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이 무섭게 올랐다. 목돈이 필요하지만 금융권 대출에는 한계가 있다. 소득 대비 한도를 규제하고, 정부의 가계 부채 및 집값 잡기 대책 강화로 점차 축소 추세이기 때문이다. 이자도 상당한 부담이다. 얼마 전 내 집 마련에 성공한 40대 직장인 A씨는 결정적 도움을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얻었다. 무려 5억원을 무이자로 제공받은 것이다. A씨는 “가족과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돼 감사한 마음”이라며 “이런 실질적인 지원이 직원에게는 큰 힘이 된다”고 했다.
◇직원의 주거 불안 해소하라
인공지능 보안 업체 슈프리마는 임직원 200명 규모의 중소기업이지만, 최근 구직자들에게 글로벌 대기업 못지않은 관심을 끌고 있다. 직원 1인당 최대 5억원까지 무이자로 주택 자금을 대출해주는 파격 복지 때문이다. 근속 연수, 가족 수, 인사 고과 등의 심사를 거쳐 지금껏 56명이 혜택을 입었다. 회사 관계자는 “사내 기금 100억원을 조성했는데 최근 모두 소진돼 2차 재원을 마련해 다시 시행 중”이라며 “주거 불안을 해소해 업무 집중도와 채용 경쟁력을 높이는 효과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가상화폐거래소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 역시 주택 자금을 위한 ‘5억원 무이자’ 사내 대출을 7월부터 시작했다. 기존 3억원에서 한도를 2억원이나 더 올린 것이다. 소식이 알려지자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이직하고 싶다” “은행보다 낫다” 같은 뜨거운 반응이 속출했다. 관계자는 “1년 재직 시 1억원, 5년 이상 재직하면 5억원의 신청 자격이 주어진다”며 “우수 직원을 유치하고 유지하기 위한 제도”라고 말했다. 경쟁 업체 빗썸도 자체 자금으로 주택 매매 및 전월세 자금을 1억원까지 무이자로 빌려주고 있다.
◇지원율↑ 이탈률↓
집값 상승에 따른 고강도 대출 규제로 돈줄이 묶이면서 ‘사내 대출’이 각광받고 있다. 무이자 혹은 초저리 혜택과 더불어,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이나 LTV(주택담보대출비율) 산정에는 포함되지 않는 알짜 복지로 떠오른 것이다. 기업 컨설팅 업체 워크드 관계자는 “고급 인재 확보에는 연봉 외 실질적 ‘금융 복지’가 결정적 요소가 된다”며 “사내 대출 제도 신설을 문의하는 회사가 지난해보다 30% 증가했다”고 말했다. 대출금 상환 기간 해당 직원의 리텐션(이탈 방지)을 기대할 수 있어 연속성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및 중소기업에서는 사활이 걸린 문제다. 2023년 취업 플랫폼 잡코리아가 중소기업 160곳을 조사한 결과 “최근 입사 1년 내 퇴사한 신입이 있다”고 답한 비율이 87.5%였다. 워크드 관계자는 “해외 유학파 인재는 초기 정착 비용에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사내 대출로 주거 자금 등을 지원하면 채용 전환율이 크게 상승한다”며 “판교의 한 IT 기업은 입사 6개월부터 최대 5000만원까지 무이자로 대출해주는 사내 프로그램을 도입했는데 지원율이 1.7배 늘고 초기 이탈률은 38%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고 했다.
◇규제 사각지대?
다만 나랏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의 경우 조건 좋은 사내 대출이 정부의 대출 규제를 우회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그러자 2020년 금융감독원은 시중보다 낮은 금리로 운영돼온 주택 자금 사내 대출 제도를 앞장서 폐지했고, 2022년에는 기획재정부가 공공기관의 ‘과도한 복리 후생’을 손보는 계획을 확정했다. 그러나 2022년부터 올해 7월까지 공공기관 사내 대출 전수 조사(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실) 결과, 기획재정부 지침을 어긴 채 사내 대출을 취급한 기관이 10곳이었다. 집행 금액은 총 3190억원. 이를테면 주택도시보증공사는 한도 상한(7000만원)을 어기고 주택 구입 자금으로 최대 2억원을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오르는 집값, 커지는 조바심. 한국은행이 28일 발표한 ‘소비자 동향 조사’에서 10월 주택 가격 전망 지수는 122로, 문재인 정부 이후 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 향후 집값 상승을 예상하는 국민이 그만큼 더 늘었다는 뜻이다. 사내 대출도 오름세다. 국민의힘 김상훈 의원실이 SGI서울보증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지급된 기업의 사내 대출금이 1조725억원이었다. 이대로라면 역대 최고치였던 2023년(1조3922억원)을 넘어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