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 급식. 14년 전 대한민국을 달궜던 이슈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공짜로 점심을 줄 것인가를 두고 나라는 둘로 쪼개졌고, 보혁의 주도권이 바뀌는 주요 계기가 됐다. 이념을 떠나 ‘애들 밥 먹이는 걸로 야박하게 굴지 말자’는 게 보편적 우리 정서였을 것.

홍게 한 마리가 그대로 올라가고 회오리감자 같은 후식까지 주는 호화로운 한국 급식이 화제다.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무상 급식이 자리 잡은 지 10여 년, K급식은 그야말로 대세다. ‘한국 급식을 영국 아이에게 먹여봤더니’ ‘충격적인 미국 급식 현주소’ 같은 영상이 인기를 끌고, 학교 급식이나 회사 구내식당 메뉴를 사진 찍어 공유하는 사람도 많다. 드물게 ‘부실 급식’ 논란이 뉴스가 되기도 하지만 랍스터에 통닭, 마라탕까지 호화롭고 훌륭한 메뉴로 화제가 되는 경우가 더 많다.

K급식 어디까지 먹어봤니

두툼한 삼겹살 수육과 햇김치, 밭에서 금방 따온 것 같은 풋고추와 상추. 짜장면과 짬뽕, 탕수육과 연근·호박 튀김까지 중식 한 상…. 미국 커뮤니티 ‘레딧’에서 화제가 된 ‘내 한국 급식(My Korean School Lunch)’ 시리즈다. 한국 학교에서 근무하는 미국인 교사가 매일 근사한 급식 식판을 찍어 올린 것으로 추정되는데, 미국인들에게는 ‘나는 대체 무슨 쓰레기를 먹고 큰 건가’ ‘피자나 케첩이 아니라 진짜 채소가 있네?(미국에서는 토마토소스가 들어가는 피자와 감자튀김이 채소로 분류됐다)’ 같은 성토의 장이 열리기도 했다.

최근 구독자 수가 2950만에 달하는 한 해외 유튜버는 세계 30여 국의 급식을 먹어보며 비교했는데, “이건 이기기 어렵다”는 평이 나온 한국 급식은 당당히 최고(S) 등급에 올랐다. S등급은 4국뿐. 미국은 C, 영국은 D, 독일은 F 등급으로 분류됐다. 이 영상에 쫓아간 한국인들은 “유기농 재료에 영양사가 매일 다른 메뉴를 기획한다. 정말 맛있다” “밥에 진심인 나라다” 등의 댓글을 쏟아내고 있다.

지역마다 어느 학교 급식이 맛있는지 같은 정보가 공유되고, ‘전국 급식 맛있는 학교 Top7’ 같은 리스트도 돈다. 매일 풍성하고 화려한 급식 사진을 찍어 공유하는 영양사들은 SNS 셀럽이 되기도. 미국 주재원으로 초등학생 두 아들을 키우는 김선희(가명)씨는 “여기 급식은 참혹한 수준이라 매일같이 도시락을 싸고 있다”며 “한국 급식은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축복”이라고 했다.

한국 급식은 운영 원칙, 영양 관리, 위생 기준, 조리 인력 배치 등을 법으로 관리한다. 급식 수준이 올라가다 보니 요즘은 오히려 “매운 반찬이 많다” “왜 손만두가 아닌 시판 만두를 쓰나” 같은 ‘배부른’ 민원이 많아졌다고.

어른들도 열광하는 급식

직장인들에게는 급식이 애사심을 끌어올리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작년 12월 기준 서울 지역 7개 외식 메뉴(김치찌개·삼겹살·짜장면 등) 평균 가격은 10년 전과 비교해 40.2% 올랐다. 1만원짜리 한 장으로 점심을 사 먹기 어려워지면서 구내식당이 최고의 사내 복지가 된 것. 하이브와 JYP, 한화, SK 등 구내식당이 웬만한 맛집 수준이라는 곳도 계속 늘어나고, 구내식당 ‘식판샷’을 날마다 SNS에 올려 자랑하는 직장인도 많다.

삼성 계열에 다니는 이모(45)씨는 “점심뿐만 아니라 일찍 출근하다 보니 아침도 회사에서 먹고, 저녁은 샐러드 같은 구내식당 메뉴를 포장해 귀가한다”며 “삼시 세 끼 회사 급식을 먹는 셈인데 가족 모두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광화문 직장인 김모(36)씨는 “인근 관공서 등 외부인에게 개방된 구내식당을 찾아가기도 한다”며 “저렴한 가격에 균형 잡힌 식사를 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밥 주는 아파트’는 고급 주거의 한 조건으로 평가받는다. 아파트 커뮤니티에 급식 시설을 둔 경우인데, 집밥이 곧 급식인 셈. 서울 강남구에 사는 유모(41)씨는 “아들 방학 때 아파트 구내식당을 아주 잘 이용했고, 같은 단지에 사는 부모님도 자주 이용하신다”며 “나중에 이사를 하더라도 밥 주는 아파트를 찾으려 한다”고 말했다.

삼성웰스토리·아워홈·현대그린푸드 등 주요 급식업체들도 활짝 웃고 있다. 기업과 아파트·실버타운 등 내수 시장이 커지고, K푸드·K급식이 주목받으며 해외 진출도 늘어난다. ‘밥심’으로 산다는 한국인들이 K급식까지 하나의 ‘K영역’으로 끌어올린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