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가끔 혼자 놔두는 것도 필요해!” 어느 동창 모임에서 여러 잡담 끝에 박장대소하며 내린 결론이다. 퇴직 후 오로지 ‘아내바라기’ 남편과 늘 붙어 다녀야 했던 친구들, 오랜만에 나타나 득의만면해 들려준 얘기 덕분이다. 이 친구들의 공통점은 혼자 장기간 해외로 떠났다 귀가했다는 점. 또 수십 년간 ‘일중독’의 유능한 남편 뒷바라지에 온 힘을 다했고 부부 간 애정이 여전히 돈독했던 사이다. 또 아내가 오랜 시간 집 비우기를 금기시했던 ‘위인’들이라 퇴직 후 언제나 2인 3각인 양 붙어 다녀야 했다는 것.

혼자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함께했던 날들의 소중함이 더 깊어진다. /게티이미지뱅크

이제 나이도 잔뜩 들었으니 그만 좀 집안일에서 해방되고 싶었단다. “내 인생은 어디 갔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우리 또래의 흔한 푸념이다. 그런 탓에, 친구들과 여행 한번 변변히 하기 힘들었던 아내 A에게 미안했던지 고민 끝에 선심을 쓰더란다. 그녀도 ‘우리 집 큰아들’인 양 집안일은 아무것도 모르는 남편이 과연 세 끼 밥은 물론 청소와 빨래를 어찌 할지 고민되더란다. 하지만 햇반과 구운 김, 김치 등을 쌓아 놓고는 눈 딱 감고 떠났다. 해외에 사는 친구들 집도 순례하는 등 여럿이 장기 여행에 나섰던 친구는 몇 달 사이 급변한 남편을 보고 감격, 절로 눈물이 흐르더라는 것.

그 남편은, 최근 아내와 사별 후 요리 학원에 다니던 자기 고교 동창의 한식 요리반에 같이 등록해 매번 실습 겸해 만든 반찬을 가져와 먹었단다. 그러고는 갈수록 요리에 재미가 붙어 나중에는 집에서도 요리 동영상을 봐 가며 실습을 거듭, 갖가지 조리법을 체득했더라는 것. 친구가 집에 도착해 놀란 것은 그녀 방은 물론 거실·욕실까지 아주 깨끗이 청소해 놓고 밥상까지 차려 놓았다는 것. 세탁한 옷도 차곡차곡 잘 개어 놓고. 더욱 놀란 것은 그동안의 생활과 혼자 있던 외로움, 아내의 소중함과 고마움·미안함을 일기장에 빼곡하게 적어 보여주더라는 것. 그러면서 아내가 더 늙지 않길 바라는 짧은 시까지 곁들였다니 눈물이 쏟아지고 그간의 서운함이 몽땅 사라졌다는 것이다. “참 귀엽다. 너희 집 큰아들, 철들었네” 하며 다들 웃어댔다.

두 번째 친구 B. 미국에 사는 딸네 살림을 돌봐줄 일이 생겨 잠시 갔다가 뜻밖의 사정이 생겨 1년 가까이 떨어져 있게 됐던 것. B의 남편 역시 아내의 부재가 자기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깨달아 나머지 인생은 좀 더 헌신적으로 아내에게 충성하기로 맹세했다나. 그 사람 또한 그 나름의 생존법을 터득해 열심히 해 먹고 살아 예전과 달리 “여보 오늘 아침 나 뭐해 줄래?”에서 “당신 뭐 먹을래?”로 바뀌었단다. 또 하나 달라진 것은 그간 무시했던 강아지와 우정이 안쓰러울 정도로 돈독해졌다나. 친구들도 덩달아 웃고 눈물 흘리며 상대의 중요성을 깨치려면 부부간에도 때론 헤어지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국문과 출신답게 누군가 대뜸 칼릴 지브란의 시를 읊조린다. “너희는 함께 있으되 거리를 두라.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함께 있으되 너무 가까이 서지 마라. 사원의 기둥들이 서로 떨어져 서 있듯 참나무와 삼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서는 자라지 않듯.”

나이가 들어가면서, 젊은 시절 어쩌다 만나 짝이 돼 수십 년을 옆에서 버텨온 상대를 측은지심으로 바라본다. 특히 요즘처럼 갑작스러운 병으로 상대를 놓치는 친구를 자주 보게 되니 더욱 그렇다. 그야말로 백 년을 해로한다는 것은 기적이요, 오누이인 양 오순도순 살아가는 일이 축복임을 깨닫는다. 세상에 태어난 미미한 내 한 존재가 단 한 생명만이라도 따뜻하고 흐뭇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한다는 것, 그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사랑했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하지 않던가. 억겁의 세월 속, 동(同)시대에 태어나 수많은 사람 중 하필 내게 찾아와 닻을 내린 그 사람, 이 풍진 긴 세월 함께 울고 웃으니 그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왕 부부가 된 것, 끝까지 잘해 보자고요. 인생사, 마음먹기 나름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