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말 들녘, 가을걷이가 한창이다. ‘얼치기 주말 농부’의 손은 허전하다. 땡볕이 유난히 숨 막힐 듯했던 지난여름, 늦은 나이에 호기를 부리다 자칫 저세상으로 갈 것 같아 두 달여 도망갔더니 엉망진창이 됐다. “드디어 때가 왔다”며 칡과 환삼덩굴이 천지를 뒤덮어 여타 작물들의 숨통을 조였기 때문이다. 뒤늦게 낫·제초기 등을 대동해 결전에 나섰으나 이미 늦었다. 평소 주말에만 자연 속에 머물며 농부를 흉내 내지만 숲과 나무, 꽃 그리고 새소리에 꽂혀 삶의 지향을 바꾼 후 꽤 세월이 흘렀으니 감사할 일이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배부른 짓을 자랑 삼아 하고 있다”고. 반은 맞고 반은 틀린다. 가까운 이들은 “사서 고생한다” “남는 장사를 하라”고 나무란다. 잡초 제거에 헉헉거리다 몸의 마비 현상을 겪는가 하면 수확물을 시장값과 견줄 때 농기구와 비료·모종값 등의 합산가인 본전에 한참 밑지는 장사를 한다는 지적이다.
심어놓은 묘목은 툭 하면 토라져 죽어버린다. 얼마 전에는 알 수 없는 나무 전염병 탓인지 묘목을 사다 몇 년간 애지중지 키운 날씬한 서양측백나무(블루 엔젤) 100여 그루가 순식간에 타들어가는 불상사를 겪었다. 사다 심은 감나무 한 그루가 속절없이 죽어버리기에 근처 농업기술센터에 물었다. 우리 밭의 흙 성분이 감나무와는 맞지 않으니 미리 토양 검사를 했어야 했단다. 매번 가을 수확기에 대추가 모조리 떨어지기에 알아보니 꽃 필 때 맞춰 살충제를 뿌리지 않으면 벌레가 꽃 속으로 들어가 살면서 과육을 모조리 먹어 치운다는 것이다.
자연 속 하루가 만사 다 잊게 하고 나무·채소가 자라는 희열감이 온몸을 감싼다 해도 이런 경우를 당하면 풋내기의 어벙함이 안타깝고 속상하다. 아마추어 품새로는 텃밭 농사도 힘들다는 사실이 매년 되풀이된다. 올해도 이리저리 뻗어가는 고구마 줄기 위로 잡초가 뒤덮여 광합성 부족인지 땅속 고구마가 한 줌에 불과하다. 내 서툰 행위를 들여다보는 동네 노인들은 혀를 찰 뿐이다. 봄풀이 자라기 전, 땅에 우선 제초제를 듬뿍 뿌려두었다. 더 이상 잡초가 나지 않을 때 모종을 심으면 충만한 결실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도 모르느냐는 투다. 과일나무 잎에 영양제를 살포하는 엽면시비(葉面施肥), 과일 색깔을 풍성하게 하는 착색 요령도 잘 몰랐다. 최근 신청한 농민신문을 열독하며 배우는 중이다.
하지만 살인적인 땡볕 아래 세상을 뒤덮을 듯 억척스레 뻗어가는 잡초는 내겐 경이로움 그 자체다. 숨 막히는 더위 속에서도 지치지 않는 그들의 무서운 생존력은 만물을 태생시킨 조물주가 무언가 역할을 부여한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이르러 자료를 찾았다. 잡초는 토양의 습도를 유지해 흙의 유실을 막고 영양분을 비축, 최소한의 생태계를 지탱케 한다는 것. 결실이 적은들 어떠랴. 자연 속에 빠져 번잡한 세상사 잊고 새삼 자연의 순리와 이치를 깨닫는 게 내겐 더 큰 결실이며 행운 아닌가.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 꼭 결과치를 돈으로 환산해야 하나. 자연에 서면, 붙박이로 박혀 있어도 제자리를 탓하지 않고 환경에 맞게 변화하며 개체 유지와 종족 번식의 역할을 해내려는 나무들이 주는 가르침이 감사하다. 고요한 숲에 몰입하는 시간은 잘 버텨낼 힘을 주는 삶의 에너지 충전재 같은 것이다. 누가 뭐래도 조물주의 위대한 예술혼이 빚은 생명의 신비 앞에 서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기쁨과 환희다.
앞으로는 잡풀들 원망 말고 작물 재배 구역에만 잡초 방지용 비닐멀칭을 하기로 했다. 또 잡초를 애초에 덮어버려 제압하는 납작한 꽃잔디·클로버 등의 초생 재배로 내 불평을 입 막으련다. 이 가을, 뽕나무 아래서 유난히 목청을 돋우는 새들의 노래에 빠져 그 이름을 알아보니 직박구리·찌르레기란다. 이름까지 알게 되니 더 사랑스럽다. 내 나이도 어느덧 늦가을. 자, 그만하면 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