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충북 괴산군 농업기술센터 일대에 핀 코스모스들이 가을 바람에 일렁이고 있다./뉴시스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지만 맑고 높은 가을 하늘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추석 연휴가 시작된 10월 초부터 비 내리는 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1일부터 15일까지 서울에 내린 비의 양은 161.9㎜로 평년의 6배에 달했습니다. 같은 기간 전국 평균 강수일수(0.1㎜ 이상 비가 내린 날)는 9.8일로 이미 10월 한 달 치 평균 기록(5.9일)을 넘어섰습니다. 보통 10월에는 비가 많이 오지 않는데 올해는 왜 이렇게 가을비가 자주 내릴까요. 높은 해수면 온도 등의 영향으로 북태평양고기압이 세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고기압이 공급한 고온 다습한 수증기가 북쪽의 건조하고 찬 공기와 마주치면서 우리나라에 비를 뿌리는 것입니다.

천고마비는 ‘하늘이 높고 말은 살찐다’는 뜻입니다. 좋은 날씨에 풍요로운 가을 정취를 일컫는 사자성어입니다. 하지만 본래는 이런 의미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한서(漢書)’에는 전한의 장수 조충국이 황제에게 “가을이 돼 말이 살찌면(到秋馬肥) 변란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고 보고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송나라 장군 이강은 “가을이 깊어지고 말이 살찌면(秋高馬肥) 오랑캐들이 반드시 다시 쳐들어온다”고 경고했습니다. 과거 중국인에게 가을은 마냥 좋은 계절이 아니라 북방의 이민족이 침략해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기는 시기였던 것입니다. 북방 민족으로서는 수확의 계절에 빼앗아갈 게 더 많았을 겁니다. 또 말이 초원의 풀을 마음껏 뜯어 먹어 힘을 비축한 상태에서 전쟁 준비를 마치고 더 추워지기 전 침략하는 게 전술적으로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천고마비’라는 말은 이 ‘추고마비’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전쟁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를 담았던 본래 뜻은 사라지고 세월이 흐르면서 글자 그대로 가을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쓰이게 된 거죠.

그런데 날씨도 날씨이지만, 요즘 우리 현실은 가을을 온전히 즐기기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경기 둔화와 정치·사회적 갈등, 대외 환경의 불확실성이 겹치면서 그 어느 때보다 불안하고 어수선한 분위기입니다. 온통 짜증 나고 우울한 뉴스뿐입니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은 멈추지 않습니다. 미국 시인 브라이언트는 “가을은 한 해의 마지막이자, 가장 사랑스러운 미소”라고 했습니다. 그 짧고 풍요로운 순간을 그냥 흘려보내기에는 너무나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