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음식을 받은 뒤 오히려 우울함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일주일에 3~4번은 배달 음식을 주문하는 직장인 김모(32)씨. 이번에도 입맛을 다시며 주문을 넣은 지 30여 분째, 초인종 소리와 함께 기다리던 문자메시지가 왔다. ‘배달 기사입니다. 음식 문 앞에 놓고 갑니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김씨의 침샘이 마르기 시작했다. 음식을 받기 전 기대감은 사라지고 입맛이 뚝 떨어진다. 그다지 배가 고픈 것 같지도 않다. 그는 음식을 앞에 두고 “왜 주문했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김씨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글이 늘고 있다. “포장 풀 때부터 귀찮아지기 시작한다” “주문 직후부터 행복함이 사라진다”는 반응이 잇따르며 이런 현상을 일컫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슬픈 배달 음식 증후군’. 배달 앱에서 음식을 고를 땐 즐거움과 기대감을 느끼는데 막상 음식을 받은 뒤에 식욕이 사라지거나 죄책감까지 느끼는 것을 뜻한다.

집에서 배달 음식을 자주 주문해 먹는다는 직장인 이예진(33)씨는 “몇 시간 전 시킨 음식이 집에 있는데도 습관적으로 새로운 음식을 주문하게 되더라”라며 “쇼핑 중독이랑 비슷한 것 같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뇌 과학적으로 가능한 이야기”라고 입을 모은다. 온라인 쇼핑몰처럼 클릭 몇 번으로 쉽게 음식을 주문할 수 있게 되면서 택배 기다리듯 음식을 기다리지만, 정작 받고 나면 기대감이 급격히 식어 오히려 우울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김은주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음식이라는 보상을 기대하는 행위 자체에 쾌감을 느끼는 일종의 도파민 중독”이라고 했다.

코로나 이후 간편해진 음식 주문 방식이 스트레스 해소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분석도 있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리는 남이 시키는 일을 하는 직장에서와 달리 쉴 때 원하는 것을 하며 통제감과 긴장감을 회복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TV 리모컨 돌리듯 원하는 음식을 고르는 주문 과정에서 욕망이 해소되니 정작 음식은 먹기 싫은 생각이 드는 것”이라고 했다. 이나미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도 “공허감이나 피로 등 부정적인 감정을 뇌에서 허기로 착각할 수 있다”고 했다.

배달 음식까지 중독될 줄이야.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까. 다이어트할 때와 비슷하게 물 한 잔을 마시거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려본다. 김은주 교수는 “충동은 순간을 넘기면 가라앉는 특징이 있다”며 “스마트폰 중독을 끊을 때처럼 잠시 휴대전화를 보이지 않는 곳에 두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