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군부대에서 사병들 사이에 미용 목적의 치아 교정이나 시력 교정, 성형수술과 모발이식, 피부관리 등이 유행이다. 육각형 인재가 되기 위한 몸부림이다. /일러스트=김영석

공군 복무 중인 남성 사병 A(22)씨의 최대 관심사는 ‘미모 관리’다. 고른 치열을 위해 치아 교정을 하느라 아래윗니에 빼곡히 ‘철길’을 깔았다. 깨끗하고 매끈한 피부를 갖기 위해 레이저 시술도 주기적으로 받는다.

그는 한두 달에 한 번 휴가를 받으면 충남의 부대를 떠나 서울 집에 가기 전 병원 순례하는 코스를 짠다. 첫날은 군복 차림으로 치과부터 들러 X레이 찍고 교정기를 조인 뒤, 피부과에서 여드름 압출하고 모공 축소술 받는 식이다. 며칠간 치아 교정기의 새로운 조임에 적응하고 자극받은 피부도 진정시켜야 한다. 가족·친구와의 모임은 후순위다.

명문대 이공계 학과 재학 중 나라의 부름을 받은 A씨가 복무 2년을 외모에 투자하기로 한 건 먼저 입대한 선배와 친구들 조언 때문. 지인들은 “군 복무는 어차피 사회와 단절된 시간이고, 요즘은 거기에서 뭘 하든 눈치 안 준다”며 “학벌과 직업은 보장됐으니 외모 업그레이드하는 기회로 삼아라”고 했다.

군부대에 미용 열풍이 불고 있다. 18~21개월의 사병 복무 기간을 이용해 치아·시력 교정술이나 성형수술을 받고 새로운 얼굴로 사회에 복귀하려는 이들이 많아진 것이다.

눈과 코 등 '군인 2종 성형' 세트를 제시하고 군 할인을 내세운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 광고. /인터넷 캡처

외모·학력·자산·직업·집안·성격 등 6대 요소를 다 갖춘 ‘육각형 인재’를 향한 경쟁과 끝없는 자기 계발의 시대, 군대라고 무풍지대일 리 없다. 황금 같은 시간을 군대에서 ‘썩지 않으려’ 분투하는 이대남(20대 남성)의 처절한 미용법을 들여다봤다.

‘입대 전 치아 교정’이 국룰?

요즘 입대 앞둔 남성들의 최대 관심사는 치아 교정이라고 한다. 가지런한 치아와 환한 미소는 안정된 부(富)와 자기 관리의 상징. 그러나 청소년기엔 공부에 집중해야 하고 비용이 많이 들어 감행이 쉽지 않다. 대학 진학이나 사회 진출 직후에도 바쁜 일정 탓에 엄두 내기가 어렵다. 군 복무 중 교정도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됐다. “단체 훈련하면서 장치가 떨어지거나 염증 생기면 대응이 어렵다”며 말리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수년 전부터 군인과 군인 부모들, 치과 업계에서 “군 복무와 치아 교정 기간이 딱 맞아떨어진다”는 말이 돌며 ‘군인 교정’ 유행이 일었다.

치과들은 “20대 중반까지는 치아가 잘 움직여 2년 내 교정을 끝낼 수 있다” “치과에 자주 오지 않아도 되는 새로운 교정 기술이 나왔다”며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입대 반년 전쯤 교정기를 부착하고 초기 적응 기간을 거쳐 입대하면, 제대할 즈음 치열이 완성되는 시간표다.

군인 복무 기간에 특화한 맞춤 교정을 내건 서울 한 교정치과의 광고. /인터넷 캡처

군인들이 많이 타는 서울 지하철 1호선 라인에 개업한 치과의 박모씨는 ‘형으로서 권한다’는 광고를 내걸었다. 그는 “군대는 어차피 기다리는 곳이다. 훈련하느라, 샤워하느라 기다린다. 그 시간 버리지 말고 교정하라”며 “군대는 약속도 적고 루틴이 규칙적이어서 교정의 최적기다. 힘든 훈련도 없고 요즘 교정기도 튼튼하다”고 했다.

서울 강남의 유명 교정 치과들은 군인 전용 예약 전화까지 두고 있다. ‘최소한의 내원으로 맞춤 교정’, ‘휴가 일정을 고려한 관리’와 ‘무이자 분납 지원’을 내세운다.

전국의 군부대 주변 치과도 많이 생기고 있다. 전남 고향에서 교정기를 끼고 강원도 전방 육군 부대에 입대한 상병 B씨는 “새로 생긴 부대 앞 치과로 진료 기록을 들고 와 관리를 이어간다”고 했다.

두 아들을 군대 보낸 분당의 50대 주부 이모씨는 “애들이 병장·일병인데 둘 다 입대 전부터 교정을 시작했다”며 “휴가 때마다 치과에서 조이고 오면 아프다면서 죽만 먹다가 복귀한다. 장치 끊어졌다고 급히 외출 나오고 난리다”라고 전했다.

또 다른 부모는 “아들이 논산훈련소 입소를 불과 3주 앞두고 친구들처럼 교정하겠다고 고집을 부려 결국 허락했다”고 했다. 부대 앞에서 아들을 자가용에 태워 위수 지역 내 치과에 데려갔다가 다시 들여보내는 부모도 있다.

