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현재 대한민국 사법부를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다. 사법부가 계엄을 방조한 내란 방조범이라는 주장이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여권 세력에서 쏟아져 나온다. 이들은 ‘선출된 권력’인 국회가 ‘임명직인 사법부’를 제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중이다. 국회의원들이 대법원 대법정 법대에 올라가 웃는 모습까지 연출하더니 대법원 판결을 재심사하는 재판소원까지 도입하겠다고 했다. 그래야 사법부가 개혁된다는 말이다.
이들이 자기네 주장을 역사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끄집어내는 인물이 있다. 을사오적이다. 1905년 11월 17일 대한제국 외교권을 일본에 넘긴 을사조약 다섯 주범 이야기다. 여권에서는 이들이 모두 당시 대법원장 출신이라고 지적하면서 2025년 현재 대한민국 사법부를 악의 온상이라고 주장한다. 한국 사람을 감성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친일파’ 프레임을 대한민국 사법부에 씌워서 자기 주장을 관철하겠다는 의도가 보인다. ‘엘리트’ ‘출세한 사람’ ‘친일파’라는 단어는 한국인에게 감성적으로 와닿는 이미지다.
저 을사오적이 사법부 출신 엘리트였다는 주장은 사실일까? 거짓말이다. 거꾸로다. 고종 혀처럼 행동하는 행정 관료가 사법부를 장악하면서 만든 역사가 망국이었다. 대한제국이 성립한 1897년 10월 13일부터 을사조약이 체결된 1905년 11월 17일까지 ‘고종실록’과 ‘승정원일기’를 전수조사해서 을사오적 이력을 분석했다.
#1 을사오적이 판사 출신이라는 주장
지난 9월 13일 민주당 소속 강득구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을사오적이 전부 판사 출신이었다. 1970, 1980년대 사법부는 독재정권의 하수인이었다. 조 대법원장은 사퇴하라.”’(2025년 9월 13일 ‘강득구 페이스북’)
이보다 한 달 전 한국경제신문에는 중앙대 겸임교수라는 사람이 칼럼을 기고했다. ‘행안부 장관(이지용), 외교부 장관(박제순), 국방부 장관(이근택), 교육부 장관(이완용), 산업부 장관(권중현). 그들의 공통점이 숱하지만 유별난 게 ‘전원이 법관’이었다는 대목이다.’(2025년 8월 14일 ‘한국경제’) 칼럼은 이렇게 이어진다. ‘일부 법관들이 삼권분립 보장을 운운하시는 걸 보고 우울증이 도졌다. 평가받지 않는 권력은 잠시 방심해도 교만과 독선이 들러붙기 마련이다. 사법부의 삼권분립? 그건 주어지는 게 아니고 경계하고 또 경계해서 ‘스스로 지켜갈 일’이다.’
이에 앞서 5월에는 당시 수감 중이던 조국혁신당 조국 비상대책위원장이 오마이뉴스에 자필 기고문을 보냈다. ‘대한제국을 일본에 팔아먹은 을사오적이 법관 출신이었고, 대한민국의 길을 열기 위해 봉기한 사람들은 민초였음이 떠올랐다.’(2025년 5월 9일 ‘오마이뉴스’)
필자는 다 다른데 주장은 똑같다.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인용한 역사적 인물 또한 을사오적으로 똑같다. 임명직 법관이 나라를 팔아먹었고, 그래서 사법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미 2021년 신민당 당보 편집인 출신으로 독립기념관장까지 올랐던 김삼웅은 ‘이완용은 평남과 전북재판소 판사, 박제순은 평리원 재판장 서리, 이근택은 평리원 재판장, 이지용은 평리원 재판장과 법부대신, 권중현은 평리원 재판장 서리’라며 모두가 판사 출신이라고 비난했다. 김삼웅이 내린 결론도 똑같다. ‘해방 후 사법부 수장을 비롯, 판검사, 변호사 중에는 친일 부역자가 너무 많았다. 판사들이 법조 귀족이 아닌 정의와 신뢰의 상징이 되는 사법 개혁이 요구된다.’(2021년 11월 18일 ‘스포츠한국’)
이들이 말하는 ‘법관’과 ‘판사’는 대한제국 시대에 운영됐던 ‘평리원 재판장’을 뜻한다. ‘평리원’은 지금 대법원에, 그 재판장은 대법원장에 해당한다. 또 이완용은 지방재판소 판사였다고 주장한다. 매국노를 배출한 그런 사법부가 지금까지 이어져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라는 주장이다. 일반 대중은 이런 가짜 주장을 신뢰하며 이들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버린다. 몽땅 거짓말이다.
