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서울시교육청이 주최한 ‘고 1, 2 진로·진학 설명회’에서 학부모들이 설명을 듣고 있다. /뉴스1

경기도 과천에 사는 40대 학부모 서모씨는 매일 초·중등 수학 문제집을 푼다. 정규 교육과정을 앞서가는 선행과 심화 학습으로 유명한 수학 학원에 다니는 초등 4학년 아들의 학원 숙제를 도와주기 위해서다. 그는 교재를 추가로 구입하거나 아이 것을 복사해 제본한 뒤, 집에서 각자 풀어보고 아이와 대화를 나눈다고.

서씨는 “요즘 초등 수학은 우리 때보다 수준이 훨씬 높다. 30년 전 배운 중·고등 개념을 소환해야 할 정도”라며 “직접 가르친다기보다는 ‘학습 페이스메이커’로 쭉 같이 공부할 생각인데, 이러다 내가 대학을 다시 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며 웃었다.

자녀와 같이 공부하는 부모가 늘고 있다. 자녀의 학업·입시 일정에 맞춰 똑같은 내용을 공부하고 시험도 함께 본다. 과거 사교육 시장이 한창 팽창하던 시기 ‘할아버지 재력, 엄마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 입시 성공의 공식이란 말이 있었다.

그러나 저출산으로 사교육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고 자녀 교육이 핵가족 단위의 최대 과업이 되면서, 아이의 학습과 정서를 밀착 관리하기 위해 부모가 직접 공부에 뛰어드는 시대가 왔다. 소위 ‘엄마·아빠의 공부력’이 중요해진 것이다.

최근 서울 송파구 아시아공원을 찾은 한 가족이 동화책을 함께 읽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목동의 회사원 박모씨는 중학교 2학년인 아들이 지난 1학기 중간고사를 망치자 거실에 의자를 나란히 놓고 함께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 계획을 같이 짜고, 문제집도 똑같이 풀고, 기말고사 기간엔 맥주도 포기했다. 아들은 놀다가도 아빠가 조용히 공부하고 있으면 옆에 와서 책을 편다고. 박씨는 책상 앞에 “말을 물가에 끌고 갈 순 있지만 물은 말 스스로 마셔야 한다”고 써 붙였는데, 사실상 말 주인이 물 먹는 시범을 보이는 셈이다.

요즘 학부모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엔 ‘△△중 내신 기출 중 이 문제 풀어보신 분 설명 부탁드려요’라거나 ‘직장에서 틈틈이 수능 인강을 듣는다’ ‘모의고사를 시간 맞춰 똑같이 봤는데 내가 영어·사회만 아이보다 잘 봤다’ 같은 경험담이 줄줄이 올라온다.

학군지의 도서관이나 카페에선 중년의 부모가 혼자 중·고교 문제집 펴놓고 풀거나, 자녀와 친구처럼 문제 풀이를 세세히 의논하는 모습도 흔하다. 모델 출신 방송인 홍진경씨는 딸의 수학 공부를 돕기 위해 일차함수부터 다시 배우는 유튜브 채널(‘공부왕찐천재’)을 열고 유력 정치인과 일타 강사들을 섭외해 화제를 낳았다.

딸과 함께 공부하기 위해 초등학교와 중학교 수학과 영어부터 다시 공부하는 모습을 공개해 화제를 일으킨 방송인 홍진경. /공부왕찐천재 캡처

두 자녀를 명문대에 보낸 세종시의 50대 학부모 황모씨는 주변에 ‘함께 공부 전도사’로 통한다. 아이 옆에서 영어 원서 필사를 하거나 논술 필독서를 미리 읽어두고, 외국어고 일본어과에 진학한 딸의 ‘고통’에 동참하려 일어도 배웠다고.

황씨는 “자녀를 학원에만 맡기거나 공부하라고 몰아붙이기보단, 같이 공부해 보니 자녀의 강점과 약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마음도 이해하게 됐다. 요즘 아이들은 이렇게 어려운 공부를 하는구나 싶어 존경심까지 들더라”고 했다.

부모의 참여 열기는 학원들이 두 손 들 정도다. 국책 연구소 박사인 53세 조모씨는 딸이 서울 대치동 학원에서 ‘기하 특강’을 들을 때, 학생들은 강의 듣는 데 집중하고 따라 들어온 부모들이 방대한 양의 필기를 대신 해주는 진풍경을 목격했다고. 그는 “나도 나지만 대기업 임원, 고등학교 교사, 의사, 주부 등 다양한 배경의 부모들이 각도기와 컴퍼스를 들고 도형 그리는 모습에 너무 놀랐다”고 말했다.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열흘 앞둔 지난 3일 유명한 입시 기도처인 경북 팔공산 갓바위 풍경./연합뉴스

함께 공부의 절정은 함께 시험 보기. 한자능력시험,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등에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응시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한국사 시험에서 ‘최연소 1급’을 딴 충북 제천의 초등 2학년 김모군은 “엄마가 먼저 공부해 1급을 따셔서 자극을 받았다”고 했다.

서울 역삼동에서 초등생 둘을 키우는 아빠 김모씨는 11월마다 대입 수능 문제가 공개되면 직접 시간 맞춰 풀어보며 수능 트렌드를 몸소 체험하고 자녀에게 그 긴장감을 전달한다고.

지난해 수능에선 자연계열 학생들이 유리한 사회탐구를 대거 선택하는 일명 ‘사탐런’ 탓에 과학탐구 응시생이 줄자, 일부 부모가 자녀의 과탐 표준점수를 높여주겠다며 화학·물리 등에 응시해 일부러 ‘0점’을 맞아 논란이 됐다. 오는 13일 치러지는 2026학년도 수능에도 부모들이 암암리에 과탐 시험 등을 치르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