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의 산들바람! 텐트 치는 게 이렇게 무서울 일? 텐트를 날려 보내지 않고 잘~지었다.”(2024년11월13일/ 운행 6일 차)
아침부터 바람이 사납다. 초속 8m의 바람이 불고 있다. 순간 풍속은 더 거칠다. 바람이 한 번 시작되면 도무지 호흡을 멈출 줄 모른다. 2022년 남극점 원정 때도 이 부근을 지나며 블리자드(풍속 초속 12~14m 이상의 바람)에 고생이 많았다. 위도 80~81도 사이의 오르막 지형에서 바람이 더 강하게 쏟아져 내려오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쩔 수가 없다. 바람이 멈추길 기다리기보다 뚫고 가야만 한다.
아침부터 텐트를 후려쳐대는 바람 소리에 텐트가 찢어지기라도 할까 봐 조마조마하다. 이렇게 바람이 시작되면 최소 3일은 몰아치는데 내일은 더 강한 바람이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다. 이 바람 소리를 듣고 있자면 텐트 문을 여는 것조차 두렵다. 숨 호흡을 가다듬고 용기가 필요하다. 텐트 문의 지퍼를 조금 걷어 올리자 눈보라가 텐트 안까지 휘몰아쳐 신발과 허벅지 위로 떨어진다. 밖은 온통 흰색이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어디서 해가 뜨고 있는지 분간이 어렵다. 화이트아웃(눈보라 등으로 주변이 온통 하얗게 보이는 현상)과 블리자드는 보통 동시에 온다. 머피의 법칙에 따라 안 좋은 일이 연타로 일어나는 것처럼!
‘아!! 오늘은 가장 최고로 남극다운 날씨구나. 바람이 불어야 남극이지. 추워야 남극이지!’
고도가 높아지면서 바람까지 기세를 보태고 기온이 점점 낮아진다. 고도가 100m 오를 때마다 0.6도씩 낮아진다. 출발하던 허큘리스 인렛의 고도가 160m였는데 6일 만에 약 800m 고도까지 올랐으니 같은 날씨에 고도의 상승만으로 4도 가까이 낮아진다는 의미다.
2835m의 남극점에서 해안으로 쏟아져 내려오는 바람골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나아가고 있다. 한 시 방향에서 불어오는 맞바람을 뚫고 나아가려니 몸이 휘청거린다. 그나마 ‘키가 작아 바람의 저항에 덜 휘청거리니 얼마나 다행이야!’라는 유머를 챙기며 나를 다독여 본다.
하루 10~12시간 동안 초속 8m의 바람을 온몸으로 밀어내며 나아간다. 2023년 때 경험이 있어 이번엔 옷을 더 특별하게 개발해왔다. 지원을 받고 있는 소속사 노스페이스의 기술 개발 지원팀과 용품팀·디자인팀의 협력으로 장갑 개발부터 안면 마스크, 바지와 재킷까지 2023년의 현장 경험으로 부족하다고 여겼던 부분들을 모두 업그레이드했다. 방풍 바지 안감으로 새롭게 선택한 보온 소재가 탁월해 1000m 고도 아래는 방풍 바지 위로 패딩 치마를 입지 않아도 될 정도다. 남극의 블리자드는 정면에서 한 방향으로 불어와 ‘극지방 동상’이라고 하는 허벅지 동상에 걸려 살이 괴사할 수 있다. 허벅지에 지방이 많아 추위에 노출됐을 경우 야외에서는 동상에 걸렸는지 느낄 수 없지만 실내에 들어갔을 때 가려움증을 느끼는 한랭 두드러기처럼 서서히 뒤늦게 동상을 알아차리게 된다. 특히나 여성은 남성보다 허벅지에 지방이 많아 동상이 더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극지방 동상과 더불어 얼굴과 손발의 동상이 가장 무서웠다. 운행 6일 차에 10시간의 운행으로 17㎞를 걸었다. 바람으로 더 길게, 멀리 걷지 못했다. 운행 후 1㎜ 두께의 아주 얇은 천막 안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바람에 텐트가 날아가지 않을까, 장갑에 미끄러져 손에서 빠져나가지는 않을까 정신을 바짝 차리고 텐트를 세웠다. 폭풍설 속에 세상에서 가장 안온한 성을 지었다.
7일 만에 81도를 넘어설 계획을 해 왔지만 현재 속도로는 어렵다. 81도까지 약 30㎞가 남았다. 3일 차부터 말썽이던 스킨(스키 바닥에 탈부착하는 미끄럼 방지용 테이프)의 문제도 여전히 해결되지 못했다. 스키를 썰매에 싣고 걷다 보니 계획한 속도를 따라잡기 어렵다.
※한국인 최초로 남극 대륙을 단독 횡단한 산악인 김영미의 ‘남극, 끝까지 한 걸음’을 격주로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