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산의 유명 카페 ‘아장의 집 23’의 대표 메뉴 중 하나인 레몬 아메리카노와 레몬 조각에 커피 가루와 설탕을 얹은 ‘연애의 맛’. ‘달콤 쌉싸름한 청춘의 사랑’을 형상화한 맛이라고 한다. /장련성 기자

세계 정상급 우롱차 산지로 유명한 아리산은 최근 커피 생산지로도 주목받고 있다. 낮밤 일교차가 큰 변화무쌍한 기후, 해발 1000m 이상 고산 지대에서 오랫동안 차를 키워낸 토양에서 자라난 커피 열매는 아리산만의 독특한 테루아(Terroir·환경적 개성)를 품고 있다. 여기에 오랜 세월 차(茶)를 발효시켜 온 아리산 사람들만의 섬세한 기교가 더해지면서 아리산 커피는 ‘대만 커피’의 대표 주자가 됐다. 기존 원두 향에 더해 차·용안육·위스키 같은 독특한 향미까지 연출한다.

메이산향(梅山鄉)의 한 작은 카페는 커피 밭으로 둘러싸여 있다. 차밭 사이에서 자라는 커피나무는 놀라우리만치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나무에 맺힌 커피 열매에서 말 그대로 커피 냄새가 은은하게 풍겼다. 바람이 불면 카페 주변이 온통 커피 향으로 휘감겼다. 카페 내부에는 달큼한 곡물과 바삭한 견과류, 초콜릿과 나무껍질의 잔향이 맴돌았다.

바리스타가 직접 내려준 커피 품종은 한국에도 잘 알려진 게이샤(Geisha). 에티오피아에서 처음 발견된 아라비카 커피 품종으로, 부드러우면서도 깔끔한 산미가 특징이다. 아리산의 대표 커피 품종이기도 하다. 첫 모금의 상큼한 오렌지 향, 뒤이어 피어나는 섬세한 꽃향기, 그리고 피니시를 감싸는 꿀 같은 단맛까지. 쓴맛 없이 깔끔한 산미와 긴 여운 속에서 아리산의 햇살·안개·구름 같은 풍경이 떠오른다.

위 사진은 해발 1000m 지점에서 아리산의 고산 도로를 하늘 위에서 드론으로 촬영한 모습. 급경사를 극복하고자 수없이 굽어지는 도로를 조성했다. 아래는 ‘아장의 집 23’ 카페의 돌문. 초우족 원주민 출신인 주인 내외가 마치 동화 속 요정의 마을 같은 공간을 만들었다. /장련성 기자

초우족 원주민인 팡정룬씨는 20여 년 전 차밭에서 커피를 재배하기 시작하며 대만에 이른바 ‘스페셜티 커피 열풍’을 일으켰다. 이후 대만의 각종 커피 대회 1위를 석권하며 일약 ‘커피 프린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팡씨가 운영하는 커피 농장 저우주위안(鄒築園)의 게이샤 원두는 과육과 껍질을 제거한 뒤 100% 수세식 방식으로 가공, 불순물 없이 순수한 커피의 정수를 추출한다. 농약과 살충제 등도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대만 커피 재배의 뿌리는 멀리 17세기 네덜란드 식민 지배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시각도 있다. 다만 대만에서 본격적으로 커피를 재배하기 시작한 시점은 1930년대 일제강점기부터다. 당시 일본은 아리산 일대를 제국의 주요 차·커피 특화 생산지로 지정했고, 1945년 패망 당시 대만의 커피 재배 면적은 967헥타르로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아리산 커피는 마치 차를 발효시키듯, 원두의 풍미가 입체적으로 살아나게끔 하는 섬세한 로스팅이 강점이다. 게이샤뿐 아니라 로부스타·티피카 등 다양한 품종도 여러 농장에서 재배하고 있다. ‘커피 프린스’ 등이 직접 내려주는 아리산 커피는 다음 달 19~22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서울카페쇼에서 맛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