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다가스카르의 바오밥나무.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 등장해 사람들에게 더 잘 알려졌다. 소설 속에서 어린 왕자는 “이곳 사람들은 상상력이 없어. 들은 걸 반복하기만 해”라고 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상상하기’를 멈추게 된다. /위키피디아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작가 이상(李箱)의 소설 ‘날개’ 첫 문장이다.

“철새 떼가 이동하는 철이 되어 야생 오리들이 날아갈 때면, 오리들이 굽어보는 지역 위로 이상한 물결이 인다. 집오리들이 커다랗게 삼각형을 만들어 비행하는 무리에 이끌린 듯 서투른 날갯짓을 시작하는 것이다. 야성의 부름이 집오리들이 마음속에서 알지 못할 야성의 흔적을 일깨우는 모양이다. 일순간 농가의 오리들은 철새로 변한다. 늪과 벌레와 오리집같이 보잘것없는 영상만이 빙글빙글 돌던 그 작고 딱딱한 머릿속에서 이제는 광활한 대륙과 바닷바람의 맛, 해양의 지리학이 펼쳐지는 것이다. 오리는 제 머리가 그토록 경이로운 것들을 담을 수 있을 만큼 크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날개를 퍼덕이고 낟알과 벌레를 깔보며 야생 오리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어린 왕자’의 작가 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를 쓰기 4년 전에 쓴 ‘인간의 대지’에 나오는 문장이다.

프랑스 리옹의 벨쿠르 광장에 서 있는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와 어린 왕자의 동상. 생텍쥐페리는 2차 세계대전에 군용기 조종사로 참전했다. /조선일보DB

난 ‘천재’로 태어났지만 ‘박제’가 되어버려 진짜 내 능력을 못 쓰고 있었다. 난 ‘야생 오리’로 태어났지만 안락한 삶에 길들여져 ‘집오리’가 되어버렸다. 난 50년 동안 외화를 1달러도 벌지 못했다. 아니, 외화를 벌 수 있는 능력이 내 안에 있다는 것 자체를 몰랐고 그런 시장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 난 대학을 졸업했고 책도 몇 권인지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읽었으니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만이었다. 소크라테스는 “나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라고 말했다. 나는 ‘내가 안다는 사실을 안다’고 생각했다. 너무나 큰 오만이었다.

오만(傲慢)의 만(慢)에는 ‘게으르다’는 뜻이 있다. 내가 세상을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게을러지기 시작했다. 내가 보는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했고 그 세상 안에서 잘 살아보려고 했던 것이다. 마치 집오리들이 주인이 주는 사료를 먹으며 울타리 안에서 안락하게 산다고 착각하는 것처럼.

다행스럽게 게으르지만 꾸준히 책을 읽고 있었고 독서를 하다 깨달았다. 내가 외화를 벌 수 있다는 것을. 나도 야생 오리였다는 것을. 울타리를 넘어 해외 시장으로 훨훨 날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전에 내가 출간했던 책은 ‘책 읽고 매출의 신이 되다’ ‘이 책은 돈 버는 법에 관한 이야기’ 같은 책이었다. 그런데 이런 매출, 돈과 관련된 책은 해외에서 잘 팔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방법을 찾아보자. 내 책이 해외로 수출되려면 어떻게 하면 되겠는가? 질문을 던지고 방법을 찾았다. 그렇게 해서 쓴 책이 ‘나는 어떻게 삶의 해답을 찾는가’이다.

이상의 ‘날개’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장소인 미쓰코시 백화점. 소설 주인공은 백화점 옥상에서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를 외친다. 미쓰코시 백화점 경성점은 지금의 신세계백화점 본점이 있는 자리다. /위키피디아

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은 출간 후 1년 만에 4국(일본·러시아·대만·베트남)에 수출됐다. 50년을 집오리로 살았다는 것을 깨닫고 야생 오리가 되기 위해 책을 읽고 노력한 결과 처음으로 외화를 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외화를 벌기 위해 유튜브에 도전해서 4년이 지난 지금, 매달 1000달러 정도의 외화를 벌고 있다.

도전하기 전에 먼저 ‘그런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 자신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똑똑하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내가 세상을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세상의 울타리에 갇히는 것이다. 배움은 동그라미로 표현할 수 있다. 우리가 배우면 ‘앎’이 커진다. 동그라미가 커지는 것이다. 그런데 ‘앎’은 동그라미의 내부이고 ‘모름’은 동그라미의 테두리인 것이다. 결국 ‘앎’이 커지면 동시에 ‘모름’도 커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하게 내가 모른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다른 ‘앎’이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놓아야 한다. 그래야 다른 세상을 볼 수 있다.

난 책과 유튜브로 외화를 벌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 지금은 메밀국수 밀키트를 만들어 해외 시장에 도전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야생 오리는 한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날아간다. 나도 50년을 주인이 주는 사료에 적응해 한 곳에만 머무르고 있었다. 다행히 50년 만에 내 안에 박제로 굳어 있었던 천재를 깨워 세상 밖으로 날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내 안의 천재를, 야생 오리를 깨웠는가? 바로 독서다. 니체를 ‘망치를 든 철학자’라고 한다. 집오리로 나를 가두는 울타리를 ‘망치’로 깨뜨려 훨훨 날아가게 해준다는 뜻이다. 배움은 동그라미라고 했다. 책을 읽을수록 내가 아는 세상의 동그라미가 커진다. 그 동그라미는 결국 나를 가두는 울타리를 뚫고 더 큰 세상을 보게 한다. 독서를 통해 언어를 알수록 내 세상이 커지는 것이다. 독서를 통해 50년 만에 외화를 벌 수 있다는 언어를 알게 된 것이다.

