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할 때 한번 해보라면서 친구가 웹사이트 주소를 보내왔습니다. ‘에니어그램(Enneagram)’이라는 검사. 수십 개 문항에 답을 하면 내 성격 유형과 해설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9를 뜻하는 ennear와 도형을 뜻하는 grammos의 희랍어 어원답게, 이 검사는 인간의 성격을 총 9개 유형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친구는 에니어그램 결과가 이미 알고 있던 자신의 MBTI 유형과 비슷하다고 했습니다.

MBTI는 마이어-브릭스 유형 지표(Myers-Briggs Type Indicator)의 약자입니다. 스위스 출생 심리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의 이론을 응용해 인간의 성향을 총 16개의 유형으로 나눕니다. 누군가를 처음 만나 가볍게 대화를 시작할 때 ‘MBTI가 어떻게 되세요?’라는 질문을 주고받는 건 이제 흔한 일이 됐습니다. ‘별자리가 뭐예요?’라거나 ‘혈액형은 어떻게 되세요?’ 같은 그간의 질문을 완벽히 대체한 것입니다.

일러스트=유현호

재미 삼아 에니어그램 검사를 해보았습니다. 이어진 결과와 해설 내용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습니다. 체계적이고 신뢰감 있는 내용과 문장으로 나를 거울에 비춰보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크게 새롭거나 신기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미 제 성향의 큰 특징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이든 친구들이든 어려서부터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 왜 그렇게 소심하냐는 핀잔을 듣고 살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이는 제게 신중하다는 평가를 해줬습니다. 이것은 상반된 말이 아닙니다. 실제로 국어사전에서 ‘신중하다’는 매우 조심스러움을 뜻합니다. 반면 ‘소심하다’는 조심성이 지나치게 많음을 뜻하는 것이고요. 그러니 저는 매우 조심스러움과 지나치게 조심스러움 사이를 오갔을 뿐입니다.

스스로 꼽는 몇 가지 장점도 있습니다. 타인에게 상처 주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입니다. 내가 불편하고 말지 타인이 불편한 것은 못 보겠다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말을 최대한 고르고 상대의 눈빛을 살피고 불필요한 감정 표현을 자제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함은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나에게 잘 보이기 위함입니다. 타인의 실수보다는 나의 실수에 더 괴로워하는 사람으로서 당연한 일이죠. 그러니 내가 가진 조심성은 선(善)의 가치를 의식한 것이 아닌 오히려 온전한 내 이익만을 따른 결과입니다. 과거는 물론 오늘과 내일도 나 자신을 지속적으로 좋아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성향은 다양합니다. 대범하다, 느긋하다, 시원시원하다, 차갑다, 고집스럽다, 사교적이다, 예민하다…. 언어로 다 표현할 수도 없습니다. 영원불변하거나 고정된 채 머무는 것도 아닙니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저마다 어떤 모습으로 살든 내가 지닌 기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으면 합니다. 내가 아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내가 모르는 타인을 더 잘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