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최악의 폭군 목록에서 빠지지 않는 독재자는 마오쩌둥과 스탈린이다. 현대 중국과 소련을 세운 위대한 혁명가로 떠받드는 좌파 해석도 있지만 공포 정치로 수천만 인민을 죽게 만든 흑(黑)역사로 기억되기도 한다.
마오쩌둥과 스탈린은 독재자이자 애서가로서 야누스의 얼굴을 가졌다. 두 사람 모두 이념서뿐 아니라 문학·역사·철학을 섭렵한 독서가였다. 10만권 이상을 소장한 베이징 중난하이 관저에서 마오는 특대형 침대에 책을 쌓아 놓고 틈나는 대로 읽었다. 권력투쟁으로 평생을 보낸 직업 혁명가가 끊임없이 책을 읽은 것이다. 그의 시나 ‘모순론’ 같은 철학서가 일정한 수준에 이른 건 이런 이력 덕분이다.
스탈린 역시 마오쩌둥 못지않은 애서가였다. 그는 평생 3만권 가까운 책을 모았는데 하루에 500쪽을 읽을 수 있었다. 독서 범위도 넓어 마르크스·레닌 저작뿐 아니라 문학예술 전반에 밝았다. 유전학이나 언어학 논쟁에도 개입했고 희곡과 영화 대본까지 읽은 지식인이 스탈린이었다.
서로를 경계한 마오쩌둥과 스탈린에겐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다. 가장 좋아한 책이 마르크스주의 이념 서적이 아니라 역사책이라는 사실이다. 마오가 평생 옆에 두고 가까이한 책은 ‘24사(史)’다. 반만년 중국 역사를 집대성해 청 건륭제 때 펴낸 총 3213권짜리 역사책이다. 마오쩌둥은 ‘미래를 알기 위해 역사를 읽는다’고 강조하면서 이 책들을 반복해 읽었다.
스탈린도 비(非)마르크스주의 역사가인 로베르트 비페르(R. Wipper)의 책을 애독했다. ‘역사의 연구’ 저자 토인비와 비교되기도 하는 독일계 소련 학자 비페르는 고대 그리스사와 로마사, 중세사 및 근대사에 정통한 문명사가였고 ‘예수 연구’에도 업적을 남겼다. 스탈린은 독서 후기를 책 여백에 꼼꼼하게 기록한 역사 마니아였다.
우리가 역사책을 읽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역사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사마천은 역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궁형(宮刑)이라는 최악의 굴욕을 견뎌냈다. ‘거짓된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고 악을 숨기지 않는’ 걸작 ‘사기’가 탄생한 배경이다.
하루에 30kg의 죽간(竹簡) 서류를 결재하고서야 잠에 들던 진시황은 분서갱유와 아방궁 건설로 몰락해 간다. ‘탐욕스럽고 비열한 마음으로 선비와 백성을 멀리한’ 진시황이 ‘가혹한 형벌을 남용하고 폭력을 통치 기반으로 삼은’ 탓에 자멸했다는 것이 사마천의 준엄한 심판이다.
사마천의 사자후를 빌려 오자면, 역사책을 평생 탐독한 마오쩌둥과 스탈린은 역사에서 도대체 무엇을 배웠단 말인가? 독서가이자 혁명가였던 두 독재자의 극좌 맹동주의는 자국 인민 수천만 명(중국 5000만명, 소련 2000만명 이상으로 추산)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무자비한 그들의 폭정으로 고통 속에서 죽어 간 인민의 피와 절규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마오와 스탈린의 국가 건설 공적을 인정한다고 해도 중국 공산당의 ‘공칠과삼(功七過三)’ 논리로 그들 독재자가 저지른 생명 파괴의 절대악을 정당화할 수 있겠는가?
사기 ‘진시황 본기’는 진시황이 천하 통일 위업을 이뤘음에도 정치의 본말(本末)을 잃은 폭정으로 급속하게 멸망에 이르는 과정을 통렬하게 보여준다. 오늘날 사마천이 살아있다면 마오는 ‘현대 중국의 진시황’으로, 스탈린은 ‘현대 소련의 이반 뇌제(雷帝)’로 혹평했을 게 분명하다.
결국 마오쩌둥과 스탈린은 폭력과 권모술수를 숭상해 천하의 민심을 잃고 나라를 그르쳤다. 오늘도 우리는 역사에서 아무 교훈도 배우지 못한 채 폭주하는 권력자들을 세계 곳곳에서 보고 있다. 영생 불사를 꿈꾼 진시황조차 49세에 죽었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