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에서는 은박지 한 장도 허락을 받아야 했다. 먹을 것이 널렸지만 마음대로 입에 넣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밖으로는 남극과 가까운 호주 멜버른의 세인트 킬다 해변이었다. 사람들은 웃옷을 벗고 햇볕을 쬐었지만 지하 주방에는 뜨거운 가스불과 노골적인 괴롭힘이 가득했다.
직원 식사는 보통 다듬고 남은 자투리 고기, 반쯤 시든 채소, 냉동실에 넣어둔 빵 쪼가리를 데워 먹었다. 그것도 주방 구석이나 비상구 계단에 앉거나 서서 빨리 해치워야 했다. 어차피 할 일은 줄어들지 않았고 대신해줄 사람도 없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매일 만석을 기록하던 날, 점심 서비스가 끝나고 부주방장이 다진 고기와 채소, 빵가루로 반죽을 만들어 공 크기로 뭉치기 시작했다. 신 메뉴일까? 궁금했지만 물어볼 틈도 없었다. 곧 작은 고기공이 수십 개 쌓였다. 옆에서는 양파·당근을 볶아 토마토소스를 만들었다.
고기공은 미트볼이었다. 퉁퉁 불은 파스타에 토마토소스를 끼얹고 튀기듯 구운 미트볼을 올렸다. 스무 살 갓 넘은 요리사들과 서른 즈음의 내가 어두운 계단에 어깨를 부딪히며 앉아 그릇을 달그락거렸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미트볼의 맛이 떠오른다. 시큼하고 향긋하며 기름진 미트볼과 스파게티를 포크에 가득 꽂고 말아먹을 때, 나는 잠깐일지라도 주방에서 일해 감사하다고 느꼈다. 건너편 동료의 입가에 묻은 토마토소스 자국을 보면서 고등학교 점심시간이 생각났다.
한국에서 미트볼은 싸고 흔하지만 드물다. 3분 걸려 데워 먹는 미트볼, 이케아 푸드코트에서 파는 미트볼이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그날 이태원에서 먹은 미트볼은 한국에서 처음 맛보는 종류였다. 이태원역 4번 출구를 나와 좁은 골목길을 타고 내려갔다. 휴대폰 지도를 틈틈이 살폈지만 두어 번 갔던 길을 되돌아가야 했다.
멀리 건물 2층에 ‘플로우’라는 간판이 보였을 때 드디어 찾았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복층으로 된 가게는 밖으로 넓게 창이 나 있어 답답하지 않고 시원했다. 일자로 뻗은 주방은 간결했고 그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들도 번잡스럽지 않았다.
먼저 ‘토마토 카사레체’가 나왔다. 카사레체는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대표 파스타로 짧고 작은 경통 두 개가 맞붙은 모양이다. 여기에 방울토마토를 굽고 이탈리아식 멸치젓인 앤초비 기름으로 향을 우려냈다. 그리고 튀기듯 구운 빵가루와 루콜라 잎을 한 움큼 집어 그 위에 뿌리듯 올렸다.
이 모든 조합이 이탈리아 남부 방식이었다. 그것을 굳이 티 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조합해 내놓는 요리사의 세심한 의도는 정확한 조리로 완성됐다. 입에서 짭조름한 바다 내음과 푸릇하고 상큼한 채소의 맛이 퍼졌다. 그 맛은 맨얼굴의 태양 앞에 살결을 숨기지 않는 남국(南國)의 사람들을 닮아 있었다. 조합은 단순하지만 그 하나하나의 맛이 깨끗하게 다가왔다.
통통한 손가락 같은 리가토니 파스타를 써서 만든 카르보나라 파스타는 위에 파르미지아노 치즈를 잔뜩 갈았다. 마늘을 구워 맛을 낸 크림과 두껍게 썬 베이컨이 입에 딱 달라붙는 감칠맛을 자아냈다. 속이 텅 빈 파스타 안에 고인 크림은 먹을 때마다 입안에 시냇물처럼 흘러들었다.
곧이어 나온 미트볼 파스타에는 치즈를 더 많이 뿌렸다. 하얀 접시를 반으로 나눠 한쪽에는 이 집에서 직접 만든 토마토소스가, 한쪽에는 상앗빛 링귀니 파스타가 자리 잡았다. 하얀 치즈 가루 밑에는 통통한 미트볼이 있었다.
씹으면 부드럽게 부서지는 미트볼은 손으로 직접 빚은 티가 났다. 갖은 허브와 채소, 피망 등을 다져 넣은 미트볼은 단지 고기를 뭉쳐놓은 경단이 아니었다. 미트볼 한 알 안에서 푸릇푸릇한 텃밭을 가꾸는 아낙과 푸주한의 굵은 팔뚝이 함께 느껴졌다. 매끄럽게 삶은 면을 토마토소스에 비벼 먹었다. 빨간 미트볼 파스타와 하얀 치즈가 어울려 만든 맛은 서양의 어느 동화 속 풍경 같았다.
그곳에는 각박한 주방도 없었다. 말이 통하지 않고 아무도 나를 모르는 이국 땅도 아니었다. 화려한 기술로 스스로를 뽐내는 음식도 아니었다. 채소를 일일이 칼로 다지고 손으로 부드럽게 뭉쳐내는 다정한 마음만 있었다. 오래전 주방의 어두운 계단에 앉아 먹던 미트볼 파스타도 그랬다. 전우처럼 같이 땀을 흘리고 때로는 배신자처럼 음습한 주방의 모두를 어린아이로 만들었던 맛이었다.
#플로우 이태원: 미트볼 파스타 2만원, 갈릭 크림 카르보나라 1만7000원, 토마토 카사레체 1만6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