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화가 가스파르 드 크라이에(1584~1669)가 그린 ‘알렉산드로스와 디오게네스’. /위키피디아

철학박사 안광복이 한 달에 한 번씩 좋은 삶을 사는 데 필요한 철학의 지혜를 들려 드립니다. - 편집자 주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물욕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거의 벌거벗은 채, 큰 술통 속에서 살았다. 가진 것이 물과 햇볕만인 사람이 행복을 누리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디오게네스는 당시 기인(奇人)으로 유명세를 탔다. 하루는 대왕 알렉산드로스가 인도 원정길에 그를 보려 직접 찾아갔다. 왕은 정중하게 물었다. “그대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뭐든 들어주겠소.” 디오게네스는 몸을 뒤척이며 귀찮은 듯 대꾸했다. “자네가 내 햇살을 가리고 있으니 조금만 비켜주시게나.” 대왕은 이 말에 모욕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조용히 물러서며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알렉산드로스가 아니라면 디오게네스가 되고 싶소.” 왜 위대한 대왕은 비렁뱅이 같은 철학자가 되고 싶어했을까? 고대 로마제국의 철학자인 세네카(B.C.4~A.D.65)가 친구 루킬리우스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이 담겨 있다.

먼저, 세네카는 디오게네스에 얽힌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디오게네스는 어느 날 소년이 손으로 물을 떠먹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깜짝 놀라 이렇게 말했다. “아아, 나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이렇듯 필요 없는 물건을 여태 지고 다녔다니!” 그러곤 자기 배낭에서 컵을 꺼내 깨뜨려 버리고 다시는 쓰지 않았다. 진정 현명한 사람들은 디오게네스처럼 산다. 욕구는 채워도, 탐욕은 만족시킬 방법이 없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배고프면 먹으면 되고 졸리면 자면 된다. 하지만 더 값지고 맛있는 음식에 끌리고 더 편안하고 비싼 곳에서 자고 싶을 때는 어떨까? 무엇을 먹고 어디서 자건, 더 훌륭하고 좋은 것을 바라게 되기에 우리 마음은 줄곧 헛헛해진다.

“탐욕은 가장 부유하게 해주는 것으로도 나를 가난하게 만든다네.” 세네카의 충고다. 목마른 사람이 바닷물을 마시듯, 욕망을 채울수록 갈망이 끊임없이 피어날 뿐이다. 이쯤 되면 왜 알렉산드로스가 디오게네스를 부러워했는지 이해될 듯싶다. 알렉산드로스는 결국 인도를 차지하지 못했다. 그러나 인도를 가졌어도 여전히 대왕은 그 이상을 바랐을 테다. 결국 위대한 정복자였던 왕은 울화에 휩싸여 젊은 날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반면, 디오게네스는 한결같이 평온했다. 잃을 게 없을수록 불안을 느낄 일도 적은 까닭이다. 없어도 되는 것이 많을수록 생활은 되레 넉넉하다. 그래서 세네카는 말한다. “행복이 필요하지 않은 자가 가장 행복하며, 자신을 지배하는 사람이 제일 강하다.” 그렇다면 탐욕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게끔 스스로를 다스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세네카에 따르면, 대자연은 우리에게 절제를 선물했다. 이는 탐욕에 대한 더할 나위 없는 처방전이다. 굶주린 이에게는 다이어트가 필요 없다. 그러나 먹을 것이 넘쳐나는 일상을 산다면 식욕을 다스리며 건강한 음식을 챙겨 먹을 줄 알아야 한다. 욕망도 마찬가지다. 벌이가 먹고살기에도 빠듯하다면 절제도 의미 없다. 아끼고 싶지 않아도 아껴야 하는 탓이다. 반면, 넉넉하고 먹고살 만할 때는 스스로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당신의 삶은 쪼들리는가, 풍족한가?

늘 부족한 것투성이고 갖고 싶은 것은 언제나 한가득일 터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푸념과 한숨을 입에 달고 살아간다. 하지만 무엇을 채워야 나의 아쉬움을 채울지부터 물어서는 안 된다. 거꾸로 내 삶에서 없어도 되는 것이 무엇일지부터 가늠해 보라. 세네카는 대자연은 이미 우리가 충분히 먹고살기에 충분한 만큼을 베풀었다고 강조한다. 디오게네스를 보라. 소박한 식사와 몸을 눕힐 공간, 따뜻한 햇볕은 누구나 손쉽게 누릴 법하다. 이 정도에서 만족할 줄 아는 이는 쉽게 불행해지지 않는다. 사치에 익숙한 이들은 정반대다. 그들은 없어도 되는 것을 절절하게 바란다. 일상에 부족함이 없어도, 늘 시선은 자기에게 없는 값지고 좋은 것들로 향한다. “사치는 대자연이 필요 없다고 여기는 것을 바라게 하고, 마침내 영혼을 물질의 노예로 만들어버렸지. 그들의 노예였던 물질이, 이제는 그들의 주인이 되어 버린 셈이야.” 세네카가 한숨을 쉬며 내뱉는 말이다.

그렇다면 탐욕의 고삐를 죄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세네카는 큰 물음을 좇으라고 권한다. 병에 걸려 가려워 미치겠는 경우를 떠올려 보자. 이때 “어떻게 하면 가려움을 사라지게 할까?”를 따진다면 몸을 긁어 상처가 덧나기 쉽다. 이 경우는 “빨리 건강을 되찾으려면 어찌해야 할까”를 물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마음이 탐욕에 휘둘릴 때는 “어찌하면 내가 원하는 걸 가질까”를 생각하면 안 된다. 오히려 “내가 진짜 행복해지려면 어찌해야 할까?”라고 되물어야 한다. 그러면 비로소 눈앞의 욕망을 채운다고 내가 나아지지 않음을 깨닫게 될 터다.

“철학은 행복을 목표로 하며, 우리를 실질적으로 위대해지게 한다네. 공허하면서도 과장되게 현란하기만 화려함은 멀리하게 하지. 이를 위해 무엇이 위대한 것이고 무엇이 과장된 것인지를 일러주지.” 세네카가 친구에게 철학을 권하며 하는 말이다. 철학은 아르스 비벤디(Ars Vivendi), 즉 좋은 삶을 위한 기술이다. 이 연재를 통해 독자님들께 들려 드리고 싶은 철학의 지혜이기도 하다. 세상은 점점 혼란스러워지고 불안도 높게 차오르는 시대다. 철학으로 건강하고 밝은 삶을 가꾸어보시길 바란다.