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유현호

얼마 전 시장에서 제철 맞은 국내산 생물 고등어를 샀습니다. 집에서 고기 굽는 일을 번다하게 여기는 저로서는 나름 큰 결심을 한 것입니다. 기억 어딘가에 남아 있는 습성 탓인지 두 마리를 샀습니다. 오랫동안 우리는 고등어를 ‘손’이라는 말로 셌으니까요. 아시다시피 고등어는 한 손에 두 마리입니다. 왜 두 마리 단위로 셈했는지 정확한 유래는 전해지지 않습니다만, 과거 고등어가 소비되던 방식을 떠올려 보면 추측할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냉장이나 냉동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시절 고등어는 주로 염장 상태로 유통됐습니다. 자반고등어 혹은 간고등어라는 이름으로. 절인 고등어라도 바닥에 쌓아두면 살이 쉽게 무르니 짚이나 끈으로 엮어 걸어둡니다. 아무래도 한 마리보다는 두 마리를 어슷하게 포갤 때 옭아매기 쉬웠을 것입니다. 고등어를 손으로 센다면 조기나 청어는 ‘두름’입니다. 보통 열 마리씩 두 줄로 엮습니다. 북어는 한데 꿰어 ‘쾌’라 불렀습니다. 물론 지금은 모두 흔히 쓰이지 않는 말이 됐습니다. 당연한 이치이지만 어떤 말은 특정한 시대, 그때를 살아낸 사람들과 저물어갑니다.

저녁의 어둠과 함께 고등어 굽는 냄새가 퍼졌습니다. 노릇노릇한 고등어를 한입 베어 물었을 때 사실 조금 실망했습니다. 부드럽고 기름진 풍미가 느껴지지 않았던 탓입니다. 식당에서 먹는 맛과도 차이가 있었습니다. 현재 우리가 흔히 접하는 고등어는 저 멀리 노르웨이 북대서양 바다에서 온 것입니다. 노르웨이산은 국내 수입되는 고등어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찬 바다에서 자란 덕에 지방 함량이 많아 조림보다는 구이에 잘 어울린다고 합니다. 지난여름 제주 여행에서도, 얼마 전 안동 출장에서도 저는 높은 확률로 노르웨이산 고등어를 먹었을 것입니다.

얼마간 더 먹다 보니 단단하고 담백한 맛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물리지 않고 실컷 먹을 수 있었습니다. 고등어는 원래 이런 맛이었지, 오래된 기억을 더듬어보기도 했습니다. 막 성인이 됐을 무렵 한 선배가 갈비를 사준다고 하기에 신나게 따라갔다가 고갈비를 파는 집에 들어가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던 장면도 함께 떠올랐습니다.

앞으로 세상은 분명 더 빠르게 변할 것입니다. 한 시대라 엮어 부를 수 없을 만큼 세분화될 것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도 파편화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변하지 않는 것과 나눌 수 없는 것을 생각합니다. 세상이 어떤 모습으로 변하든 앞으로도 우리는 저마다 고된 하루를 마치고 사랑하는 이들과 둘러앉아 밥을 먹으려 할 것입니다. 가시 발라낸 고등어 한 점을 집어 상대의 흰밥 위에 먼저 올려줄 것입니다. 어쩌면 숱한 변함 속에서 밝은 빛을 내는 것은 가장 빨리 변하는 일이 아닌 변함없는 일이라는 믿음을 가져봅니다.

“어디로든 갈 수 있는 튼튼한 지느러미로 나를 원하는 곳으로 헤엄치네… 몇 만 원이 넘는다는 서울의 꽃등심보다 맛도 없고 비린지는 몰라도 그래도 나는 안다네. 그동안 내가 지켜온 수많은 가족들의 저녁 밥상. 나를 고를 때면 내 눈을 바라봐 줘요. 난 눈을 감는 법도 몰라요. 가난한 그대 날 골라줘서 고마워요. 수고했어요 오늘 이 하루도.”(루시드폴 노래 ‘고등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