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집 현관 입구 서가에 놓은 푸른 항아리. 필자의 사주팔자에 ‘목(木)’이 없어 청색으로 나무 기운을 보충하기 위해서다. /김두규 제공

표구점을 지나다 보면 해바라기 그림이 눈에 많이 띈다. 또 언제부터인가 달항아리 소품이 유행이다. 저가 생활용품점에도 2000~3000원짜리 소형 달항아리가 그득 진열돼 있다. 인테리어 풍수 소품이다. 어쩌면 기획된 상술일지 모르나, 그 기원을 추적하기 어렵다.

왜 해바라기 그림이 좋은 기운을 가져다준다고 믿는 것일까? 우선 노란색이다. 노랑은 멜라토닌 분비를 촉진해 잠을 잘 자게 해준다. 건강에 좋다. 해바라기 모양은 둥글다. 원만하다. 세상살이 둥글둥글 잘 돌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그 안에 씨알이 품종에 따라 800~3000개가 박혀 있다. 석류알보다 더 많다. 다산(多産)의 상징이다. 과거 농경 사회에서는 자녀가 많을수록 노동력이 풍부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다산이 덕목이던 시절이었다.

그뿐만 아니다. 해바라기는 키우기도 수월하다. 필자가 해마다 시골 서재 마당에 키워 관상하기에 잘 안다. 5월 중순에 심으면 11월까지 관상할 수 있다. 해바라기 싹이 나면 부쩍부쩍 잘 자라 다른 식물보다 키가 커서 주변을 압도한다. ‘출세’의 상징이다. 식물뿐만 아니라 사람들조차 우러러본다. 어떤 까닭인지 모르나 약(농약)을 치지 않아도 잘 자란다. 즉 ‘잡것(병해충)’이 달려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인간사에 ‘잡것’이 달려들면 사는 일이 걸리적거린다.

해바라기의 덕목은 또 있다. 자라면서 가지치기를 하지 않는다. 외마디로 쭉 자라 꽃을 피운다. ‘가지치기’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살아남기 위해 분산 투자를 한다는 뜻이다. 어디로 가지를 칠 것인가 ‘잔머리’를 굴려야 하고, 그로 인한 에너지 소비가 많다. 전공 독문학 수업에서 카프카의 ‘변신(Die Verwandlung)’을 어렵게 읽은 적이 있다. ‘작중 주인공이 자고 일어나 보니 벌레로 변신해 있었다’는 내용이다. 다리가 많은 다족류(多足類) 벌레였다. 왜 다리가 많았을까? 여기저기 발을 디뎌 놓아야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것이라고 필자는 나름 해석했다. 그런데 해바라기는 곁가지가 없으니 얼마나 세상살이가 수월할까?

또 흰색 달항아리는 왜 풍수 소품으로 유행하는 것일까? 항아리는 물건을 담는 데 쓰인다. 달은 밤에 존재감을 드러낸다. 어두운 시절, 험난한 시절에 자신이 빛나면 얼마나 좋을까? 또 흰색은 오행상 금(金)에 배속한다. ‘金’은 문자 그대로 금(gold)을 의미한다. 요즘 금값이 천정부지로 폭등한다. 달항아리에 금이 가득 찬다면 이 또한 기쁜 일이다.

인테리어 풍수 관념은 서양에도 있다. “하나의 물체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 정서를 움직인다는 것은 아름다운 음악이나 좋은 영화나 훌륭한 그림이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과 다르지 않다.”(최경원, ‘알레산드로 멘디니’). 이탈리아 출신으로 세계적인 건축가 겸 디자이너인 알레산드로 멘디니의 지론이다. 그의 작품에는 고채도 색상인 빨강·노랑·파랑이 많이 쓰인다. 풍수에서 빨강은 재물의 번창, 파랑은 사람 보는 안목, 노랑은 권력의 기운을 촉진한다고 해석한다. 그런데 멘디니는 노랑을 늘 색상의 중심에 둔다. ‘부동산 가치 상승 수단으로 풍수를 활용한’ 사업가 시절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좋아하는 색이 노랑이다(G.H.Ross, ‘Trump Strategies for Real Estate’). 금을 가져다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뉴욕의 트럼프타워 인테리어에도 금이 사용됐다.

본질적 질문이다. 해바라기 그림과 달항아리만이 복을 부르는 풍수 소품일까? 만약 그렇다면, 이재명 대통령이 ‘소비촉진지원금’으로 현금 대신 이것들을 집집마다 주면 어땠을까?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주한 프랑스 대사를 지낸 프랑수아 데스쿠에트의 아내이자 디자이너였던 크리스틴 데스쿠에트는 ‘리빙 인테리어’라는 풍수 책을 출간했다(한국어 번역본은 2004년 출간). 데스쿠에트는 “바람을 의미하는 ‘風’(풍)과 물을 의미하는 ‘水’(수)가 ‘氣’(기)가 흐르는 장소에서 만났을 때 가정에는 건강과 평화가 깃든다”면서 “자기 취향과 스타일 개발과 스스로 실내장식가로 자부할 것”을 강조했다. 즉 각자 자기의 정체성을 살리는 인테리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스웨덴의 유명 디자이너 프리다 람스테드는 말한다. “자신의 신체적·심리적 욕구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욕구를 조화롭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건강하고 편안하고 아름다운 집을 디자인하는 것이 중요하며, 자기 자신이야말로 편안한 집을 만드는 주체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인테리어 디자인과 스타일링의 기본’).

독자께서 필자에게 물으실지 모르겠다.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어떤 인테리어 풍수를 ‘실천’하는가? 두 가지가 있다. 현관 입구 서가의 ‘푸른 항아리’(30년 전 구입)와 서재의 독서등(燈) ‘아물레토(Amuleto) 램프’가 그것이다. 항아리의 청색은 나무[木]를 상징한다. 필자의 사주팔자에 목(木)이 없다. 청색으로 나무[木] 기운을 보충하고자 함이다. 아물레토 독서등은 파랑·빨강·노랑의 기를 가져다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 그렇게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