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가 끝난 10일, 양평군청에 근무하던 50대 사무관 A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사망이 확인된 것은 당일 오전 11시 14분, A씨가 출근도 안 하고 전화도 받지 않자 A씨가 사는 아파트를 찾아간 직장 동료들이 아파트 화장실에서 숨져 있는 그를 발견했단다. A씨는 죽기 8일 전인 2일 오전 10시부터 다음 날 새벽 0시 52분까지 15시간 동안 민중기 특검팀에서 조사를 받았기에, 그의 죽음은 이 조사와 무관치 않았을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억울한 심경을 쓴 한 장짜리 메모를 남겼는데, 메모 말미에 ‘10월 3일 3시 20분’이란 글귀와 함께 자필 서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사가 끝나자마자 심경을 메모에 담은 모양이다. 메모 앞머리에 있는 “너무 힘들고 지친다. 이 세상을 등지고 싶다”는 구절은 조사 직후 그의 참담한 심경을 짐작하게 한다.
김건희 여사와 관련된 비리를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민중기 특검이 출범할 때만 해도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이라든지 양평 고속도로 종착지 변경 등 지난 정권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입만 열면 떠들던 사건을 수사할 줄 알았건만, A씨에 대해 특검팀이 물으려 한 것은 일반인들에겐 생소한 ‘양평 공흥지구 개발 특혜 의혹’이었다. 김 여사 가족 회사인 ESI&D가 2011년부터 2016년까지 공흥지구 개발 사업을 했는데 양평군이 개발부담금 17억원을 면제해 줬다는 것. 하지만 개발 비용이 많이 들었는데 이익이 적으면 부담금을 0원으로 부과할 수도 있는 데다, 이 사건을 조사하는 건 특검 취지와도 어긋난다.
정권의 비리를 검찰이나 경찰이 하는 게 한계가 있으니 특검이 수사하게 하는 것일진대, 공흥지구를 개발하던 시기에는 윤 전 대통령이 권력자도 아니지 않았는가? 이 사건이 불거진 것도 대선을 앞둔 2021년 11월, 한 시민 단체가 고발했기 때문이지만, 수사를 담당한 경찰은 김 여사는 물론이고 장모 최은순씨도 공흥지구와 무관하다고 판단해 불송치했다. 이번에 사망한 A씨도 공흥지구와 관련해 업무상 배임(국고 손실) 등으로 경기남부지방청에서 조사를 받았지만, 불송치(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여기에 공흥지구 사업 준공 기한 연장과 관련해 기소된 양평군청 공무원 3명도 2023년 1심 재판에서 무죄를 받았으니, 특검이 이 사건을 다시 뒤질 필요성이 있을까 싶다.
실제로 ‘14명 구속, 19명 기소’라는 화려한 외양과 달리 민중기 특검이 지금까지 구속한 이들은 김 여사와 연관성이 없는 이가 대부분이었다. ‘별건 수사를 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이번 사건까지 벌어졌으니 특검이 뼈를 깎는 반성을 하는 게 맞다. 하지만 특검의 반응은 ‘역시나’였다. “현재 유포되고 있는 서면(문서)은 A씨가 사망한 장소에서 발견된 실제 유서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A씨 메모의 진실성을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여실히 드러나는 발언. 하지만 강압적 조사가 죽음의 이유였다면 특검 조사 직후 남긴 그의 메모는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더 어이없는 것은 A씨가 사망 직전 노트 21장 분 유서를 남겼는데, 경찰이 가져가 버렸다는 점이다. 유족에게는 유서의 휴대폰 촬영본만 보여줬다는데, 대체 이유가 뭘까?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해당 메모(유서)가 고인이 작성한 게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필적 감정을 의뢰”했단다. 황당하다. A씨의 유서는 특검 조사를 마친 날부터 숨지기 전인 9일까지 날짜별로 억울한 심경과 가족에게 전하는 말 등이 담겨 있다는데, 이걸 누가 대신 써주기라도 했단 말인가? 이것도 모자라 민중기 특검은 고인을 부검까지 했다. A씨는 혼자 살고 있었고, 경찰은 사망 전날 오후 8시 반 A씨가 귀가한 후 그 집에 드나든 사람이 없다는 것도 확인했다. 유족마저 반대했지만, 특검은 결국 부검을 강행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국과수는 13일 “타살 등 범죄 혐의점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1차 구두 소견을 경찰에 전달했다. 그런데도 추미애 법사위원장은 14일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타살 의혹이 있는지도 법무부가 관심을 갖고 살펴달라”고 했다. 정성호 법무부장관 말처럼 이게 “법무부가 직접 관여할 사안이 아님”에도 말이다.
대체 왜들 이러는 것일까? 아마도 저들은 시간을 끌어 작금의 불리한 상황을 모면하려는 것 같다. 필적 감정을 하는 데는 1~3개월이 걸리고, A씨 부검의 최종 감정서가 나오는 데도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고 하잖는가. A씨 죽음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힐 때쯤, 민중기 특검은 다시금 칼춤을 추리라.
마지막으로 세 가지만 말하겠다. 첫째, 민중기 특검에는 수사팀이 총 아홉 있는데, A씨를 조사한 팀은 전원이 파견 경찰관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 정권이 검찰청을 해체하는 명분이 강압 수사, 먼지 떨기 수사였는데, 경찰도 검찰 못지않거나 더하다는 사실이 이번 사건에서 잘 드러났다. 둘째, 민중기 특검이 고교·대학 동문이 대표로 있는 태양광 업체 네오세미테크의 비상장 주식에 투자한 뒤 상장폐지 직전에 팔아 약 1억6000만원, 무려 30배나 되는 수익을 봤단다. 내부자 거래 의혹도 문제지만, 이 회사는 김 여사도 과거 투자했던, 그래서 민중기 특검이 주식 거래 경위를 추궁했던 곳, 이쯤 되면 ‘특검을 특검하라!’는 구호가 나오는 게 맞겠다. 셋째, 이재명 대통령은 인명에 대한 감수성이 누구보다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사가 날 때마다 목소리를 높였고, 대통령이 된 뒤에는 산업재해 때마다 그 기업 대표를 윽박질렀다. 심지어 건설 회사 면허 취소까지 언급할 정도였는데, 희한하게도 이번 A씨 사망 사건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별 말이 없다. 사람 가려가며 발휘되는 감수성이라면 그게 진짜 감수성일까. 돌아가신 A씨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