병사 월급 인상, 미용 시장 활짝

지난 여름 휴가를 나온 군 장병들이 서울역을 거쳐가는 모습. 병영 개선으로 사병 월급이 인상되고 훈련 강도도 약화됐다. 부대 내 일과 후 스마트폰 사용도 허용되고, 일부 부대에선 24시간 사용도 도입되고 있다./뉴스1

안과를 찾아 라식·라섹 등 시력 교정술 받는 군인도 많다. 미용 목적도 있고, 훈련 중 안경 파손이나 분실이 잦아서이기도 하다. 다만 시력 교정술 후엔 상당 기간 화생방 훈련이나 격렬한 운동을 피해야 해, 초기 훈련이 끝난 후 복무 중 수술받는 경우가 많다고.

코 높이거나 쌍꺼풀 만드는 성형 수술, 모발 이식술과 눈썹 문신 받는 군인도 흔하다. 이렇게 회복이 필요한 수술은 전역 직전 장기 휴가를 활용한다고 한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성형외과 관계자는 “요즘 환자의 40%는 남성이고, 그중 절반이 현역 군인”이라며 “통상 말년 휴가 첫날 수술을 예약한다. 부모나 여자 친구가 동행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올해 복학한 대학생 C씨는 제대 직전 14박 15일 마지막 휴가를 얻어 매부리코 교정하는 수술을 받고 부기가 어느 정도 빠진 뒤 원대 복귀했다고.

그는 “반창고가 붙어 있으니 사람들이 왜 그러냐고 물어 ‘축구공에 맞아 다쳤다’고 했다. 말년이라 훈련도 없고 건드리는 사람도 없어 회복하기 딱 좋았다”며 “복학하니 친구들이 ‘군대 다녀오더니 멋있어졌다’고 칭찬했다”고 했다.

모발 이식을 한 D씨도 “자외선에 노출되고 방탄모를 쓰다 보니 탈모가 심해져, 전역 3개월 전 휴가를 내 이식술을 받았다”며 “수술 이틀 만에 복귀했고, 말년은 회복 기간으로 잘 활용했다”고 했다.

국방부가 발행하는 병영 잡지. 주머니 사정에 여유가 생긴 사병들을 겨냥한 미용 교정과 수술 광고가 많아졌다. /인터넷 커뮤니티

군인의 미용 목적 교정이나 수술이 흔해진 건 병영 개선으로 부대 생활이 편해지고 급여가 인상된 덕이 크다. 현재 이병 월급이 75만원, 일병 90만원, 상병 120만원, 병장 150만원이다. ‘장병내일준비적금’을 들어 정부의 매칭 지원금까지 받으면 병장이 205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

최저임금 수준이지만 여유 있는 중산층 가정 자녀라면 미용 시술에 쓸 수 있는 가욋돈은 된다. 실제 성형외과와 피부과·치과들은 “부모님께 손 벌리지 말고 월급 받아 분납하라”고 군인들을 유혹한다.

요즘 부대 내 잡지엔 ‘군 복무 중 교정, 제대 후 아름다운 미소’ ‘남자는 눈·코가 멋있어야 하지 말입니다-군인 성형 2종 세트’ ‘휴가 나와 완전무장, 외모 전투력 MAX!’ 같은 문구와 군인 할인을 내세운 병·의원 광고가 넘쳐난다.

미용 코 성형에 대해 “코골이나 비중격만곡증 진단을 받으면 건강보험에 실손보험까지 적용돼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고 안내하기도 한다.

MZ 여성들 “남자 외모가 중요”

MZ 여성들이 남자를 볼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게 '외모'라는 설문 조사 결과. 반대로 남성이 여성을 볼 때는 '성격'을 가장 많이 본다고 한다. /그래픽=송윤혜 기자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건 젊은층 취업난 속 스펙 경쟁이 심화된데다, 연애와 결혼 시장에서 2030 여성이 남성의 외모를 중시하는 경향이 커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 MZ 세대 대상 연애·결혼관 조사에선 통념을 뒤집는 결과가 나왔다. ‘이상적인 이성의 조건’으로 여성의 70.6%가 남성의 ‘외적 호감도(외모·말투·분위기)’를 꼽아 1위를 한 것. ‘성격’과 ‘경제력’은 그다음이었다. 반면 남성이 여성의 1위 조건으로 꼽은 건 ‘이해심 많은 성격’(73.1%)이었다.

중소기업 직원인 30세 남성 E씨는 “TV 연애 프로 보면 남자 출연자가 고학력·전문직이어도 외모가 평균 이하면 여성의 선택을 못 받더라. 반면 아이돌처럼 잘생긴 고교 동창이 연상의 여성 변호사를 만나 ‘상향혼’하는 것도 봤다”며 “‘남자는 능력만 있으면 된다’는 건 쌍팔년도 이야기”라고 했다.

군은 저출산과 병역 자원 감소에 대응, 징집 병사들의 자격증 취득이나 대학 편입·어학 공부, 운동 등 각종 자기 계발을 지원하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외모 관리도 폭넓게 용인하는 추세다. 미용 수술을 원하면 군의관에게서 관련 질환으로 진단서를 발급받거나 수술과 사후 관리를 위해 외출·휴가 받기도 수월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인들의 운동 시간. 군은 사병들의 건강 관리와 학업 등 자기계발을 적극 지원하는 추세다. /국방일보

주부 장모씨는 “아들이 지내는 생활관에선 밤에 선임·후임이 나란히 누워 마스크 팩 붙이고 TV 본다더라. 서로 클렌저나 보습제도 추천하고 다들 선크림을 챙겨 바른다고 한다”며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고 했다.

장씨 남편은 “다이어트를 위해 밥 안 먹고 단백질 보충제 먹는 군인도 있다더라”며 “옛날엔 결식자들은 군기 빠졌다고 영창도 갔는데 격세지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