#2 이완용이 ‘사법 엘리트’?
평리원은 1899년 5월 30일 신설된 법원이다. 대한민국 대법원에 해당한다. 수장은 평리원 재판장이다. 평리원은 1895년 음력 3월 25일 신설됐던 ‘고등재판소’를 대체한 법원이다.(1895년 음력 3월 25일, 1899년 5월 30일 ‘고종실록’) 1895년 이전까지 조선의 사법 시스템은 사또 재판이었다. 독립된 판사나 검사가 없이 행정부 소속 지방관이 판결을 내리는 재판이다. 갑오개혁을 통해 조선은 그 전근대적 사법 제도를 없애고 근대적 재판 시스템을 도입했다. 평리원 재판장 자격 규정은 따로 없었다.
먼저 이완용이 지방재판소 판사 출신이라는 주장을 보자. 이완용은 1897년과 1898년 각각 평남관찰사와 전북관찰사에 임명됐다. 1897년 9월 1일 평남관찰사에 임명된 이완용은 9월 21일 “병든 아버지 봉양을 위해 사임한다”고 상소를 올렸다. 9월 26일 고종은 이 상소를 수용하고 닷새 뒤 종2품 조민희를 후임으로 임명했다. 서류상으로 평남관찰사 근무 일수는 25일이다.(1897년 9월 1일, 26일 ‘고종실록’, 9월 21일 ‘승정원일기’)
이어 1898년 3월 11일 당시 비서원경이던 이완용은 전북관찰사로 임명돼 1900년 7월 21일까지 재임했다.(1898년 3월 11일, 1900년 7월 22일 ‘고종실록’) 전북관찰사 재직 기간 이완용은 ‘전북지방재판소 판사’를 겸임했다. 따로 있는 기관이 아니다. 관찰사가 해야 하는 ‘당연직’이다. 864일, 즉 2년 4개월 동안 이완용은 관찰사 신분으로 재판소 판사를 겸직했다. 1886년 규장각 대교 이후 1905년 을사조약까지 19년 동안 이완용이 거쳐간 주미공사관 참찬관, 주일전권공사, 외부협판, 학부대신, 중추원 의관, 비서원경, 전북관찰사, 조경단 영건청 당상, 궁내부 특진관 가운데 하나였다. 19년 공직 가운데 이 2년 4개월이 ‘사법 엘리트 이완용’의 진실이다.
#3 나머지 을사오적의 기록
고종실록과 승정원일기를 전수조사한 결과 나머지 을사오적이 평리원 재판장으로 근무한 일수는 가나다순으로 다음과 같다.
권중현. 1904년 8월 20일 의정부 찬정, 임시서리 평리원 재판장 ‘겸임’. 재임 일수 12일.
다음, 박제순. 1904년 4월 14일 육군참장 겸 원수부회계국총장, 임시서리 평리원재판장사무 ‘겸임’. 재임 일수 41일.
이근택. 1901년 10월 1일 경부협판(경찰청 차장) 겸 헌병사령관 이근택, 평리원 재판장 ‘겸임’. 66일 재임. 1902년 3월 27일 경위원 총관(대통령 경호실장) 이근택, 임시서리 평리원 재판장 ‘겸임’, 91일 재임. 총 재임 일수 157일.
