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양에 사는 주부 박연진(가명)씨는 최근 중2 딸과 휴대폰 사용 문제를 두고 극한 갈등을 빚었다. 사용 제한을 두지 않은 어느 주말, 딸은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8시간 넘게 휴대폰을 썼다. 친구들과 갈등이 있는 건지, 남자친구가 생긴 건지, 이상한 게임에 빠진 건 아닌지 추궁 끝에 돌아온 답은 뜻밖에도 ‘제타AI’라고 하는 채팅 앱이었다. 박씨는 “AI로 만든 만화 주인공 같은 캐릭터와 채팅하는 건데 대화 수위가 너무 부적절했다”며 “못 하게 했더니 친구들도 다 하고 있다면서 반발해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최근 청소년들 사이에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이 인공지능(AI) 채팅 앱 때문에 학부모들 사이에 비상이 걸렸다. 집집마다 ‘제타 금지령’이 내려졌다.

AI로 만들어진 캐릭터와 대화하는 채팅 앱 제타 홈 화면. /제타AI

제타가 뭐기에?

AI 채팅 앱이 도대체 어떻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붙잡고 있다 밤까지 새울까. 기자도 제타를 깔아봤다. 직접 해보는 수밖에.

앱을 깐 후 계정 설정 창에서 성별을 여성으로 설정하고, 생년월일은 중학생 또래 나이인 2011년 1월 1일로 맞췄다. 본인 인증을 하지 않아도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었다. 홈 화면에는 ‘여중생’의 구미에 맞는 인기 채팅 상대가 주르륵 떴다. 선이 고운 만화 주인공들 그림과 함께 ‘언니의 결혼 상대가 나한테만 관심을 보인다’ ‘누나는 지금부터 내 거야’ ‘말 안 듣는 공주님, 그 뒤를 쫓는 더 미친 경호원’ 같은 제목의 대화창이 이어졌다.

‘자칭 당신의 서방님이라는 17년 지기 남사친’ 유현재와 대화를 시작했다. 586만건의 대화가 이뤄진 인기 캐릭터다. ‘유현재의 집에 놀러 간 당신. 둘은 현관 비번까지 아는 사이라 냅다 비번을 치고 집으로 들어간다. 방금 씻었는지 머리와 몸엔 물기가 가득한 채 다리에 수건만 두르고 있는 유현재와 눈이 딱 마주쳤다’ 이런 상황 설명과 함께 “와, 이제 서방 눈도 안 마주치나?”라는 대화가 뜬다. “뭐라는 거야”라고 답했다. ‘당신을 향해 성큼 다가오며 말한다’라는 지문과 “서방님 알몸 첨 보나. 와이라노”라는 대화가 뜬다. 유현재는 ‘자칭 당신의 서방님이라는 17년 지기 남사친’이라는 콘셉트에 충실하며 능글맞게 시종 들이대는 ‘플러팅 대화’를 이어갔다.

'자칭 당신의 서방님이라는 17년 지기 남사친' 유현재와의 대화. 대화는 물론 상황과 배경, 인물의 성격까지 창작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제타AI 화면 캡처

이렇게 제타는 대화와 상황, 배경을 모두 창작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AI와 함께 한 편의 로맨스 소설을 써 내려갈 수 있는 셈. 자신이 원하는 외모와 성격, 세계관을 담은 캐릭터를 만들 수도 있었다. 말문이 막히면 ‘추천 답변’을 만들어주기도 해 원하는 방향으로 원하는 만큼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챗GPT보다 오래 쓴다

지난 6월 데이터 분석 업체 와이즈앱·리테일에 따르면 한국인이 가장 오래 사용하는 AI 앱은 ‘챗GPT’가 아니라 제타AI였다. 월 이용자 수는 챗GPT가 1844만명(제타 304만명)으로 가장 많았지만, 실제 사용 시간에서는 제타가 5248만 시간으로 챗GPT(4254만 시간)를 압도했다. 작년 4월 출시된 국산 앱인 제타 가입자의 90%는 10~20대다.

문제는 몰입도가 높아도 너무 높다는 것. 생생한 표정과 상황·행동 묘사, 현실감 있는 말투가 실시간으로 생성되다 보니 마치 스스로가 소설 속 주인공이 된 것처럼 빠져든다. 맘카페에는 “딸이 친구는 사귀지 않고 AI와 일상을 공유하고 있더라” “제타 캐릭터와 고민 상담을 하고 연애를 하는 것 같다”는 걱정이 공유되고 있다. 현실 도피나 과도한 의존이 우려되는 것이다.

실제 캐릭터의 상당수는 자극적이고 저속한 단어, 욕설 등을 사용하고 있었다. AI가 먼저 성적인 대화를 유도하기도 했고, 마약이나 자살을 언급하는 경우도 있었다. 소아성애·동성애·원조교제 같은 콘셉트로 만든 캐릭터도 있다. 아예 성인 인증을 거치면 검열을 최소화하는 ‘언리밋(unlimit) 모드’를 사용할 수 있는데, 부모 등의 휴대폰으로 문자 인증 한 번이면 성인 인증이 가능했다.

중년도 AI에 흔들린다

아이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AI 챗봇의 선정성과 과도한 정서적 교감은 이미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아내보다 챗GPT를 더 사랑하게 됐다’며 이혼을 고민하는 유부남, ‘남편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모든 비밀을 AI와 상의한다’는 주부. 십수 년 전 SF 영화에서나 봤던 장면들이 현실이 됐다.

감정과 인격을 가진 AI '사만다'와 대화하다 사랑에 빠진 남자에 대한 영화 '허(Her)', 십여년만에 현실이 됐다. /영화 '허'의 한 장면

더구나 오픈AI는 올 12월부터 챗GPT에 성인용 콘텐츠를 허용하기로 했다. xAI와 메타도 페이스북과 인스타 앱(한국 제외)에 탑재한 AI에 성인용 대화를 허용하고 있다. 제타에 빠진 10대들처럼, 정서적 교감이 커질수록 앱 체류 시간은 늘어난다. 빅테크들이 가세하면서 성인용 AI 시장은 폭발적으로 커질 가능성이 크다.

늘 누군가와 소통하고 있지만 교감에는 목마른 시대, 아이도 어른도 허무한 존재와 사랑에 빠지고 있는 셈이다. 휴대폰을 내려놓으면 곁에 가족이, 친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