은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적으로는 생활스포츠지도사 2급 자격증이 있으면 어린이 대상 체육시설 운영이 가능하다. 전선혜 중앙대 교수(체육교육)는 “간호사나 유치원 교사는 필수 전공·교육과정이 있지만 생활스포츠지도사는 전공 여부와 무관하게 만 18세 이상이면 누구나 취득할 수 있다”며 “법·윤리 교육도 형식적이고, 실제 아이를 지도하는 데 가장 필요한 인성·도덕성에 대한 체계적 교육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 심지어 범죄 경력이 있는 사람들도 자격 취득 과정에서 걸러낼 장치가 사실상 없다”고 덧붙였다. 전 교수는 또 “어린이 체육 교육은 연령 특성에 맞는 전문성이 필수인데, 어린이에 대한 기본 이해조차 없는 지도자가 많은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해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안전안심 체육시설’로 선정된 부천화랑태권도의 유정필 관장은 “가장 큰 문제는 지도자의 안전 인식 부재”라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을 강하게 가르치려는 지도자가 많고,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태도를 가진 이도 적지 않다”며 “기본적인 안전 체크 리스트조차 제대로 숙지하지 않은 채 수업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어 유 관장은 “사건·사고 예방에 관한 제도적 교육이 없다는 점도 큰 문제”라며 “아동 학대 예방 교육이나 응급처치 교육은 분기별로 받고 있지만,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교육은 없다”고 말했다. 체육계 전반에 남아 있는 권위주의적 문화와 체벌에 대한 관대한 인식, 지도자 인력난으로 무자격자가 아르바이트 형태로 아이들을 지도하는 현실 역시 문제로 꼽힌다.
관리 시스템의 취약함도 문제다. 태권도장·합기도장 등은 ‘학원’이라는 상호명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 법적으로는 대부분 학원이 아닌 ‘체육시설’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학원법이 아닌 체육시설법의 적용을 받고, 교육부가 아닌 문화체육관광부가, 교육청이 아닌 지자체가 관리·감독을 맡는다. 운영 시간, 교육 환경, 종사자 자격 검증 등 필수 관리 항목이 느슨하고, 지자체는 대부분을 일반 업종처럼 관리해 지도 방식·인권·안전문제를 세밀하게 들여다보기 어려운 현실이다. 문체부에 따르면 2020~2022년 범죄로 자격이 취소된 체육 지도자는 3197명에 달했다. 음주 운전 등 도로교통법 위반이 1047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성범죄 540명, 사기 402명, 폭행 251명, 마약 56명, 심지어 살인 11명도 포함돼 있었다. 성범죄자·아동 학대 전과자가 체육시설에 취업했다 적발되는 사례도 매년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4~12월 태권도장·유도장 등 체육시설 20곳에서 아동 학대 범죄로 취업 제한 명령을 받은 20명(운영자 13명, 취업자 7명)이 계속 일해온 사실이 확인됐다.
◇“지도자의 안전 의식이 가장 중요”
전문가들은 국내에서도 반복되는 사고를 줄이기 위해선 지도자 교육과 관리 체계를 근본적으로 손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전선혜 교수는 “지도자 자격 제도를 더 엄정하게 손질하고, 인성·도덕성 교육을 실질적으로 강화해야 한다”며 “사실상 한 번 취득하면 갱신 없이 유지되는 현 체계를 정기 교육과 갱신이 이뤄지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의 생활체육 현장에서는 연방 차원의 ‘세이프스포츠(SafeSport)’ 기준에 따라 코치 전원이 학대 예방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는다. 종목별 세부 규정은 다르지만, 대부분 코치 자격은 일정 기간마다 갱신해야 하며 안전·윤리 교육을 반복적으로 이수해야 한다. 연령별 지도 원칙과 상황별 안전 매뉴얼도 촘촘하게 마련돼 있어, 생활체육 수준에서도 지도자와 시설이 따라야 할 기준이 표준화돼 있다.
유정필 관장은 “딸이 어릴 때 도장에서 작은 턱에 걸려 넘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은 작은 요인에도 쉽게 다칠 수 있다는 걸 절감했다”며 “아이 하나가 넘어지면 그 자리부터 바로 고치고 바꾸는 습관이 생겼고, 그 경험이 아이들을 교육할 때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사고 예방의 출발점은 결국 지도자의 안전 인식”이라며 “항상 ‘혹시라도’라는 마음으로 시설을 점검하고 아이들을 실시간으로 살피는 것이 기본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