화가 구본웅이 1935년 발표한 ‘친구의 초상’. 친구인 이상을 그린 작품이다. /국립현대미술관

니체는 인간의 발전 과정을 낙타-사자-어린아이 단계로 표현한다. 낙타는 내 등에 싣는 짐이 뭔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그 짐을 위해 무릎까지 꿇는다. 시키는 대로 사는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의 모습이다. 사자는 이런 짐을 내 등에 싣지 말라며 포효한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 스스로 먹을 것을 찾으러 달려나간다. 드디어 박제에서 깨어난 천재의 모습이다. 어린아이는 사자처럼 달려나가 잡은 먹이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눠 먹는다. 천재는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함께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다.

“‘이 별은 진짜 이상해!’ 어린 왕자는 생각했다. ‘바싹 마른 데다 날카롭고 각박해. 이곳 사람들은 상상력이 없어. 들은 걸 반복하기만 해. 우리 별에는 꽃이 있었지. 꽃은 언제나 먼저 말을 걸어주었는데….’”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의 한 부분이다.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상상하기’를 멈춘다. 상상하지 않으면 들은 걸 반복해서 말할 수밖에 없다. 들은 대로 상상할 수밖에 없다. 낙타처럼. 어린아이는 그렇지 않다. 항상 질문한다.

“이건 왜 이런 거예요? 저건 왜 저런 거예요?”

어린아이는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안다. 모든 것이 신기하다. 호기심 덩어리다. 끊임없이 질문한다. 니체가 어린아이 단계로 가라고 하는 이유다. 그리고 먼저 말을 걸어준다.

“너 이거 먹을래?” “나랑 같이 놀래?”

난 어른이 되면서 낙타처럼 시키는 대로 살았다. 그러다 교통사고를 겪고 죽음 앞에서 내가 낙타처럼 끌려다니며 살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 뒤로 기적적으로 살아나 책을 읽기 시작했고 사자가 돼 세상이 쳐놓은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었다. 이제 함께하는 삶을 살기 위해, 어린아이가 되기 위해 책을 읽는다. 여전히 부족하다. 어린아이가 됐나 싶다가도 내 안에 있는 어른들이 불쑥 튀어나온다. 어른은 세상을 스스로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가 안다고 생각하면 문제가 되는 게 자꾸 세상을 심판하려 드는 것이다. 내가 아는 그 기준으로 남을 심판하고 세상에 대한 불평을 쏟아놓는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안중근 의사의 말이다.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것은 세상을 향해, 타인을 향해 가시 돋친 말을 쏟아낸다는 것이다. 생각의 울타리가 작을수록 세상을 보는 눈도 작아진다. 작은 생각으로 보는 세상에는 불평과 불만만 가득하다. 어린아이들은 웃는다. 낙엽만 뒹굴어도 꺄르르 웃는다. 어른들은 낙엽이 발에 차이고 지저분하다고 불평이다. 불평하기 시작하면 세상은 불만 덩어리다. 하지만 어린아이처럼 감탄하면 세상은 온통 감동이다. 울타리에 갇힌 집오리는 “왜 빨리 사료를 안 주지? 왜 이렇게 적게 주지?”라며 불평을 쏟아낸다. 하지만 야생 오리는 대양을 가로지르며 아름다운 광경에 감탄을 쏟아낸다.

나는 불현듯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이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였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어디 한번 이렇게 외쳐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이상의 ‘날개’ 마지막 부분이다. 이 가을, 독서를 통해 나를 가두고 있는 울타리를 깨고 하늘 높이 날아올라 보자.

어린 왕자

프랑스 작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가 1943년 출간한 동화. 사막에 불시착한 비행기 조종사와 별에서 온 소년 ‘어린 왕자’의 만남을 그린다. 뛰어난 관찰력과 아름다운 서정, 독창적인 삽화로 ‘어른을 위한 동화’로도 불린다. 사랑과 삶의 본질을 깊이 성찰하게 하는 작품이다.

인간의 대지

생텍쥐페리가 1939년 발표한 자전적 소설. 비행기 조종사이기도 했던 그가 비행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의 본질을 탐구했다. 생텍쥐페리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공군 조종사로 전쟁 막바지인 1944년 7월 프랑스 남부 지중해 상공에서 정찰 비행을 수행하다가 실종됐다.

날개

이상이 1936년 9월 잡지 ‘조광’ 11호에 발표한 작품. 일제강점기 지식인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채 내면의 혼란과 무력감 속에서 자아를 탐색하는 내용으로 의식의 흐름 기법과 독백체 문체를 통해 주인공의 분열된 심리를 섬세하게 그렸다. 1930년대 대표적인 모더니즘 소설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