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주의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미술 사조 중 하나다. 밝고 다채로운 색감, 부드럽고 자유로운 붓놀림, 보기만 해도 청량한 풍경과 기쁨이 묻어나는 인물…. 그 자체로 보는 이를 기분 좋게 만드는 힘을 지녔기 때문이다. 각 화가의 개성이 뚜렷해 취향에 맞는 작품을 골라 감상하는 재미도 있다.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 특별전은 올해 우리나라에서 인상주의를 주제로 열리는 네 번째 전시다. 전시를 준비하며 설렘만큼이나 걱정도 있었다. 이미 대중에게 친숙한 인상주의를 어떻게 새롭게 보여줄 것인가. 기대에 부응할 특장점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
전시에서 보여주고자 한 것은 바로 ‘인상주의’ 그 자체였다. 누구나 대표 작가 몇 명쯤은 쉽게 떠올릴 만큼 친숙하지만, 인상주의는 ‘유명하고 아름다운 그림’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인상주의가 태동한 19세기 후반은 거대한 서양 미술사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통념에서 벗어나려는 화가들의 새로운 시선이 예술의 물결을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1874년 첫 인상주의 전시회를 열었을 때만 해도, 이들 작품은 “벽지보다 못하다”는 조롱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기존 양식을 과감히 탈피한 인상주의의 실험 정신은 오늘날 모더니즘으로 이어지는 결정적 전환점으로 평가받는다.
전시는 ‘몸’ ‘초상과 개성’ ‘자연’ ‘도시에서 전원으로’ ‘물결’ 다섯 주제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이 주제는 인물화와 풍경화라는 오랜 미술의 장르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보여주며,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변화가 예술에 미친 영향을 함께 조명한다. 단순히 사조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화가의 시선을 통해 19세기 파리를 바라봄으로써 인상주의가 어떻게 현대미술로 이어지는 인식의 문을 열었는지를 새롭게 탐색하고자 했다.
출품작 대부분은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로버트 리먼 컬렉션’에서 온 것이다. 미국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로 유명한 거부(巨富)의 애장품. 부친 필립 리먼이 시작한 수집을 아들 로버트 리먼이 이어받아 1969년 세상을 뜰 때까지 이어나갔다. 특히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시기의 프랑스 회화에 관심이 깊었고, 인상주의 대표 작가의 걸작을 본격적으로 수집했다. 자문에 의존하지 않고 폴 세잔의 독특한 풍경화, 점묘법을 활용한 폴 시냐크의 도시 풍경화 등 본인만의 감식안을 통해 컬렉션의 완성도를 높였다. 이번 전시가 인상주의의 다채로운 면모와 더불어 수집가의 독창적 안목을 함께 경험할 기회인 이유다.
전시의 문을 여는 그림은 살바도르 달리의 1955년 작 ‘레이스를 뜨는 여인’이다. 17세기 네덜란드 거장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작품을 모사한 것인데, 초현실주의 대표 화가인 달리가 이런 고전적 작품을 남겼다는 사실도 흥미롭지만, 더 놀라운 건 리먼이 직접 달리에게 작품 제작을 의뢰했다는 점이다. 자신의 컬렉션에 끝내 비어 있던 페르메이르의 자리를 채우기 위해, 평소 ‘레이스를 뜨는 여인’ 재해석에 관심이 많았던 달리에게 연락했다고 한다. “당신이 구상하고 있는 모사본을 간절히 원합니다. 구할 수 있다면 제게 큰 기쁨이 될 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미술, 특히 네덜란드화파에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도 매우 큰 가치를 지닐 것이라 믿습니다.” 그림마다 이 같은 화가와 수집가의 특별한 이야기가 얽혀 있다.
전시 제목 ‘빛을 수집한 사람들’은 바로 이 두 세계를 함께 가리킨다. 하나는 19세기 후반 순간의 인상 속에서 빛의 변화를 포착하고자 했던 화가들의 세계, 다른 하나는 그들의 화폭 속에서 피어난 빛을 알아보고 자신의 삶으로 끌어안은 수집가 로버트 리먼의 세계. 화가들은 붓으로 빛을 담았고, 리먼은 그 빛을 그러모았다. 이번 전시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빛을 모으며 예술이 한 사람의 감동에서 또 다른 이의 삶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여정을 담고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인상주의가 단지 ‘예쁘고 유명한 그림’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관점을 바꾼 화가들의 도전과 열정 속에서 모더니즘의 꽃을 피운 결정적인 흐름으로 기억될 수 있기를 바란다. 아울러 평생에 걸친 수집품을 기증하며 “예술은 소유하는 게 아니라 나누는 것”임을 보여준 로버트 리먼의 마음이 한국 관람객들에게도 깊이 전해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