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의 ‘전후 80년 소감’을 생방송으로 봤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너털웃음이 나왔다. 나는 ‘일본 제국 패망사’(The Fall of the Japanese Empire)라는 과목을 영어로 가르치는데, 내 강의에서 다루는, 일본이 태평양전쟁에 이르는 과정에 대한 요인 분석과 이시바 총리가 말하는 내용이 거의 똑같았기 때문이다.
이시바 총리는 네 가지 원인을 지적했다. 첫째는 군부가 천황에게 직속됨으로써 총리가 군부를 지휘하지 못하는 쇼와 헌법 특유의 ‘이중 구조’(dualism)라는 제도적 문제, 둘째는 정쟁에 골몰하고 부패하여 국민의 신뢰를 상실하고 군부의 폭주에 겁을 먹고 침묵한 일본 정치인들의 책임 방기, 셋째는 군부 팽창에 환호하는 여론을 추종하여 상업주의로 내달린 일본 언론, 마지막으로 당시 국제 정세에 대한 일본의 무지와 안일한 분석을 꼽았다.
사실 이시바 총리가 말한 내용은 학계에서는 다수설이기 때문에 별로 새로울 것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언론 반응이 별로 호의적이지 않다. 요미우리는 사설에서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내용을 정국이 이렇게 어지러운 상황에 게다가 총리 퇴임 직전에 굳이 발표할 필요가 있느냐”며 “식견이 의심된다”고 했다. 산케이는 “대학생이 제출한 평범한 리포트 수준”이라고 깎아내렸다. 중도 좌파 성향의 아사히신문은 사설 제목을 “말로만 때우려 하지 말라”고 달았다. 마이니치는 ‘소감’의 내용은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총리가 퇴진을 발표한 후에 이런 소감을 내는 것은 자기 업적을 남기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남는다”고 꼬집었다. 중도 성향의 닛케이는 내각의 공식 결정 형식이었던 과거 총리 담화와 달리 개인 소감 표명 형식을 보임에 따라 무게감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지식인들 반응 역시 냉담했다. 기타오카 신이치(北岡伸一) 도쿄대 명예교수는 “원래 역사 해석은 연구자에게 맡겨야 한다”면서 “기본적으로 총리가 이런 발표를 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고 했다. 근현대 정치외교사 전공인 교토대 나라오카 소치(奈良岡聰智) 교수는 “역사에 대한 총리 담화 발표는 원래 상당한 리더십과 준비가 필요한데, 이시바 총리는 그것이 없었다”면서 “담화 발표가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무리해서 개인 소감을 낸 듯한 인상이 강하다”고 했다. 헌법학 전공인 레이타쿠대(麗澤大學) 야기 히데쓰구(八木秀次) 교수는 “새로운 내용이 없고, 중일전쟁 등 역사 인식에 대한 언급도 전혀 없어서 어정쩡한 소감이 되었다”고 했다.
일본 언론과 지식인들의 평가에 내 생각을 덧붙여 정리해 보자면 이번 이시바 총리의 ‘소감’ 표명은 네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내용상 새로울 것이 없다. 과거 무라야마 담화(1995년)는 최초로 식민 지배와 침략에 대한 사죄와 반성을 담았다. 2010년 간 나오토 담화는 최초로 한일 병합이 당시 조선인들의 의사에 반해 이루어진 것임을 인정했다. 2015년 아베 담화는, 과거 일본의 국제 정치적 ‘고립’ 문제를 지적하며 개방적 국제 질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시바의 ‘소감’은 무엇을 새로이 덧붙이는 것인지 모호하다.
둘째, 절차상 하자가 있다. 원래 총리가 역사 담화를 내려면 최소 6개월 전부터는 전문가 회의를 열어 중지를 모으고, 초안이 나오면 당과 내각에 회람시켜 의견을 모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반대가 있다면 인내심 있게 의견을 수렴해 가는 정치력이 필요하다. 이시바 총리는 이런 절차 없이 갑자기 개인 의견이라며 긴 분량의 소감문을 발표했다. 이러니 당 내외 반응이 호의적일 수가 없다.
셋째는 현실성 문제다. 이시바 총리가 지적한 문제는 역사학자들에게는 중요하지만, 과연 이런 문제가 현재 일본에 있나? 현행 자위대법 7조에 총리의 자위대에 대한 지휘 감독권이 명기됨으로써 ‘이중 구조’라는 것은 사라진 지 오래다. 현재 자위대의 최고 사령관은 천황이 아니라 총리이다. 더욱이 1945년 일본 제국 육군만 해도 600만 대군이었지만 현재 자위대는 육해공 모두 합쳐 봐야 25만 정도이고 그마저 정원에 2만명 미달이다. 일본 젊은이들이 자위대 복무를 기피하기 때문이다. 군부의 폭주가 과연 작금의 일본이 직면한 현실적 문제인지 의문이다.
끝으로 실행 문제가 있다. 이시바 총리는 소감문에서 밝힌 역사의 교훈을 실천하고 있나? 이시바 총리는 소감문에서 배외주의(排外主義)의 위험성을 경고했는데, 이는 퇴임 직전에 소감문에 밝힐 내용이 아니라 진작에 미국과 중국에서 확산 중인 배외주의와 블록화에 대해 일본 총리로서 의견을 밝히고 개방적 국제 질서 강화를 위해 일본이 국제 리더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 비전을 밝히고 실행해 나가야 했다. 또한 이시바 총리는 민주주의가 중요하다 했는데, 역사 담화에 대한 당내 반발이 예상되면 총리로서 적극 설득하는 지도력을 보이든가, 국민에게 사전에 직접 호소라도 했어야지 퇴임하겠다고 발표하고 나서 불쑥 혼자서 소감문 낭독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실천인가?
역사에서 교훈을 얻자는 이시바 총리의 주장에 적극 동의하면서도 막상 국내적으로 긍정적 반응을 끌어내지 못하는 이시바 총리를 보며 혀를 찰 수밖에 없는 것은 이 네 가지 때문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말은 쉽지만 실천은 어려운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