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평소 인터넷을 얼마나 사용하고 있습니까.
①매일 ②일주일에 한 번 이상 ③한 달에 한 번 이상 ④두세 달에 한 번 이상 ⑤사용하지 않음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루에 몇 시간’이 아닌 월 단위, 주 단위 사용 빈도를 묻는다고?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대한민국은 그게 궁금했다. ‘국가 통계의 꽃’으로 불리는 2000년 인구주택총조사(센서스)에서 물었던 질문이다. IT 붐이 활활 일어났던 때였다. 당연히 이런 질문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5년마다 돌아오는 2025년 인구주택총조사가 오는 18일까지 진행 중이다. 1925년 조선총독부가 ‘간이 국세조사’라는 이름으로 첫 인구 조사를 실시했다. 수탈 목적이었지만 최초의 근대적 인구 총조사로 평가된다. 이때부터 따지면 올해로 100주년을 맞는다. 인구조사에는 대한민국 100년의 생활상이 그대로 녹아 있다.
양동이 집어던지는 사람도 있지만
4일 경기도 일산시 덕양구의 한 아파트. 눈에 띄는 하늘색 ‘인구주택총조사’ 표시가 달린 연회색 크로스백을 메고 태블릿PC를 든 전현주(59) 조사원이 한 세대 현관에 ‘방문 안내’ 표시를 붙이고 있었다. ‘찾아왔지만 만나지 못했으니 어느 날 다시 오겠다’는 안내문이다. 전씨는 “응답률을 높이기 위해 서너 차례 찾는 경우도 많다”며 “집에서 쉬는 사람이 많은 일요일 저녁은 우리에게는 ‘대목’이기 때문에 가장 바쁘게 돌기도 한다”고 말했다. 전씨는 올해로 4회 차, 20년째 인구주택총조사 조사 요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베테랑이다. 동생인 은영(57)씨가 먼저 2000년 조사 때 조사 요원이 됐고, 2005년 조사부터는 자매가 함께 참여해왔다. 은영씨는 덕양구 조사 요원 204명을 관리하는 총괄관리자다. 전국의 조사 요원은 총 3만명 정도다.
코로나 시기였던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의 최종 응답률은 96.3%였다. 인터넷·전화 조사부터 시작해 미응답 세대를 직접 찾아가는 방문 조사까지 합한 수치다. 2005년 조사 때 99% 응답률을 보인데 비하면 조금씩 떨어지는 추세. 전은영 관리자는 “덕양구는 범위가 넓고 도농 복합지라 품이 많이 든다”며 “적극적으로 응해주는 분도 많지만 문전박대를 당하는 경우도 꽤 있다”고 말했다.
‘하드 케이스’를 만나면 베테랑 현주씨가 출동한다. “양동이·박스 같은 걸 집어던지며 역정을 내거나, 전화로 욕을 하는 분도 있었어요. 한 시간이고 다 들어드리면 마음이 풀어지시더라고요. 속옷 바람으로 나오는 분, 화장실에 앉아 답하는 분도 있었는데 오히려 원칙적으로 대하니 협조해주시고요.”
사생활에 대한 민감도는 커지고, 코로나 이후 대면 접촉이 줄어들면서 조사 난도는 올라가는 실정이다. 전씨는 “회사에서 직위는 뭔지, 사업체 매출은 어느 정도인지, 이혼했는지, 죽은 자녀가 있는지 같은 항목은 묻는 사람도, 답하는 사람도 불편하다”며 “조사 특성상 내밀한 사안까지 물어야 하니 쉽지 않다”고 했다.
도심 지역의 큰 평수 아파트는 분위기가 냉랭하고 농촌의 비닐하우스를 찾아다니며 만나는 어르신은 환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조사를 마치면 “말벗 해줘 고맙다”며 고구마·배추·토란 같은 것을 나눠주거나 밥상을 차려주는 경우도 있다고. 전은영 관리자는 “이 조사가 기반이 돼서 어르신 보조기 지원이 늘 수도 있고, 자녀 돌봄 지원이 확대될 수 있고, 출퇴근 교통편이 늘 수 있다는 가구별 맞춤형 설명을 꼭 덧붙인다”며 “나라 정책의 기초가 된다니 사명감을 갖고 응하는 분도 많다”고 말했다.
‘호구조사’로 들여다본 1900년대
누군가 꼬치꼬치 신상을 캐물을 때 흔히 “호구조사 하느냐”고 핀잔을 한다. 일제시대 센서스의 명칭이 호구조사였다. 오명인 셈이지만 인구주택총조사는 단순히 이름과 성별, 나이와 가족관계 등을 파악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조사를 통해 모은 정보는 국가 주요 정책 마련의 기반이 되고, 200종이 넘는 통계의 모집단으로 활용된다. 그만큼 정밀하고 소상히 생활상을 따져 묻는 것이 기본이다.