마지막, 이지용. 1904년 2월 16일 법부대신 이지용, 평리원 재판장 ‘겸임’. 재임 기간 19일. 1904년 3월 17일 법부대신 이지용, 평리원 재판장 ‘겸임’. 재임 28일. 총 재임 일수 47일.
1899년 5월 30일부터 을사조약일인 1905년 11월 17일까지 평리원 재판장은 중복을 포함해 35명이었고 총 재임 기간은 2394일이다. 이 을사오적 4명이 평리원 재판장에 재임한 기간은 총 257일이었다. 총인원 35명의 11.4%인 4명이 총 재임 기간 2394일의 10.7%를 근무했다. 그것도 모두 겸직이었고 본업은 행정 관료였다.
이들을 포함해 재판장들은 모두 법부, 종친, 황제 자문기관 중추원, 군부, 경찰, 황제 비서실 따위 ‘황제 측근’ 출신들이었다. 예컨대 이근택은 무과 급제 이후 단천부사, 희천군수, 길주목사, 충청수사, 전라병사, 한성우윤, 병조참판, 한성판윤, 함북관찰사, 경부대신, 헌병사령관, 의정부찬정, 원수부검사국총장, 육군부장, 군부대신, 강원도관찰사, 농상공부, 법부대신을 거쳤다. 이지용은 사복시정, 통위영 군마사, 이조정랑, 형조참의, 병조참의, 안주목사, 비서원승, 황해관찰사, 궁내부특진관, 경상관찰사, 궁내부대신, 의정부 찬정, 군부대신, 홍문관학사, 원수부 기록국총장, 경부대신, 법부대신, 헌병사령관, 장례원경, 농상공부대신, 학부대신, 내부대신을 역임했다.
이 같은 사실은 ‘을사오적은 사법부 엘리트 출신’이라는 주장이 허무맹랑함을 보여준다. 대한제국을 팔아먹은 자들은 사법 엘리트가 아니라 사법부를 농락한 행정 관료들이었다는 뜻이다.
#4 사법부 종속이 망국으로
1895년 음력 3월 25일 조선 정부는 법률 1호로 ‘재판소 구성법’을 선포했다. 소위 사또 재판으로 이뤄졌던 사법 행위를 ‘독립된’ 재판소에서 관할하게 하는 근대법이었다.(1895년 음력 3월 25일 ‘고종실록’) 그런데 이 법은 지방재판소 판검사와 직원을 ‘당분간 지방관에게 겸임시킬 수 있다’고 규정했다. 함께 설치된 상급 법원 ‘고등재판소’ 또한 재판장은 법부대신이 겸임했다. 무늬만 근대였을 뿐 사법부는 행정부에 종속된 기관이었다는 말이다. 1899년 5월 고등재판소를 폐지하고 평리원을 신설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재판장은 절대다수가 현직 행정 관료로 충원됐다.
1900년 5월 1일 고종 정권은 악법을 추가했다. ‘평리원 및 각 재판소 민형사 소송에 법부 칙주임관을 파견 심사하거나 서류 일체를 법부로 옮겨와 사열하여 귀정할 수 있다.’(1900년 5월 1일 ‘대한제국 관보’) 최종심인 평리원 판결을 행정부인 법부의 검열 대상으로 전락시킨 것이다.(도면회, ‘한국 근대 형사재판 제도사’, 푸른역사, 2014, p313)
지금 일부 세력이 을사오적을 사법부 개혁 명분으로 내건 이유는 자명하다. 현재 대한민국 사법부를 망국 세력으로 규정해 청산하겠다는 의도다. 정반대다. 망국의 뿌리는 근대 사법 시스템에 기생하던 황제 최측근 권력들이었다. 그들이 사법 시스템에서 근대성을 제거하고 법원을 전주 이씨 황실의 신분·경제 유지 도구로 전락시켰다. 을사오적은 그 중심에 있던 행정 관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