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분당 메모리얼 파크 묘원의 묘비. 사람들이 마음을 다해 표현하고 싶은 말은 ‘사랑’ ‘감사’ ‘행복’ 세 단어였다. /고혜련 제공

결국 ‘사랑’ ‘감사’ ‘행복’ 세 단어였다. 사람들이 온 정성과 마음을 다해 전하고 싶은 언어가. 지난 한가위 연휴 기간, 차례를 지내기 위해 들른 경기도 분당 소재 ‘메모리얼 파크’ 묘원에서 1시간 정도 작심하고 100여 개 묘비에 새겨진 말을 열독한 결과다. 사실 궁금했다. 그들은 삶의 결정적인 순간에 과연 무슨 얘기를 가장 많이 남길까.

“오늘도 많이 보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행복했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사랑합니다/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그립습니다/헌신과 은혜,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당신과 함께한 시간들이 행복했습니다. 편히 쉬세요. 사랑합니다” 등이다. 돌아가신 분을 그리며 하는 얘기다.

망자를 대신해 남긴 얘기도 마찬가지다. “모두들 사랑했다 사랑하며 살아라/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사랑을 나눌 수 있어 감사, 행복했다/왔구나 반갑다. 사랑하는 사람들아, 빛이 되어 자주 만나자” 등이다. 전체의 80% 이상이 결국은 그 세 단어를 전하기 위해 작성된 것이다. 다른 나라를 여행하다 동네 어귀에서 접했던 묘소의 묘비도 비슷했다. 그들이 흔히 쓰는 ‘편히 쉬십시오’(RIP=Rest In Peace)라는 말과 함께.

나이가 들어서인지 묘비들의 그런 문구에 이제 더 눈길이 간다. 더구나 지금은 양가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우리 또래들이 작별의 최전선에 서 있다는 느낌도 든다. 조건 없는 사랑을 쏟아부어 주었던 분들이 다 작고한 마당에 어떤 때는 마치 비바람 몰아치는 벌판에 홀로 서 있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더구나 하루가 다르게 병든 친구나 지인들의 부고장이 날아드니 말이다. “부모는 자식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옛말, 부모는 자식의 뒤늦은 깨달음과 성숙을 위해 먼저 가신 것이라는 생각마저 하게 된다. 사랑할 대상이 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새삼 깨치는 날들이 늘어간다. 일생 ‘사랑’ ‘사랑’ 하면서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단어지만. 하지만 사랑은 아픈 인생을 이겨내게 하는 최고의 명약임을 어렴풋이 알고는 있다.

사랑이 무엇인가 새삼 자문한다. 경험상 느낌으로는 되받는 조건 없이 베풀고 싶은 마음이다. 상대에게 기쁨과 위안·용기가 되고 싶은 마음, 상대의 허물조차 안쓰러운 측은지심, 그가 잘되면 내 일처럼 기쁘고 어려움에 처하면 내 처지인 양 가슴이 아픈 것, 세상을 떠날 때 내가 아끼던 무엇을 전해주고 싶은 마음일 것 같다. 정말 소중한 것은 돈으로도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으며 무조건적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을 몇이나 가졌는지 헤아려 보게 된다. 타인을 위한 이타심은 결국 한 수 위의 이기심, 결국 자신을 위한 것 아닌가.

하늘은 나이 들어가는 인간에게 육체의 힘을 빼는 대신 비움과 깨달음의 지혜를 마지막 삶의 선물로 주시는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 유명한 말 “내 우물쭈물하다 이렇게 될 줄 알았지” 같은 후회를 하지 않게 말이다. 한때 학교와 직장에서 자주 뵀던 이어령 은사님의 “죽음을 생각할 때 삶이 더 농밀해진다”는 말씀도 떠오른다. 열변을 토하던 중 가끔 머쓱해하면서도 재미있다는 듯한 미소를 짓던 그분의 얼굴과 함께.

이 기회에 한번 생각해 보자. “나는 과연 어떤 말을 남길 것인가?” 서둘러 묘비명을 작성하라는 게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지 삶의 지향을 스스로 물어보자는 얘기다.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우리는 아무 연습 없이 태어나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너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너는 사라진다 그러므로 아름답다.”(노벨 문학상 수상자 비스와바 심보르스카의 ‘두 번은 없다’ 중에서). 삶은 그런 것이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