1940~1950년대에는 전쟁과 침략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는 조사 항목이 포함됐다. 일제강점기 말 징용 경험을 물었고(1949년), 한국 전쟁 이후 불구 상태(손발 절단 여부·실명 등)를 점검하는 질문(1955년)이 등장했다. 당시 남녀 17만5177명(인구의 0.8%)이 신체 불구자로 집계됐다. 조사 항목에 ‘글을 읽고 쓸 수 있습니까’라는 내용도 1930년부터 꾸준히 등장했다. 1930년 인구의 77.8%가 문맹이었다. 그러다 문맹 인구가 빠르게 줄면서 1970년 조사를 마지막으로 문맹 여부를 묻는 항목은 사라졌다.
1960년에는 주택 부문이 처음 조사표에 들어가면서 현재 인구주택총조사의 기틀을 갖췄다. 당시 조사에는 대청마루와 아궁이·외양간·광 등의 보유 현황, 굴뚝 형태를 묻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변소 형태가 시멘트인지, 수세식인지, 없는지 등도 물었다.
대한민국 역사의 주요 인구정책이었던 산아제한 정책도 이 조사가 근간이 됐다. 전쟁 이후 1차 베이비붐 세대가 태어나면서 출산율 급증이 사회문제로 부상하던 때다. 이전까진 5년 새 6%가량 늘던 인구수는 1955~1960년 16% 넘게 늘었다. 1962년 공표된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는 ‘가족계획(산아제한)’ 정책을 포함했는데 여기에 ‘인구총조사 자료를 활용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된 1970년대에는 가구의 경제력과 부(富)를 따져보기 시작했다. 중산층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뜻. 1970년 가정집(557만6000가구)에서 가장 많이 갖고 있는 가전·전자기기는 라디오(404만3000가구)와 재봉틀(244만6000가구)이었다. 냉장고(12만7000가구)가 있는 집은 드물었다.
2000년대의 화두는 저출생. 약 40년 만에 국가 인구 정책 방향이 정반대로 바뀐 것이다. 2005년 조사에서 15세 이상 기혼 여성 중 93%가 ‘추가 자녀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1975년 4.2%였던 1인 가구 비율은 2020년 세 집 중 한 집꼴(31.7%)로 크게 늘었다.
올해 조사 뭐가 바뀌었나
인구주택총조사는 이처럼 변화하는 생활상을 반영해 계속 수정한다. 100년 전 첫 조사에선 이름·성·연령·결혼여부·국적 등 5개를 물었지만 올해 조사 항목은 55개다. 국가데이터처 인구총조사과 김진혁 사무관은 “우리나라는 행정 자료가 상당히 잘 갖춰져 있지만 이 조사를 통해 주관적인 의식에 관한 사안도 물어야 한다”며 “올해는 ‘결혼 계획이 있는지’를 묻는데 이런 데이터는 어디에도 자료가 없다”고 했다.
이번 조사에는 9세 이상 국민에게 묻는 ‘가족돌봄시간’이 새로 추가됐다. 어린 나이에 가족을 돌보는 이른바 ‘영케어러’를 포함해 돌봄 노동 탓에 소외된 사람은 없는지, 돌봄노동이 가정에 얼마나 부담을 지우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다. 다문화 가구와 외국인이 늘면서 가구 내 사용 언어, 한국어 말하기 실력 등의 항목도 포함됐다.
비혼 동거와 결혼 계획에 대해서도 묻는다. 비혼 동거는 장차 결혼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고, 결혼 계획에 대한 정보는 저출생 정책을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된다. 결혼·동거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와 다양한 가구 형태를 살필 수도 있다. 국가데이터처 서경숙 대변인은 “이 데이터를 잘 활용하면 출산지원금이 어떤 계층에게 가장 필요한지 등을 파악해 보다 정확성 높은 정책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민감한 사생활이라고 지적돼 온 ‘출산 자녀 수’와 ‘자녀 출산 시기’는 직접 묻지 않고 행정 자료로 파악한다. 초혼 기준의 ‘혼인 연월’과 ‘출산 자녀 수’ 중 ‘사망 자녀 수’는 조사에서 빼기로 했다.
5년 전 조사에서는 처음으로 반려동물(개·고양이·기타·없음)을 키우는지 여부에 대한 문항이 들어갔고, 1인 가구 사유와 혼자 산 기간도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무응답 제로’가 목표
최근 여러 커뮤니티에는 “인구주택총조사라며 사람이 찾아왔는데 꼭 해야 하나요?” 같은 질문들이 올라온다. 인구주택총조사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전수조사와 전국 가구의 20%를 뽑아 진행하는 표본조사로 나눠 진행된다. 전수조사는 이미 등록된 행정 자료를 활용해 통계를 내는 방식. 표본조사는 국민 1000만명 정도만 응답 대상인 셈이다. 뽑힌 사람이 끝까지 불응하더라도 표본 대상을 추가로 뽑지 않는다. 반대로 참여하고 싶다고 해도 들어갈 방법은 없다. 조사원 방문이 불편하다면 인터넷 조사, 전화 조사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