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권이 남용돼서 검찰이 정치 집단이 되고, 대통령을 배출하고. 이런 역사를 가진 나라가 없어요. 이걸 바꿔보자는 겁니다.” 소위 검찰 개혁 공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의원이 한 말이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자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사람들이 우르르 정치판에 뛰어든 것처럼, 지난 정권에서 검사 출신의 정치 참여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 결과가 좋지 않았기에 정권을 빼앗겼을 테지만, 이걸 빌미로 검찰을 악마화하고 아예 검찰을 없애 버리기까지 하는 게 옳은 일일까?

일러스트=유현호

다들 정치를 욕하는 세상이지만, 정치에 뛰어드는 이들이 다 나쁜 마음으로 시작하는 건 아니다. 재선인 민주당 이소영 의원을 보자. 고교 때 환경 단체에 가입할 정도로 환경에 대한 뜻이 남달랐던 그는 사법연수원을 최상위권으로 수료한 뒤 판사 임용을 마다하고 변호사가 됐다. “세상을 바꾸는 도구로 법을 활용하고 싶어서 변호사를 선택했어요.” 첫 직장으로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간 것도 유일하게 규모 있는 환경팀을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김앤장 생활은 길지 않았다. 회사에서 한 수입차의 ‘배출가스 조작 사건’에 대한 변호를 맡겨서였는데, 환경 문제를 초래한 기업을 두둔할 수 없던 그가 사표를 낸 것.

그 뒤 비영리법인 활동에 몸담았던 그가 민주당의 영입 제안에 응한 이유는 정치의 필요성을 느껴서였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법으로 만들지 못하면 물거품이 되고 마는 현실을 여러 차례 경험해야만 했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의 푸른 환경을 지키는 일에 우리 정치가 너무 무관심하고 소홀한 지금의 현실이 두렵다.”

그래서 이 의원은 자신의 꿈을 이뤘을까? 다음을 보자. “2023년 8월, 이소영 의원은 후쿠시마산 농산물의 수입 금지 조치를 계속 유지하도록 하고, 오염수 방류로 인한 수산물 수입 금지 조치를 일본 전역으로 확대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식품위생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환경 전문가라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국민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면밀히 검토하고 정확한 진실을 알려줘야 하지만, 이 의원은 정부가 이미 시행 중인 후쿠시마산 농산물의 수입 금지 조치를 법제화하겠다며 민주당의 괴담 정치에 편승했다.

윤석열 정부가 방사능 측정을 강화하고 수산물 소비를 지원하는 데 7000여 억원을 쓴 것은 민주당의 괴담 정치 탓이 크지만, 이 의원은 “국민 혈세로 일본의 오염수 방류를 도우려고 하는가?”라고 이를 비판하기도 했다. 이재명 대통령 집권 후에도 일본의 오염수 방류는 계속되고 있지만, 민주당은 물론이고 이 의원도 여기에 대해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있다. 소신에 반하는 변호를 맡겼다는 이유로 국내 최고 로펌에 사표를 던졌던 환경 변호사 이소영을 생각하면 그의 변신이 안타깝기까지 한데, 이는 수단으로만 생각했던 정치가 어느덧 목적이 된 사례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 의원이 민주당에 들어갈 때 가졌던 초심을 비판할 수 있을까? 윤 전 대통령을 따라 정치에 뛰어든 검사들도 이 의원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조국 사태’ 당시 그를 수사했던 검사들이 모조리 좌천되고, 추미애 의원을 법무장관으로 임명해 검찰총장마저 날려 버리려던 그 시절, 검사들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음 직하다. ‘우린 그저 나쁜 사람들을 잡고 싶을 뿐인데, 권력 앞에 번번이 물거품이 되는 현실이 싫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정의롭게 만드는 것에 우리 정치가 무관심한 것도 모자라, 오히려 불의를 부추기기까지 하다니!’

현 정권 실세들은 과연 자신들이 악마화했던 검사 출신보다 나을까? 9월 22일 국회에서 열린 검찰 개혁 입법 청문회에 그 답이 있다. 그날 증인으로 나온 이는 박상용 검사. 그는 수원지검 근무 시절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대북 송금 사건을 수사했다. 이 전 부지사가 1·2심과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을 선고받았으니 검사가 수사를 잘했다고 할 수 있지만, 민주당은 이것이 술과 연어를 동원한 검사의 유혹에 이 전 부지사가 넘어가 허위 증언을 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그날 박균택 민주당 의원이 박 검사에게 한 질문도 그 연장선상. 그는 대북 송금 관련한 공소장의 진실성을 문제 삼았다. “이화영 공소장, 김성태 공소장, 이재명 공소장이 돈 준 시기와 장소와 받은 사람과 전달 방법이 다 다를 수가 있습니까?”

시종일관 박 검사를 몰아붙이던 박 의원이 마이크가 꺼진 뒤에도 고함을 치자 참다못한 박 검사는 다음 발언을 한다. “그때 (이 대통령) 변호인으로 참여하셨었죠? 그때 그 내용을 잘 주장하셨다면 의원님 말씀하신 대로 되지 않았겠습니까?” 박 의원은 이 대통령의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 변호인이었다. 그러니까 검찰 개혁 청문회에서 이 전 부지사를 기소해 유죄판결을 받게 한 검사와 이 대통령의 변호인이 설전을 벌인 셈이다.

하지만 검사와 변호사가 동등한 지위를 차지하는 법정과 달리 국회에서는 의원이 갑인지라 박 의원은 증인으로 나온 검사를 마음껏 압박할 수 있었다. 민생을 해결하는 장이 돼야 할 국회가 이 대통령의 무죄를 증명하는 무대로 돌변한 것. 이는 박 의원이 국회에 들어올 때부터 예견된 결과였다. 이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마친 2023년 9월, 카메라 앞에 선 박 의원은 대북 송금 공문에 이재명 경기지사 날인이 찍힌 것을 다음과 같이 변호했으니 말이다. “제 운전면허증에 경찰청장 직인이 찍혀 있죠? 경찰청장이 나한테 발급해준 겁니까? 관인이 찍혔다고 해서 도지사가 결재했다는 의미는 아니거든요. 그걸 다 알면서 저렇게 왜곡하면 안 되는 거겠죠?” 박 의원에게 이걸 물어보고 싶어진다.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정치판에 뛰어든 것인가? 아니면 이 대통령을 더 잘 지키려고 의원 배지를 단 걸까? 더 무서운 사실이 있다. 지금 국회와 정부 요직에는 이 대통령 변호인 출신이 13명이나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