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중앙아시아실에 전시돼 있는 베제클리크 석굴 천불도 벽화 단편./국립중앙박물관

박물관은 과거로의 시간 여행뿐 아니라 멀리 떨어진 낯선 장소로의 여행도 가능하게 해준다. 국립중앙박물관 중앙아시아실은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실크로드의 번영을 배경으로 동서 교역로의 거점 도시가 누린 영광과 문명의 덧없음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작은 벽화 단편은 현재 영토로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북동쪽에 있는 투루판 지역에서 가져온 것이다. 베제클리크 석굴은 투루판 지역 최대 규모의 석굴사원 유적으로, 그 이름은 위구르어로 ‘아름다운 그림으로 장식된 집’을 뜻한다. 6세기에서 13세기까지 화염산 기슭에 80여 기의 석굴이 만들어졌다. 국씨고창국 시기부터 당나라 지배기와 위구르 지배기를 거치는 동안 불교와 마니교의 주요 성지였으나 15세기쯤 이 지역이 이슬람화되며 쇠락했다.

정면을 향해 앉아 있는 부처가 그려진 이 벽화는 제18굴 내부를 장식했던 천불도(千佛圖)의 일부다. 천불도는 동일한 모습의 부처가 여러 행과 열에 따라 반복되는 그림으로, 시공을 초월해 우주에 편재하는 불법(佛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벽화 속 부처는 몸을 완전히 덮는 옷을 입고 있으며, 두 손은 가운데로 모아 선정인(禪定印·부처가 명상에 들어간 상태를 상징하는 손 모양)을 취하고 있다. 얼굴이 유난히 또렷해 보인다. 이목구비는 큰 편이고, 눈과 코 주변과 얼굴 윤곽선을 따라 얼굴색보다 짙은 색을 더해 입체감을 표현했다. 머리는 푸른빛을 띠는데, 여러 불교 경전에 ‘감청색(紺靑色)’이라고 묘사된 석가모니 부처의 머리카락 색에 부합한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이 푸른빛을 표현할 때 라피스라줄리로 만든 안료를 사용한 점이다. ‘청금석(靑金石)’으로도 불리는 이 광물은 아프가니스탄이 대표 산지로, 고대부터 금만큼이나 귀하게 여겨졌다. 유럽에서 ‘울트라마린’이라 불린 안료가 라피스라줄리를 재료로 한 것으로, 서양 미술의 역사에서도 한때 가장 비싼 안료로 꼽혔다.

1000년 이상 세월을 견뎌온 이러한 벽화의 가치는 20세기 초 새롭게 주목받으며 제국주의 열강의 쟁탈 대상이 됐다. 독일·러시아·영국·프랑스·일본에서 조직된 탐험대가 투루판을 비롯한 신장의 여러 유적을 조사하고 유물을 수집했다. 이 벽화 단편은 일본 승려 오타니 고즈이가 조직한 탐험대가 제2차 탐험 당시인 1908년에 수집한 것이다. 오타니의 고베 별장을 구입한 구하라 후사노스케가 여기 보관된 오타니 탐험대 수집품을 1916년 조선총독부박물관에 기증했고, 1945년 국립중앙박물관이 개관하면서 이를 소장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